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별 내용 없이 빠져듭니다. '엘레나' 잡담

 - 2011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49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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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는 국가의 예술인들이 어떻게 정부를 돌려 까는가'의 예시 중 하나가 될 법한 영화였습니다. 요 이미지만 봐도 은근 정치적인 느낌이...)



 - 일단 주인공 엘레나의 하루 시작을 보여줍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크고 호화스런 집의 커튼을 치고 아침을 준비하고 커피를 끓인 후에 남편을 깨워 식사를 대접하죠. 부부지만 왠지 가사 도우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묘한 관계인데요. 이 둘에겐 각자의 전 배우자 사이에서 만든 자식놈들이 하나씩 있는데 둘 다 부모에겐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이고. 그럼에도 둘은 각자의 자식에게 집착하며 서로의 자식을 증오합니다. 그러다 엘레나의 아들에게 상당히 큰 액수의 급전이 필요한 일이 생기는데, 남편은 도움을 단호하게 거절하구요. 결국 엘레나는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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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요런 세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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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세상을 동시에 보여주며 풀어 나가는 이야기구요.)



 -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느린 이야깁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엘레나가 남편을 깨우기 전까지 집안 일 하는 모습을 대략 5분은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물론 이건 복선도 아니고 큰 의미는 없구요. 중간에 남편이 운동하러 차를 몰고 헬스장에 가는 장면 같은 것도 참으로 불필요하게 차를 타고, 주차장을 나가고, 도로를 달리고, 이런저런 풍경들을 보고, 헬스장에 도착하는 과정을 느긋하게 다 보여주는데 역시 복선도 아니고 큰 의미도 없어요. 그래서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타르코프스키 보유국 같으니!! ㅋㅋㅋ


 그런데 이런 느릿느릿하고 쓸 데 없이 디테일한 장면들이 참으로 정갈하고 차가우면서도 아름답게 찍혀 있어요. 카메라는 거의 영화 내내 고정되어 있거나 패닝만 좀 되는 식으로 정적이구요. 여기에 필립 글래스의 장중한 음악이 깔리면 뭔 의미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지루하지 않게 보게 되는 효과가... 하하.


(심심하면 한 번 틀어 보시고, 음악이 맘에 드시면 영화도 보시면 됩니다. 정말 영화의 분위기가 딱 이래요.)



 - 그렇게 느릿느릿 전개되던 이야기는 런닝 타임의 절반을 훌쩍 넘겨서야 드디어 범죄가 일어나며 스릴러의 형식을 갖추게 되는데... 뭐 거기까지의 영화를 이미 보았으니 정말 '스릴러'라고 할만한 이야기를 기대하진 않게 되고. 정말로 그렇습니다. ㅋㅋㅋ 이 영화의 장르를 스릴러라고 표기해 놓는 건 일종의 사기에요. 이야기를 놓고 보면 스릴러도 맞고 느와르라고도 주장해 볼 수 있겠지만 장르물을 보는 기분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역시 타르코프... (쿨럭;;;)


 그럼 대체 뭐 하자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뭐 일단 기본적으로는 2011년 당시의 모스크바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겠죠. 빈부의 격차가 있고. 각자 서로의 방식으로 퍽퍽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가족 간의 사랑 같은 건 씨가 말랐고. 사랑이네 뭐네 이런 거 다들 입으로는 떠들어대지만 결국엔 돈에 모든 게 달려 있구요. 그런 측면에서 부자든 빈자든 누구에게도 꿈도 희망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참으로 퍽퍽 삭막한 느낌을 적립해 나가다가 마지막엔 진정 가슴이 깝깝해지는. 뭐 그런 이야기에요. 대충 보다 보면 진작부터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결말이 어떻게 맺어지든 해피엔딩이란 건 아예 불가능한 세상이구나.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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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쪽은 니들이 이러니 힘들게 살지! 라는 말이 튀어 나올 정도로 깝깝한 잉여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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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부잣집 딸래미가 하는 말은 결국 다 맞는 말이고. 뭐 이런 부분들이 영화를 그렇게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 그렇게 느리고, 미니멀한 느낌의 삭막한 이야기에 그래도 인간적인 무언가를 불어 넣는 게 주인공 엘레나를 맡은 배우님의 연기입니다. 뭐... 그렇게 칭찬해 줄만한 인물은 못 돼요. 딱 봐도 돈 때문에 한 결혼인 게 뻔하고. 남편과 둘이 말 싸움을 할 때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좀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사실 남편 말이 다 맞습니다. 그다지 현명하지도 못하면서 정말 거의 본능적... 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아무 이유 없이 자기 자식들에게 집착하는 옛날 사람이구요. 어찌 보면 관객 입장에서 이 양반을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이입할만한 이유는 그냥 이 쪽이 서민 계급 대표라서... 밖에 없어 보입니다만. ㅋㅋㅋ


