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얘기가 거의 없네요.
해외 교포라 자막이 없는 영어 영화를 보는 것은 항상 쉽지 않습니다.
보고 나서도 제가 이걸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자신이 없거든요.
(오히려 다른 언어 영화를 보면 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이해도가 더 높습니다, 쩝쩝)
그래서 말이 없는 영화들, 작년의 서브스탄스 같은 영화의 만족도가 아주 높죠.ㅋㅋ
부고니아를 보고 나서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받은 건지 아리송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로튼 토마토에서 100%를 기록했다는데 (아무래도 관람숫자가 적어서 평점이 높겠지만)
그 영화가 현재의 서양인들에게 소구하는 게 있겠구나 막연하게 생각했거든요.
장감독의 영화와 전체적인 구조는 같으면서도
다루려는 얘기는 다른 부고니아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수출한 한국영화의 창의성을 기뻐해야 하는 건지
이게 지구적인 이야기라 되어 가는 현실을 슬퍼해야 하는 건지 양가적 감정이 들었습니다.
근데 저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 안봤을 것 같아요.
더 페이버릿, 랍스터 등을 재미있게 보았으면서도
가여운 것들은 제 한계를 넘어버려서 앞으로는 이 감독 영화를 보러 극장에는 안 가게 될 것 같다 생각했거든요.
모르고 부고니아 본 것은 그래도 잘했다 싶습니다.
잔인함이나 역겨움이 전작에 비해 덜했고 (사실 지구를 지켜라가 고문신이 더 보기 힘들었던...)
마지막의 컷들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제작비의 거의 대부분이 들어간 듯한 퀄리티) 극장에서 보기에 적당하게 압도적이었거든요.
사실 맨 처음에 벌들과 벌집 나올 때, 주인공이 하는 말들을 잘 못 알아들으면서도
여기에 주제가 다 들어있겠구나 했어요.
인간의 운명이나 벌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라는 말이겠지 싶었는데
결국 벌집들 보여주면서 끝나더군요.
주말 내내 지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인간이 돌보던 동물들은 어찌되지 하면서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를 보면서 인간의 절망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극복이라는 게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다룬 태풍상사라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저래도 다 잘될 거야 라는 것을 느끼는 비슷한 긍정성...
부고니아에는 그게 없었어요.
2003년와 2025년의 차이일까요. 22년밖에 안 지났는데 세상이 왜 이렇게 됐죠.
아무튼 듀게에도 영화 보신 분 있으면 얘기 나눠주셔요.
한국에서 극장 개봉하는 영화를 똑같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옛날과 다르게 자주 오질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는 아직 안들어왔습니다. 스포 피해 다니고 있어요.)
모처럼 한국개봉작이 같이 극장에 걸리면 반갑거든요.
저는 이번 주에 또 기후 변화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러
랠리에 갑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죠.
20여년 사이에 많이 변한 걸 저도 느껴요. 20년이면 이 기술자본 시대에 엄청 변화할 만한 시간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대나 그랬다고 하지만 요즘은 희망을 갖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지구를 지켜라'는 본지가 오래 되어 부분 부분 장면들을 잊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잊히지 않네요. 신박했달까 그래서 본 다음에 그 새로운 느낌 땜에 좀 흥분 되었어요.
저도 '가여운 것들'의 영상미는 즐겼으나 좋았다고 말하긴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부고니아' 아직 못 봤는데 이 작품은 잘 보셨군요. 저도 기회되면 챙겨 보겠습니다.
이거 신하균 성장 이야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 번 보고 다시는 안 보는데, 부고니아...어떻게 그려나갈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저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보질 못해서... ㅠㅜ
적어주신 걸 보니 원작보다도 꿈과 희망이 모자란 엔딩인가 보네요. 내용이 그런 건지 그걸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멘탈이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희망 갖은 걸 갖고 살기가 쉽지 않죠. 차라리 imf 땐 이것만 극복하면 어떻게든... 이라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냥 우린 다 망했고 확실히 망해가고 있다. 라는 관념이 모두에게 단단히 들어서 있는 것 같아요. 안타깝습니다...
꿈과 희망은 원작에도 없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사회고발을 하는구나, 그래도 바꾸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저한테는 있었는데 부고니아는 그게 없달까요.
그래도 꽃들과 벌들에게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꽃들에게 희망을!
보신 분이 조성용님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ㅎㅎ 그래도 해외에서는 잘 나간다니 다행입니다.
원작 영화에서는 남녀 커플인 주인공을 리메이크에서는 남자 사촌지간으로 바꾸고, 원래 중년 남자였던 적대자를 리메이크에서는 더 젊은 여자로 바꾸었을 때 당연히 염려가 되었었죠. 아무리 팔팔하고 똑똑한 여자라도 남자 둘이 완력으로 제압하는 내용인데 성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걱정되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우려가 우습게 완전히 색다른 적대 관계를 만들기는 했습니다. 원작도 해피 엔딩은 아니었지만 더 암울한 엔딩도 현 추세와 잘 맞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