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산 책 잡담

집에 있는 책을 읽자고 결심하지만 새로 어떤 책이 눈에 들어오면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왜 저 책을 손에 넣으면 안 되는지 결심한 제가 이해가 안 됩니다. 아직 (아래에 소개할)이런 책들도 안 읽었으면서, 읽고자 할 때 집에 구비해 두지도 않다니, 그것은 얽매일 필요없는 어리석은 결심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결심 같은 거 하지를 말자..)

이번에 산 책은 세 작품으로 상하권이 있어 네 권이니 약소한...것처럼 보이나 그 두께가 만만찮습니다. 600-700페이지짜리가 세 권이니까요. 


[청소부 메뉴얼]

루시아 벌린. 

몰랐던 작가입니다. 역자의 후기에 적혀 있는데 레이먼드 카버와 여러 가지 면이 비슷하다고요. 이른 결혼과 이혼, 부양해야 할 여러 명의 자녀와 생활고, 알콜 중독과 암발병까지. 카버가 생계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이분도 장편은 엄두를 못 내고 일하는 틈틈이 쓴 단편들만 76편 남겼다고 합니다. 그래도 레이먼드 카버는 생전에 인정을 받고 생활고에서 벗어난 걸로 아는데 루시아 벌린은 살아서는 주목받지 못했고 세상을 뜨고 십 년 후에 나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척추측만증이 심해서 교정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한 고통도 늘 따라다녔던 것 같네요. 순탄치 않은 삶을 산 또 한 명의 작가입니다. 그런 어려움이 다음 고백에서 확인 됩니다. '나는 집에 가려고 글을 썼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 나는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 글을 썼다.'

(tmi : 요즘 장안의 화제인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이 한예종 때 선생님인 이창동 감독의 집에 설 인사를 가서 이 책을 소개 받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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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의 이 책이 어느 리스트에 영국문학대표작 중 한 권으로 올라와 있었어요. 그레이엄 그린의 책에 관심이 없었던 것을 반성하며 샀습니다. 이 작가의 소설은 영화화 된 유명한 작품부터 생각나는데(제3의 사나이), 첩보 활동 경력이라든가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했다는 점이 서머싯 몸과 비슷하네요. 두 분 다 장수하시고 말년에는 영국을 벗어나서 한 분은 프랑스 남부 해안, 한 분은 스위스에서 보낸 것도 어째 비슷하고요. [권력과 영광]도 안 읽었습니다. 그레이엄 그린의 책 읽으신 중에 좋았던 작품이 있으신가요. 이 책도 닐 조던 감독이 랄프 파인즈, 줄리언 무어 등과 만든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찾아 보니 쿠팡플레이에 이상하게 동어반복의 제목 '사랑의 슬픔 애수'로 올라와 있습니다.(개별구매 1300원) 

책 표지에 보이는 추천하신 분들이 어마어마하네요. 제목처럼 재미있기를 기대합니다. 포크너가 추천했다니 좀 불안하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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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는 얼핏 보면 가로 길이가 짧은 것 같은데 실은 세로가 다른 책들보다 조금 길어요. 그래서 두꺼운 책은 읽는 중간에 불편합니다. 자꾸 책이 덮히려고 하지요. 저는 독서대를 쓰고 있는데 오래 되어서 페이지 지지하는 용수철로 연결된 다리가 부러질까 걱정입니다. 세 권으로 분권해도 되었지 않을까 싶은데 700페이지 전후로 두 권으로 나왔네요. 

또 리스트 얘기를 하자면 [미들마치]는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1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이 1817년에 돌아가셨다고 하고 [프랑켄슈타인]의 메리 셸리는 1797년 출생, 조지 엘리엇은 1819년에 출생했다고 합니다. 세 분이 비슷한 시기를 사셨으나 작품 활동 시기가 겹치지는 않네요. 세 분 중 가장 어른인 제인 오스틴은 여러 작품들이 이런저런 리스트에 오르고 대중과 평단 모두의 사랑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입니다. 그에 비하면 조지 엘리엇은 저 포함하여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거 같아요. 이분의 장편이 널리 읽히지 않은 데에는 분량의 압박이 아마 제일 클 것 같고, 이건 읽어 봐야 알겠지만 내용도 제인 오스틴에 비해 까다로운 면이 있어서일까요. 번역 자체가 활발하지 않은 듯해요. 리스트의 1위에 오른 작품 치고는 세계문학시리즈를 내는 대형 출판사가 두루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민음사에서 두 권으로 낸 것도 서너 권 보다는 가벼운 느낌을 주려는 뜻이 있을지도...

19세기 초중반의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와 조지 엘리엇, 브론테 자매까지. 작가의 수에 비하여 영문학 리스트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이 최상위에 오르곤 한다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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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루시아 벌린은 안타까운 삶이네요. 레이먼드 카버가 원래는 긴 글을 썼다고해요.


      아시겠지만 뛰어난 편집자를 만나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런 글을 쓰게됐데요. 편집자에 대한 번역판이 나왔는데


      저는 소개글만 읽었어요.




      그레이엄 그린과 저의 접점은 영화 [제3의 사나이] 정도네요. 찾아봤더니 장편 수는 많지않네요.


