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위키드 : 포 굿
저번 주말에, [위키드]를 대여로 결제해서 봤어요. 친구들이 [위키드: 포 굿]이 나온 김에, [위키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 보이더군요. 그래서 대략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인줄만 알고 봤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른 이야기더라구요. 대충 어떤 마녀의 이야기인 줄은 알았는데, 그 마녀가 학교 다니던 시절을 일단 다룰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영화가 학교 중퇴하면서 끝남) 초반 마법 학교로 떠날 때까지의 이미지는, 분명 이 영화 원작보다 이후에 나온 해리포터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요. (조앤 롤링은 위키드를 읽었을지, 기숙 마법학교라는 개념은 이 전에도 훨씬 많았는지?) 여튼 청춘 학교물로 즐겁게 봤습니다. 거기에 말을 잃어버리는 동물들 개념이 신선하고, 달라몬드 교수가 왜케 마음에 짠하게 들어오는지 좋게 남았습니다.
그런데 [위키드]를 볼 동안 큰 착각을 했던게 있습니다. 초반부에 도로시에 의해 압사당한 동쪽 마녀가 엘파바인줄 알고 본 거죠. 너의 무덤에 침을 뱉으마~ 라는 모 서적의 제목이 떠오르는 노래를 부르며 주인공의 사망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 이미 결정난 파국으로 달리는 열차의 행로를 그리는 영화인 줄 알고, 대체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조마조마하며 봤습니다. [위키드]에서는 끝이 나지 않았지만요.
저는 보통 어떤 작품을 볼 때, 꼭 그 끝을 바라보고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실제 세계와 달리, 모든 작품들은 어쨌든 어떤 끝에 도달해야 하고, 작가는 이야기의 어떤 지점에서 끝을 낼 지를 결단하고, 그 전에 여기 저기로 뻗어나온 가지들을 열심히 몰아 결말의 좁은 점으로 묶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오즈의 마법사라는 원작의 이면에 있으니까 이 시리즈는 훨씬 더 많은 제약과 떡밥 회수를 가지고 시작하니, 작가의 작품 갈래 분재 실력을 궁금해하며 봤습니다. 거기에 비극적 결말이 결정된 주인공(심지어 악역)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각별해져서 한참 집중했네요.
그런걸 원하는 편이라, [위키드]를 본 후, 당장 [위키드 : 포 굿]을 보러 갔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영화 단 한 편에 정리가 된다고? 하는 의심을 가지고요. 다만 고 사이, [위키드]에서 시작에 죽은 인물이 엘파바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꽤 충격이 컸어요. 아직 [위키드]에서 네사로즈는... 나름 당차고도 악하지 않은 존재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고 사이에 악명을 쌓고 동쪽 마녀로 취직한 다음, 뜬금없이 날아온 집에 눌려 죽기까지?
일단 [위키드 : 포 굿]은 엄청난 속도로 떡밥을 회수하기 시작하더군요. 결말까지 모든 떡밥을 열심히 주워담아 나름 깔끔하게 완결을 냈습니다. 도로시를 어떤 방식으로 스크린 외부로 뺄지 재주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전체적인 서사도 나름대로 이치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한 편에 다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안 바쁠 수 없더군요. 그런 떡밥 회수 중 가장 놀랐던 장면은 양철 나무꾼으로 변하는 장면이었을 겁니다. 그 지점에서 아, 겁쟁이 사자와 양철 나무꾼이 등장했으면, 그럼... 누가 허수아비지? 라고 떠올리고 금새 누군지 추측할 수 있었어요. 다만, 나무꾼은 심장이 없고, 허수아비는 두뇌가 없었는데 그가 두뇌가 없어져야 할 상황이 있나? 어떻게 되는거지 싶었더니... (여튼 이래 저래 재미있었습니다.)
