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스포는 없지만 소재 연상 가능함)
영화가 일부러 적막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상처입었음에도 오히려 더 남을 돕는 주인과 그 주변사람들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어제부터 다시 든 생각인데, 가족은 이미 예전에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세차장씬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은 좋았으면서도 왠지 처음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장면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처음'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아마 익숙한 의례의 공간이지 않을까요? 깨끗한 차를 왜 굳이 세차장에서. 물건을 건내는 어머니의 익숙함이나, 한 번 더 돌기를 묻는 것이나.
윤가은 감독 GV영상인지 팟캐스트인지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으로는 세차장에서 주인이 억눌렀던 감정을 분출하는건 빈번하지는 않지만 어느시점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벤트라는 설정으로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즐겁게만 지내던 주인이가 아직 남아있는 아픔을 관객에게는 처음 표출하는 거니까 그런 느낌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반응은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뉘앙스를 주지만 주인이의 분노와 슬픔은 정말 벽력처럼 몰아쳤으니까요.
우리가 적절하게 좋은 시기에 주인이의 삶의 일부를 본 거겠지요. 삶이 그를 더 악독하게 할퀼 때를 슬쩍 피해가면서요. 단순한 예를 들면, 할머니로와 어머니의 대화로부터 말해지는 '이제는 맘 잡고 사는 애를.'
그리고 적절히 좋은 시기는 주인이 노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보였습니다. 확실히 중반 이후의 학교 공간은 걱정했던만큼은 아닐 수 있지만... (또 라고 하기에도, 아직 그 시점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에선 끝났지만 앞으로 살아가게 되겠지요.)
학폭위 장면은 교사 지인에게 현실적인 디테일을 잘 살렸다고 칭찬받더군요. 일단, '학폭위'가 열린건 아니고 열리기 전에 합의로 정리가 된 장면이었고, 말하셨듯 양 쪽 가정 다 현재 편부, 편모에 가까운 가정이죠.
교사 지인의 해석 중 재미있었던건, 그 방에서 '차를 타온 사람'이 교장일 거고 반대 쪽에 앉은 자가 교감일 거라는 해석이었네요. 요새는 자기 방에서 자기가 차를 타야되기 땜시...
그러니까 감독은 주인이가 앞으로 살아갈 공간을 사랑으로 채우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이 뿐 아니라 가족, 친구들, 지인들 모두가요.
긍정적이고 따뜻한 결론이긴 합니다. 전혀 빈정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러기를 바라는 거예요;
제가 모르는 디테일을 알게 되어 좋습니다. 학폭위는 아니고 그 전 단계였군요. 확실히 요새 학교는 많이 달라졌나 봐요.
제가 학교 다니던 때라면 교감이 가만히 있고 교장이 차를 타는 건 상상도 못할--
이전 댓글에도 적었지만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증인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에 공감해서 방청석에서 같이 우는 동료 생존자들이었습니다. 법정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고통받는 사람에 공감해주고 나중에 '정의가 이긴다'고 말해 줄 수 있는 동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주인공이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이 있어서 그 세계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고 봤습니다.
한미도(고민시)가 나중에 허풍 떨듯이 얘기할 때 착잡하다고 마지막에 썼지만 서글프지만은 않았습니다.
말씀하셨듯이 방청석에서 동료들이 함께 울고 결계를 깨듯이 손수건을 건네주며 응원해줬기 때문에 한미도가 주인이에게 재판에 대해서
정 반대로 얘기할 만큼 용기를 충전했다고도 느꼈어요.
이 장면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보면서 '용서'라는 답을 '못하지 않을까' 하고 저는 짐작했는데
주인이가 용서를 할까 못할까 하는 단계에서 헤매지 않고 그냥 제일 하고 싶은 것으로 뛰어 넘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이 분들이 이렇게 힘이 들어요'라고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이야기라기 보단 그 분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자극할만한 장면이나 설정은 최대한 자제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요.
근데 또 가만히 보면 분명히 현실의 고통들을 빠짐 없이 짚어내고 있기도 합니다. 재판 장면도 그렇고 주인의 친한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도. 자꾸만 배달되는 편지들. 아빠의 그런 상황 등등... 그래서 그렇게 가볍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은 안 하면서 봤어요. 물론 '저는 그랬다'는 이야깁니다. ㅋㅋ
사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물을 두고 왜 이렇게 만들었어!하기 보다 감독의 의도 내에서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사이버 공간도 이제는 현생이고 현실이지만 사람들이 직접 함께 하는 공간에서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연대하는 사람들이 더 앞으로 나오겠죠.
어쨌든 조심스러운 소재를 새로운 방향으로 그려냈기에 한 번 글을 써봤습니다.
감독도 여러 자료와 당사자들의 실제 모임들도 취재하면서 쓴 스토리라고 하니 감독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하게 담아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