 그래도 이 배우님이 차분하게, 과장 없이 연기하는 엘레나를 보고 있으면 어쨌든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 됩니다. 그래서 투덜투덜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이입하게 되고,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볼 때 쯤에는 깊은 한숨도 나오고 그래요. 이런 부분이 없었다면 그냥 시니컬하고 차가운, 정 주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 주인공 덕에 그래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간적인 이야기' 가 되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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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를 평소에 보고 살았어야 뭐라 배우님 얘기를 해 볼 텐데 말입니다. 죄송... ㅋㅋ)



 - 그래서 뭐... 와! 재밌다!! 이런 영화는 절대로 아닙니다. 한 시간이 넘게 사실상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도 재미난 장르물에서 기대할만한 그 어떤 장면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ㅋㅋ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차갑고 삭막한 모스크바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몰입되고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구요. 또 그런 느린 템포에 적응하고 나면 은근 재밌습니다? ㅋㅋ 별 것도 아닌 사건, 대사, 장면들이 좀 크게 느껴진달까요. 그래서 도입부만 넘기면 지루하거나 너무 느리다는 느낌도 없어요.

 물론 전혀 안 장르적으로 갑자기 툭 하고 끝나 버리는 결말도 그렇고. 뚜렷하게 '뭐뭐 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메시지를 보여주지 않는 이야기 내용도 그렇고. 그렇게 관객 친화적인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살면서 현대 러시아산 스릴러를 그렇게 많이 봐 온 것도 아니니 이런 작품에 한 시간 오십 분 정도 투자하는 것도 나름 보람찬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ㅋㅋㅋ 잘 봤어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만. 정말 별 내용 없어요. ㅋㅋㅋ


 그러니까 엘레나는 원래 간호사였고, 10년쯤 전에 남편이 맹장이 아파서 입원했을 때 간호해 주다가 인연을 맺고 결혼하게 되었어요. 남편의 젊은 딸은 아빠가 퍼주는 돈으로 파티나 하러 다니고 한심한 잉여이고 엘레나의 아들은 직업도 없이 좁아 터진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자식을 자꾸만 낳아 지르고 엄마에게 손 벌리는 한심한 인간입니다. 물론 그렇게 돈을 구해다 주는 걸 매우 당연하게 생각해서 감사의 표시도 안 하죠. 


 엘레나가 남편에게 크게 아쉬운 얘길 꺼내게 되는 건 아들의 큰 아들 때문입니다.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등록금 마련해서 대학에 가지 않으면 군대에 끌려간대요. 물론 아들은 본인이 그 돈을 구해 볼 생각 따위 1도 없고 매우 당당하게 엄마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남편은 '대체 내가 왜 니 자식의 자식 문제까지 해결해 줘야 하나. 그건 당연히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라고 선을 그어 버려요. 그래서 포기할까... 했던 엘레나입니다만. 이때 남편이 운동을 하다가 심장 마비를 일으킨다는 천재일우의 찬스(?)가 찾아 옵니다. 일단은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언제 갑자기 훅 죽어 버려도 그리 티가 안 날 상황인 거죠. 게다가 이 인간이 겁도 없이 엘레나에게 하는 말이, 내가 내일 변호사 불러다가 유언장을 쓸 거다. 재산은 거의 다 딸에게 주고 대신에 너에겐 죽을 때까지 충분히 넉넉하게 먹고 살만한 돈을 연금 형태로 매달 지급되게 하겠다... 라네요. 하하. 이 정도면 자살이라고 봐야. ㅋㅋㅋ


 그래서 엘레나는 고민을 하다가, 약장을 뒤져서 비아그라 여러 알을 꺼내 병원 약인 척 남편에게 먹입니다. 한숨 자라고 얘기한 후 물러나서 부들부들 떨고, 고통스러워하다가 한참 후에 문을 열어 보니 남편은 죽었고. 조용히 의심 갈만한 물건들을 치우고 마치 남편이 스스로, 자기 몰래 약을 먹은 것처럼 주변을 꾸며요. 사실 남편은 평소에도 비아그라를 먹고 엘레나와 섹스를 해 왔으니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니기도 하고...