여튼 일반적인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좀 생뚱맞은 감상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하나는 그리머리라는 마법서가 굉장히 강력하게 나오는데, 그 책을 2편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나오질 않아요. 엘파바가 자기 집에서 읽으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뭘 했던 걸까요. 몇몇 고레벨 스펠들을 메모라이즈를 열심히 했다면, 좀 더 깔끔하게 오즈를 눌러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역시 평화적으로 문제 해결하는걸 좋아했던 것인지. (보다는 당연히 원작의 제약이라는 저주에 걸린 것이겠지만.) 그리머리의 마법들은 전체적으로 변화에 관련된 내용만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저는 마지막 쯤 물에 녹을 때, 숨었을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물에 녹는 마녀로 변환시켰다고 상상했어요. 휴...
그리고 오즈가 가짜 마법사라는걸 밝히려고 하긴 하는데, 그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공학적 생산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법을 못 써도 마법에 가까운 공학을 이용해서 혈혈단신으로 엄청나게 만드는데... 이거 맞나 싶을 정도로 생산품들이 탄탄해보여요. 제 기억에 (어렸을 때 읽은 축약본) 소설에선, 서커스 같은 물품들을 가져가서, 조명에 의지해서 자신을 부풀려 보이게 만들었다고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정도면 공학적 마법사에 가깝지 않은지. (다행히 태엽로봇 같은걸 양산하진 않았어요.)
거기에 마담 모리블도 너무 강력한 존재로 나와서, 마지막에 너무 간단히 해결되서 파워 조절이 계속 신경쓰였습니다. 원작에서도 날개달린 원숭이들이 엄청나게 강력하게 나왔던 걸로 기억하기는 하는데... 솔직히 마담과 오즈의 힘이 좋아보여서, 굳이 그리머리를 읽어야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나 싶어서 좀 신경 쓰였어요. 단적으로 기차의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면 굳이 벽돌 깔 때 동물들을 괴롭힐 필요가 없어보이기도 했구요. (그냥 동물들을 괴롭히려고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좀 더 사상적 문제였으리라 생각하지만, 심각한 악으로 그려지지 않으니 전체적인 이념적 벨런스도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런걸 요청할 영화가 아니란건 알지만 그냥 써봅니다 ㅋㅋ)
좀 덜 생뚱맞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해보면... 저는 동쪽 마녀의 사망이 사실인만큼, 서쪽 마녀의 사망도 사실일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서쪽 마녀는 트릭으로 쏙 살려주더라구요. 그럴꺼면 동쪽 마녀가 꽤 많이 억울하지 않나 싶은데. (제가 초창에서 충격받은 만큼 네사로즈에 너무 감정이입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TV를 돌리다가 EBS에서 우연히 조너선 베이트의 세익스피어 작품 해석을 들었거든요. 저는 본 적 없는 마지막 희극인 [십이야]에 대한 해석이었는데, 여러 부분이 다 좋았지만 가장 귀에 들어왔던건 '작품에서 가장 배제된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어떤 작품을 볼 때 가장 배제된 인물을 살피는 것도 읽는 법 중 하나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위키드: 포 굿]에서 제게 가장 납득이 잘 안 되는 배제된 캐릭터라면, 보크와 네사노즈 커플이 아닌가 싶습니다. 엘파바와 피예로 커플의 정반대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네사의 죽음도 그닥 큰 파급을 끼친 것 같지도 않고 - 이제 사악한 일만 하겠다는 엘파바가 어떤 사악한 일을 제대로 한 지 잘 모르겠어요. 그저 은둔을 위한 빌드업이란 생각이 들 뿐 - 그 유품을 도로시에게 줬지만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정도로만 문제를 해결합니다. (마지막에도 서로 애뜻할 뿐...) 그리고 보크의 엘파바를 죽이러 가자고 부르는 노래가 강렬하게 들어오는데, 그는 결말 이후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애초에 글린다를 사랑하고 피예로와의 결혼식 때문에 속이 상했는데, 결혼식이 깨박살났으니 좀 다르게 생각해봐도 되지 않았을련지? 톱밥 심장을 얻고 나서는 좀 다른 행색을 했으려나요.
