'챌린저스' 봤어요.

'챌린저스' 루카 구아다니노.

보고 싶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다가 이제서야 보았습니다. 기대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한치의 느슨한 장면도 없고 눈돌릴 틈이 없는 영화네요. 이 감독님 영화 중 '아이 엠 러브' 좋아하는데, 재미로는 이 영화가 나았습니다. 일단 각본이 좋고, 시간대를 섞어가면서 오락가락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템포가 빠르게 느껴져요. 편집이 무척 중요했겠다라는 생각이 잘 모르는 저에게도 들었습니다. 배우들 경우 외모도 멋지지만 역할 소화도 잘해서 잘 만들어진 무엇인가를 구경하는 느낌을 고조시켰고요. 

뭔가 좋은 걸 보면 자극을 받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이 영화는 그런 자극 중에서도 내면화하는 수동적인 자극이 아니고 외부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자극을 줍니다. 보고 나서 생각에 잠기거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지는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는 세상에서의 할 일에 의욕을 키우고 싶어지는 영화랄까요. 저같은 사람은 하다못해 밖으로 나가서 지칠 때까지 걷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는 식으로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즐거웠는지는 그 다음 생각하고 말입니다. 화면 가득 땀이 뚝뚝 떨어지는 아주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였어요. 좋은 의미로요.

저 나름의 재미 이유를 조금 끄적여 봅니다. 

세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 세 사람의 관계가 전개된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둘만 있으면 각자에 대해 알긴 알아도 덜 압니다. 누군가 더 있어야 각자가 더 잘 보이고 자신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둘만 있으면 합의하기 바쁘지만 누군가 이물질(?)이 들어오면 견주어 볼 대상이 생기니 객관화가 쉽고 튕길 수도 있게 됩니다. 비로소 갈등이 가능해집니다. 최소한의 사회겠죠. 말하자면 둘은 점과 점이 서로를 바라보는 선을 만드는 것으로만 존재한다면 셋이 되면서 점들은 면을 만들 수 있으니 여유가 생깁니다. 또한 면이 되자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생기겠죠. 그러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에 상상력이 동원되고 긴장과 욕망이 생기게 됩니다. 

세 사람은 눈 앞의 상대만을 본다기 보다 상대를 거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다른 무엇, 즉 끝내주는 테니스 경기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면이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점점 상상력과 긴장은 커지는 가운데 자신의 욕망에 대해 잘 이해하게도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전개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주네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가장 약한 고리는 마이크 파이스트 캐릭터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양육하는 것인가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조쉬 오코너 캐릭터가 몇 년에 한 번씩 나타나서 젠다이아 캐릭터와 손잡고, 마이크 파이스트 캐릭터를 위협하거나 단련시키는 것이죠.ㅎ 패트릭은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로 사는데, 현실을 어떻게 사는지 나오지 않아 그런 느낌이 더 들고 외모도 텁수룩하며 야성을 지닌 것처럼 표현되거든요. 정상 가정을 이룬 이들에게 위협적인 외부인처럼. 

보기에 따라 타시가 두 친구를 성장, 자각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배우들 셋 다 잘 하는 가운데 조쉬 오코너는 LadyBird 님 추천하신 대로 나이브스아웃 웨이크업데드맨과는 다른 캐릭터를 참으로 매력적으로 살려내네요. 

혼자 뒷북 같지만 해가 바뀌기 전에 멋진 영화를 보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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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도 오랜 시간 제 목록에 있었는데 이젠 볼 때가 되었다고 해주시는 군요. 감사합니다.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영화라는 문장까지만 읽었어요. 뒷 부분은 영화 보고 읽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늘어가는 토마님의 팬심 리스트덕에 오늘도 좋은 글 읽었습니다!!!
      • 저는 유튜브에서 유료 결제했어요. 기존 제가 보는 곳엔 없어서요. 가까운 시일 내에 보셔요. 재밌었어요.


        경력을 따라가고 싶은 배우를 발견한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 '세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 세 사람의 관계가 전개된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둘만 있으면 각자에 대해 알긴 알아도 덜 압니다. 누군가 더 있어야 각자가 더 잘 보이고 자신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 저는 영화 보면서 이런 생각은 전혀 못하는데요. ㅋㅋ 영화는 안 봤지만 읽다 보니 오 그렇구나! 라고 납득이 되고 그러네요. 그러고 나니 포스터도 새롭게 보이구요. 하하. 사실 제가 아직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안 본 사람인데요. 그건 아직도 별로 볼 생각이 없지만 이 영화는 기회가 되는대로 보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영화 속에서도 젠다이아가 홍보 포스터의 문구를 슬쩍 복수로 수정해요.