 암튼 평소 남편의 상태가 있었다 보니 엘레나는 별 의심 받지 않고 장례를 치릅니다. 변호사에게 불려가 남편의 딸과 함께 남편이 남긴 전재산을 둘이 반띵 하게 될 거라는 설명을 듣고요. 이때 남편 딸이 '울 아빠는 늘 금고에 현금을 쌓아두는데 그건 어떻게 나누나요?' 라고 묻자 엘레나는 금고엔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딸은 헛소리 하네, 라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지만 뭐 더 따지고 묻진 않아요.


 물론 금고엔 돈이 많이 있었고 엘레나는 그 길로 곧바로 그 돈을 아들에게 갖다 줍니다. 그러자 실실 웃으며 건배하자는 아들. 그 순간 갑자기 참 불길하게도 그 건물이 정전이 되고. 고치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겠단 얘길 하네요. 그리고 군대 안 가게 돼서 신이 난 아들의 아들은 밖으로 나가 껄렁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놈들과 아주 살벌하게 패싸움을 하다 두들겨 맞아요. 안 죽습니다. 그냥 맞기만 해요. ㅋㅋ


 장면이 바뀌면 엘레나와 남편이 살던 집에 엘레나 자식 가족이 들어와 우왕 집 되게 좋다~ 라며 즐거워합니다. 아예 들어와 살라고 그랬나 보네요. 들어오자마자 망할 아들놈은 벌써 자기 집인 것처럼 행세하며 이건 누구 방 요건 누구 방 놀이를 하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켜며 술이랑 안주 좀 가져오라고 당당하게 시키고. 아내와 엘레나는 당연한 듯이 열심히 서빙을 해드립니다. 이렇게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멀리서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 Andrey Zvyagintsev라는 감독 이름이 조금 낯익어서 찾아보니 2014년작인 '리바이어던'감독이군요. 개봉했을 때 놓쳐서 아쉽긴 했는데, 굳이 찾아보게
      되지는 않는 영화인데 이 '엘레나' 영화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가 싶네요. 세상은 넓고 못보는 좋은 영화는 많은
      걸로;;;;;

      • 아 리바이어던... 영화 소개는 어디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 검색해 봤다가 결말 스포일러를 밟았습니다. ㅋㅋ 뭐 스포일러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요. 감독님이 어지간히 염세적인 분 같아요. 이 영화 결말도...

    • '리바이어던'을 아주 인상적으로 보고 다음 작품이었던 '러브리스'도 봤는데 진짜 염세적이고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쭉 보여주는 것 같다가 섬짓하게 만들고 엔딩에선 차가운 비수가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감독 이름을 기억...하려다가 철자가 어려워서 까먹었지만 ㅋ 차기작이 나오면 꼭 챙겨봐야지 했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러브리스 이후로는 소식이 없네요. 이 영화 제목은 처음 들어봤고 써주신 감상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ally님 댓글덕에 같은 감독님이라는 것도 알게됐으니 꼭 봐야겠습니다.

      • '염세적이고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쭉 보여주는 것 같다가 섬짓하게 만들고 엔딩에선 차가운 비수가 느껴진다'는 정리가 딱이네요. 이 영화도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ㅋㅋㅋ 다른 것도 다 그렇다니 일부러 작품들 찾아서 연달아 달리고 싶지는 않지만 훌륭한 감독님인 건 분명한 듯 하구요. 하하; 그래도 이 영화는 고통스럽거나 보는 사람 우울해질 정도까진 아니었으니 한 번 시도해 보시길!

    • '리바이어던'을 오래 전에 부산영화제에서 봤어요. 내용은 세지만 풀어나가는 방법이 느릿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연이 아니었는지 지루하게 봤던 거 같아요. 그때 강행군으로 피곤해서 집중이 안 됐던 모양이에요.


      이 영화는 왓챠에 있다니 감독의 느낌을 다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사실 이 영화도 느릿느릿하기 그지 없어서 초반엔 적응이 많이 필요하긴 합니다. ㅋㅋ 시도해 보신다면 컨디션 좋을 때 여유로운 맘을 갖고 해 보시길. 그래도 '우왕 느리네 ㅋㅋㅋ' 라고 생각할 지언정 막 지루하고 재미 없는 걸 억지로 견디진 않았어요. 볼만했다는 생각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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