잘못된 방향의 짝사랑과, 서로를 마주보는 사랑의 차이인지 어쩐 것인지. 여튼 영화는 혁명보다 개혁으로 빠른 봉합을 마치고 끝났지만, 저는 그 사이에 있었던 커플 브레이킹이 잘 다뤄지지 않아 비애감이 좀 남는 영화였네요. (사실 마지막의 피예로와 엘파바도 서로 잘 들어붙는 느낌은 없고, 짝맞춤이 좀 미묘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글린다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으로 비애감을 남기는 것인가.) 네사를 아예 엄청나게 사악한 캐릭터로 만들었다면 좀 괜찮았으려나요, 잘 모르겠네요.
"허수아비는 두뇌가 없었는데?" 에 대한 답은 1편에서 이분이 골빈 왕자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글란다가 자기 남친이 (엘파바를 만난 후)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고 한탄하던 대사가 있었죠. 저는 1편과 2편 사이에 방한한 호주팀의 원작 뮤지컬 공연을 보고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낙 음역이 높고 극적인 노래들이 많아서 무대에서 들으면 그렇게 효과가 있을 줄 몰랐는데 프로들이라서 영화 못지않게 잘 하더라고요. 무대 특수 효과도 아주 좋았고요. 게다가 뮤지컬은 영화 1, 2부 내용을 다 담았어도 공연 길이는 적당해요. 아마 그렇게 숨가쁘게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중간에 의문을 가질 새가 없는 효과도 있었던 듯 해요.
ㅋㅋㅋ 첫문장을 읽고 빵 터졌네요. 짚으로 변한게 문제가 아니었다니!
뮤지컬로 크게 성공했다고 하니, 퀄리티가 상당히 높겠어요. 뮤지컬 배우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ㅋㅋ. 특수효과 이야기를 소문으로도 들었는데 어느 정도길래 궁금하군요.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게 정말 큰 것 같습니다.
네사의 집착이 좀 광적이긴 했는데, 양철나무꾼이 된 보크는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고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놀란 부분은 네사 로즈도 그리머리를 읽었다는 것이었고요.(그래서 마녀로 불린 건지도) 1부에 비해 왕자님두고 싸우는 내용이라는 폄하글도 읽었는데, 저는 나쁘진 않았습니다. 물론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기 급급했다는 인상도 들지만요. 저한테는 그 엔딩까지 마음에 들었으면 된..;
잘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아요. 1편을 이어서 생각하면 보크가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논 죄과를 치르는 것이긴 하죠. 사람이 솔직하고 봐야합니다. (저는 1편 그 장면에서 보크 목소리와 노래가 너무 좋아서 깜짝) 네사가 그리머리 읽는 건 뭐, 자매인걸 어떤가 했네요. 다만 역시 위험한 도구는 메뉴얼을 숙지하고 써야. 결과적으로 왕자를 빼앗긴 했지만, 표면 세계의 결혼식과 대비되는 지점은 지하 세계의 해방 아니었나 싶은데 그렇게 축약하면 너무하지 않나 싶군요. 오즈를 떠나 보내기도 했고. (그런데 아직 혈연의 비밀을 왜 그런 식으로 구성했는지 좀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원작 소설에선 오즈의 마법사와 마찮가지로 엘파바가 정말 물에 녹아 죽는다고 들었습니다. 뮤지컬로 만들면서 각색이 많이 된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위키드가 원래 오즈의 마법사 팬픽으로 나온 소설인데, 네사로즈(동쪽의 마녀)가 죽는거는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네사로즈는 파트1의 The Wizard and I 가사 중 "No sister acts ashamed"라는 말이라던가, 오즈더스트 무도회 장면에서 언니를 안도와준거 보면 평소에 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오죠. 2막에서 흑화를 위한 빌드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소설에서는 엘파바와 네사 양 쪽을 똑같이 다뤘군요. 뮤지컬에서는 도저히 주인공이었던 엘파바를 그럴 수는 없었던 거겠죠.
소설이 꽤 디테일하단 이야기를 들어서, 가능하다면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여러가지 납득 가능할 설명들이 있을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