        매일 보시고 매일 쓰시는 분을 존경합니다!


        콜미바이 저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들 많던데 저는 그냥저냥 봤어요. 이 영화는 재밌게 봤어요. 기회 닿으면 꼭 보시길요.

    • 저도 세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에 대해 써주신 부분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핵심을 잘 짚어서 분석해주신 것 같아요. 영화의 마지막 샷이 어떻게 끝나는가를 생각해보면 타시가 둘을 성장, 자각시켰다는 것에 무게가 기울어지네요. ㅎ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즈가 맡은 음악도 너무 감각적이고 좋았는데 특히 엔딩과 함께 흐르는 Compress / Repress 곡은 작년에 운전하면서도 엄청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젠데이아는 왜 MZ세대 젊은 여배우의 아이콘인지 그 존재감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고 조쉬 오코너는 왜 최근 굵직한 작품들에 캐스팅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죠. 확실히 마이크 파이스트가 캐릭터 자체도 그렇고 연기가 셋 중에서 어필할 구석이 떨어지는 느낌인데 실제 이후 경력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묘하네요.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주인공을 압도하는 연기로 주목받았었는데 다시 좋은 배역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 언젠가 어디선가 읽은 책의 인상적인 구절들이 적절한 영화를 만나면 튀어나오는 거 같아요. 두 번 나오는 타시의 컴온!이 귀를 때리네요. 음악이 내내 흐르는 편인데 심장 박동 같기도 하고, 영화와 잘 어울렸어요.


        젠데이아는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지 기대가 마구 되네요. 저는 제대로 본 것이 처음인데 좋았습니다.


        조쉬 오코너에게 감독이 한 말이 넘 웃겼습니다. '잘 구워서 윤이 흐르는 프라이드 치킨 같아야 한다. 현실의 너는 생닭 가슴살이지만.' 이런 비슷한 말이었다고 해요. 조쉬 오코너에게서 발산형 연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그랬다고 합니다.ㅎㅎ



        • 아니 지저분한 수염이나 옷차림 컨셉을 그렇게 잡아놓고 윤이 흐르는 프라이드 치킨 같아야 한다니 참 ㅋㅋㅋㅋ 조쉬 오코너 캐릭터는 부모님이 부자인데 그냥 본인이 부모한테 돈 받는 걸 거부하고 저러고 다닌다 그런 설정이라고 들은 것도 같아요. 어쨌든 저도 루카 감독 작품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습니다.

          • 현실 조쉬 오코너는 어쩌면 아트에 가까운 뻘줌해하고 예의바른 성격인지도요. 캐릭터상 자신감이나 반짝거리는 느낌 같은 걸 요구한 거 같아요. 이런 것은 수염 있고 지저분해도 그걸 뚫고 나오니...ㅎ


            타시와 다투는 중에 귀여울 나이 아니니 부자 부모한테 돌아가라는 내용이 나왔죠.  

    • 조쉬 오코너의 최근작 연기력 3종 세트를 완성시키려면 '키메라'(2024)도 보셔야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영국인 주인공 역으로 꿈과 환상을 오가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어요. 저는 조쉬 오코너는 이런 아트하우스 영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헐리우드 대작들에 많이 나오면서 범위를 넓히는 것도 보기 좋네요.   

      • 안 그래도 '키메라'를 찾았는데 지금은 볼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행복한 라짜로'는 개봉 때 봤어서 대략 어떤 분위기인지는 짐작이 됩니다. 볼 수 있게 되면 꼭 보려고요. 켈리 라이거트 감독 '마스터마인드'도 기대하고 있는데 수입은 됐는지 극장 개봉하는지 모르겠네요.

    • 아직도 사운드트랙을 챙겨듣습니다. 스포츠의 승부에서 라이벌을 향한 집착이 연적을 향한 분노와 질투로 동치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어요.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은 정말 황홀경입니다..

      • 저는 자칭 쓰레기라는 두 인물이 평범한 한 인물로 하여금 선을 넘게 만드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동성애 영화로 볼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영화를 더 풍요롭게 하네요.


        영화 끝까지 분위기가 치고 올라가는 게 음악과 편집에 공이 큰 것 같아요. 이런 영화는 먼저 보신 분들이 강력하게 팍팍 추천해 주셔야 하는데 ㅎ 극장에서 못 봐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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