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바낭] 드디어 '세계의 주인'을 보러 간 이야기

그렇습니다. '세계의 주인'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의 주인을 '보러 간 이야기' 되겠습니다.


제가 교육청에게 충분한 늙음을 인정 받아 수능 감독을 빠지게 된 게 작년의 일입니다.

재작년에도 안 가긴 했는데 그땐 다른 사유가 있었구요. 암튼 작년에 처음으로 아예 명단에 오르지 못할 몸이 되었고 그래서 올해도 그럴 줄 알았죠.

하지만 올해 고삼들은 공포의 황금 돼지들. 진지 심각한 인구 소멸의 시대에 호올로 역행하여 전년도 고삼들보다 숫자가 4만명이 넘게 늘어난 아이들이었구요.

그래서 올해는 '예비 감독'이란 것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ㅋㅋㅋ


간단히 말해서 감독 예정자들이 무슨 일이 생겼다고 갑자기 빠지거나, 혹은 시험장에 무슨 변동이 급격하게 생겼을 때 소환 당하는 게 예비 감독인데요.

그래도 순번이 한참 뒤라서 실제로 끌려갈 가능성은 매우 낮았죠.

그래서 아침 여덟시 반에 하는 '세계의 주인'을 예매해 놓고 아침에 적당히 일찍 일어났어요.

수능 감독들이 시험장에 출근하는 시각이 7:30이니 갑자기 빠지는 사람이 생긴다면 여덟시 전에는 연락이 올 것이고.

특히 8:30이면 1교시 국어 영역 시험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후에 연락이 올 일은 더더욱 없고.

또 제가 집에서 시험장에 가는 거나 극장에서 시험장에 가는 거나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계획을 잡고서.

극장에 가서.

오랜만이니까! 하고 커다란 팝콘이랑 콜라도 사고.

라랄라 상영관에 들어가 앉으니 8:30 정각.

얼마나 멋진 영화일까!!! 라고 설레는 맘으로 팝콘통과 콜라를 내려 놓고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끄려고 버튼에 손가락을 얹는 순간 전화가 왔습니다.


......



내 티켓값...... ㅠㅜ

내 영화...

내 휴식......



그래서 감독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으며.

영화는 단 1초도 보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윤가은 감독님. 저렴한 조조로나마 제 영혼은 보냈습니다!!! ㅋㅋㅋ

이걸로 만족해 주시고 언젠가 OTT에 올라오면 조금은 당당한 마음(?)으로 감상하도록 하겠나이다...




 + 당연히 제가 나타날 줄 모르고 있던 직장 동료들은 뜬금 없는 메가박스 팝콘통을 들고 감독관 대기실에 입장한 저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설명을 듣고 깔깔 웃으면서 제 팝콘을 맛있게 먹어 치웠습니다. 수능 감독에 극장 팝콘 사들고 온 사람은 처음 본다며... 그래요. 덕분에 여러 사람 즐거웠으니 됐죠.



 ++ 알고 보니 제가 소환된 이유는 학생 한 명이 1교시 시작 직전에 '너무 긴장돼서 배가 아프다'며 호소를 해서 신속하게 예정에 없던 분리 시험장을 만들게 되는 바람에 감독이 추가로 필요해져서라고... 근데 그 학생은 정말로 심리적인 문제였는지 너무나도 멀쩡하고 해맑게 시험 보더라구요. ㅋㅋ 그래도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아서 다행이었고. 마지막 교시를 끝내고 나선 수줍게 웃으며 "저 하나 때문에 여러 쌤들 고생하셨네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도 하고 떠나주는 센스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시험 잘 봤길 바라구요...

    • 속상하시겠어요. 어제 쏘맥님과 나누신게 이 이야기인 모양이네요. 영화 배경이 로이배티님 일하시는 


      곳이고 꽤 잘만들었으니 한번 더 도전해보셔요>_<




      수능 보신 제자분들에게 이 퀸의 노래는 어떨까요? 한글 번역 가사 있어요.


      삽화와 함께 듣는 Spread Your Wings




      원곡이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0&v=uyd6OLyhPJo&embeds_referring_euri=https%3A%2F%2Fdamoang.net%2F&source_ve_path=MzY4NDIsMzY4NDIsMjg2NjY



      • 찾아 보니 이번 주말까진 조금씩 하긴 하는데 시간대가 다 망했더라구요... 제 패턴이랑 안 맞아서. ㅠㅜ




        시험 난이도가 올라가서 지금 다 망했다고 엉엉 분위기더라구요. 날개를 펼칠 수가 없어!!! ㅋㅋㅋ 하지만 올려주신 곡은 제가 잘 듣겠습니다. 하하.

    • 저런.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는 거겠습니다만, 시간 맞추시느라 고생하셨을텐데 안타깝게 되었네요. 나중에 VOD나 OTT로라도 보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DAIN_

      • 고생은 아니었지만 절묘하게 딱 맞는 회차가 있길래 아주 즐거웠는데요. 다 꿈이었던 걸로... 흑흑.

    • 아니 오랜만에 이렇게 로이배티님이 저보다 먼저 극장영화를 보신 날이 오다니.. 하고 제목을 읽었다가 집에오니 저런...ㅜㅜ (전원을 좀 더 일찍 끄셨더라면) 다음 기회에...