      "멕시코 혁명 당시 한 신부의 순교를 다룬 권력과 영광(THE POWER AND THE GLORY)이 있다."


      그레이엄 그린(소설가) - 나무위키




      다른 학교에서 편입한 누나와 친하게 지냈었어요. 책을 좋아하셔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제인 오스틴이 '수다스러워서' 싫다네요.




      복거일을 별로 안좋아하신다고 하셨나요? 작가의 기억이 안나는 어떤 책의 후기에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문학을 절망적으로 사랑한다"라고 써있는데 저도 가끔 사용해요 :)




      이건 2017년에 쓴 글이어요.


      "제 인생의 최고 즐거움의 하나가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사서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의 시간이었어요."




      • 단편이긴 한데 길이가 있어서 그것을 편집자가 많이 쳐내고 정리했다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편집자의 역할이 생각 이상으로 큰 것 같아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에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 이 책 읽고 좋으면 가능하면 다른 책도 이어서 보려고 합니다. 이 작가는 공산주의자였고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고 첩보 활동 경력까지 가졌네요. 작가로서 생전에 엄청 찬탄도 받았다고 하고요. 노벨상은 후보로 그쳤으나 훌륭한 작가들이 노벨상과 인연이 없었던 경우가 많죠. 평생 조울증을 앓았다니 힘든 시간을 견디는 한편 다채롭고 모험 가득한 인생을 산 것처럼 보였습니다. 해보고 싶은 건 다 해 보며 살았지 않나...물론 그러자면 온갖 고생을 감수했겠지만요.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들은 영화의 도움을 얻어 상상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깨어나는 분위기와 절망적인 분위기가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본격적으로 여성 작가들의 글이 출판되면서 문학이 풍성해졌지 않을까...격변기가 아니었나...역사나 영문학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요.




        2017년의 저 말은 jeremy 님의 말인가요. 아님 복거일 작가? 저도 동의하지만 이제 눈이 쉽게 피로하네요. 그리고 파악, 이해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려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사고픈 작가의 책을 가까이 두는 자체가 절반은 읽은, 이건 거짓말이고 십분의 일은 읽은 듯한 마음이 들어요.ㅎ

        • 제 말이어요. 위의 절반은 이거여요. "지금 사 놓은 책들도 다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니 사고 싶어졌어요."


          ----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설과 영화는 '거의' 관계없다네요.

    • '사랑의 슬픔 애수' 영화는 기억이 납니다만 보지는 않았어요. 이런 원작자가 있는 작품인 줄은 몰랐고 제목 때문에 옛날 고전 영화 '애수'의 리메이크 비슷한 작품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이제서야 오해를 풀게 됩니다. ㅋㅋ 
      • 저는 제목이 눈에 안 들어와서 보고도 완전히 잊었는지 모르지만 영화의 존재를 이제 안 것 같아요. 원제는 그냥 '애수'인데 앞에 설명식으로 붙여 놓은 것을 쿠팡에서 연결해 둬서 저렇게 검색되네요. 영화도 나중에 봐야 겠습니다. 

    • [사랑의 종말] 구입하셨군요저는 닐 조단 감독의 1999년 영화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원작소설을
      읽고 싶어서 구했습니다. 근데 그때 번역본을 서점에서 보고 맘에 안들어서 결국 원서로 읽었네요사실 제목부터가 번역이 어려운 책/영화 입니다. “The End of the Affair”사랑의 종말이라고 하지만 진짜 끝날 수 없는 Love가 아니라 불륜, 정사를 뜻하는 Affair거든요.
      관계의 종말이나 불륜의 종말이 정확한 번역일텐데 또 내용이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요;;;



      일기서간체라고 해야 되나? 주인공이 자기 일기를 누구에게 고백하는
      편지같은 내용으로 쓴 부분이 중요하고, 여기서 You가 누구인지가
      미스터리의 중심인데 이것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의 정체를 숨기기 쉽지 않은 내용이어서 그 부분을 읽은 다음에 결국 원서를 선택했습니다.



      원작 소설의 깊이를 영화가 살리지는 못했다는게 중평이지만, 남녀 주인공과
      마이클 니만의 음악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아끼는 영화입니다. , 데보라
      커가 나오는 옛날 버전 영화도 TV 방영 때 봤는데 이건 정말 아니었어요.

      • 영화부터 보셨군요. 영화가 좋으셨다니 저도 책 보고 나서 영화를 보겠습니다. 영화가 어떨까 궁금했는데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줄리언 무어는 '파 프롬 헤븐'이 떠오르네요. 이런 연기 참 잘 하는 것 같습니다.   

    • 루시아 벌린의 생애를 찾아 읽어보고는, 사신 책이 읽고 싶어졌어요. 죽은 자의 잘 쓴 원고를 훔쳐다 자기가 내는 저자들 서사를 많이 봐서, 그렇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나오게 된 과정도 궁금하네요. 

      • 생전에 출판한 책이 세 권 있었고 그 중 한 권은 전미도서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기성 작가로서 업계 인정은 받았어요. 다만 대중적 인기나 판매부수가 사후 나온 책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생전에는 생활고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이전 책에 있던 걸 모두 묶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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