      • 아예 여덟시 영화였다면 무사히(?) 보고 쉴 수 있었겠죠. 애매한 시간을 잡은 극장을 원망합니다!! ㅋㅋㅋ

    • 역시 운이 좋으신 편인 거 같아요. 중간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거나 전화를 못받았다면...
      • 근데 이게 사실... 좀 괴상한 부분인데 현실적으로 연락이 안 되면 그냥 다음 순번 사람에게 연락하지 전화 안 받은 사람이 뭔가 책임을 지고 이런 시스템이 아니더라구요. 오늘 출근하니 사람들이 다 함께 박수를 쳐 주며 대체 그 전화를 왜 받았냐며... orz

    • 이럴 수가 제가 다 아쉽습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쉬는 날인데 직장에서 전화오는 것처럼 싫은 게 없는데요. 또 전화가 올 만한 일이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야 할 일인 경우가 많고요. 이렇게 예비 인력이 실제로 일하면 수당이라도 나오는 건가요?  

      • 근데 사실 원칙은 전화를 받는 게 맞긴 해요. 그래서 '예비 감독'이라고 이름 붙이고 번호까지 붙여주는 거니까요. 그저 제가 운이 격하게 없었을 뿐... ㅋㅋㅋ 수당은 나옵니다. 다만 당일에 급하게 소환된 거라 1~2주 뒤에 입금된다네요. 하하.

    • 핸드폰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물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학적) '소외'를 보여주는 큰 자화상이죠.  덕분에 휴일도 뺏기시고... 어떤 때는  전화가 와도 불안, 안 와도 불안...... 핸드폰 집어던지고 싶지 않나요? ㅋㅋ

      • 사실 제 휴일을 빼앗은 건 그 학교가 아니라 갑자기 스트레스성 복통을 호소했던 그 학생... ㅋㅋ 너무 멀쩡한 상태로 시험 치르길래 좀 얄미웠는데 끝날 때 감사하다고 인사 해주니 걍 잊었습니다. 나름 재밌는 인생 에피소드 하나 만든 걸로!

    • 전원을 한 1분만 일찍 껐으면 정말 어쩔 수 없었다라고 넘어갈만한 핑계(?)가 생기는 건데 제가 다 안타깝네요. ㅠㅠ 어쨌든 배티님 같은 분들 덕분에(?) 힘을 얻어서 곧 10만 관객 달성할 것 같더군요. 저예산 독립영화로 충분히 좋은 성적이죠.

      • 그러게요. 이미 9만 몇 천이라 그러고 수원 같은 데서 조차도 아직 상영관이 (완전 띄엄띄엄이지만;) 살아 남아 있는 걸 보면 참 다행이다 싶구요. 왜 난 극장까지 가서 이 영화를 못 봐야만 했나 싶구요. (흑) 그래도 영혼은 보냈어요 윤감독님! 

    • '세계의 주인' 보러 가서 팝콘 사온 이야기네요.ㅎㅎ극적이네요..안타깝습니다. 나중에 수당 나오면 맛있는 거 사드시면서 집에서 보시길. 저도 아직 못봤습니다만. 

      • 그 팝콘으로 많은 사람들 기쁘게 해드렸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ㅋㅋㅋ 얼른 수당이나 나왔으면 좋겠네요. 막판에 급 추가된 거라 처리하는 데 시간도 걸린다고... ㅠㅜ

    • 저 못 가고 있어서 부럽다고 하려다 이런. 했는데 센스 있는 수험생의 인사 받은 걸로 제가 다 위안이 되네요. 앞 날 창창한 수험생들 화이팅! 로이배티님도 화이팅!
      • 본문에도 적었듯이 사실 하루 종일 얄미웠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인사하며 가 줘서 정말 순식간에 기분이 다 풀렸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 간사하고, 또 말의 힘이란 게 참 대단한 것 같았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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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사람들이 왜 이 영화 이야기를 하나 하고...ㅎㅎㅎ






      8시 30분 조조가 있다는 데서 놀랐습니다.

      • 으아니 ㅋㅋㅋㅋㅋ 저는 당연히 포스터로 농담하신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영화가 재밌어 보입니다...




        제가 요즘 극장을 잘 안 가서 요즘 조조가 보통 몇 시인 줄은 모르겠는데 여덟시 반은 확실히 좀 빠르긴 했던 것 같습니다. 하하;

    • 지난번 댓글에서 ‘수능 감독은 미리 정해질텐데 왜 8시까지 대기해야하지?’했는데 그런 사정이 있군요.

      감독 차출은 빠질 만큼 늙으셨지만, 대기에서 걸려버린 로이님…(앞 순번 분들은 다 수신 거부를 하셨나봐요ㅎㅎㅎ)

      그래도 에피소드 하나 건지셨고, 그 수험생분이 귀여우셨고, 수당도 받으신다니 좋은게 좋은걸로!!! 수당 받으시면 팝콘 왕창 사드세요!!!(?ㅋㅋㅋ)
      • 금요일 아침 출근해서 교무실 들어가는데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물론 놀리는 의미로... ㅋㅋㅋㅋㅋ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제 앞 순번 뒷 순번 사람들이 다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하더라구요. 하지만 그들의 흐뭇한 눈빛을 볼 때 진실은... ㅋㅋㅋ




        네 그렇죠. 저 때문에 직장 사람들이 이틀 내내 즐거워했으니 그걸로 된 셈 치기로 했습니다. 돈도 벌었구요. 게다가 남들보다 늦게 끌려가는 바람에 일을 적게 한 거나 다름 없는데 받는 돈은 똑같다구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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