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절약 잡담...(전멸폭탄)


 1.내가 돈을 엄청 아낀다는 건 다들 알겠죠. 요즘은 어쩌다보니 택시를 한번 타게 됐어요. 비는 줄창 오고 신발은 하필 메쉬 소재라 물이 줄줄 들어오고 양말은 다 젖어버린 참이라서요. 피트니스에 가서 양말을 갈아신고 신발을 좀 말리고 나니, 또다시 비에 젖고 싶지는 않았다죠.


 어쨌든 그래서 대중교통이 다니는 시간임에도 택시를 한번 타봤어요. 그러니까...너무 편하다! 이렇게 편하고 쾌적하다니?! 마치 슈팅게임에서 전멸 폭탄을 눌러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는 무적이 되고 보스를 향해 총알과 미사일이 마구 퍼부어지는 그것 말이죠.



 2.내가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탈 때는 술에 좀 취했거나 너무 피곤한 상태일 때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택시가 좋은 줄도 모르고 타요. 한데 맨정신에 이른 시간에 택시를 타니 너무나 쾌적하고 편한 거예요.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 택시를 타고 싶었어요. 


 물론 매일 택시를 타도 상관은 없긴 해요.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죠. 어째서일까?


 어째서인지 생각을 해 보니 이건 게이머의 자세예요. 우리가 옛날 오락실에서 하던 비행기 슈팅게임을 생각해 보세요. 그냥저냥 게임을 하는 애들은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전멸 폭탄을 눌러버리잖아요? 전멸 폭탄은 보통 세 개 주어지고, 스테이지마다 하나씩 리필되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하나씩 써도 돼요. 적들이 총알을 마구 쏴대고 버티기 힘들다 싶을 때 전멸 폭탄을 눌러버리면 즉시 위험은 해소되고 잠깐은 쾌적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죠.



 3.하지만 게임을 잘 하는 고수들이나 또는 어줍잖게 고수인 척하는 애들은 그 전멸 폭탄을 안 써요. 전멸 폭탄 세 개는 커녕 다섯 개, 여덟 개씩 쌓아놓고도 전멸 폭탄 버튼을 안 누르고 오직 회피와 기본 총알만으로 스테이지를 깨 나가죠. 그야 어줍잖게 고수 흉내를 내는 애들은 그러다가 폭사하지만.


 그런데 고수들은 그렇게 전멸 폭탄을 안 쓰고 버티면 그 전멸 폭탄이 나중에 모조리 점수로 치환되거든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만한 스코어를 내려면 그 전멸 폭탄을 아끼는 게 필수인거죠. 물론 자존심 문제로 안 쓰는 것도 있지만요.



 4.휴.



 5.나 또한 그런 자세로 인생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내겐 전멸폭탄이 세 개가 아니라 수십만 개는 있겠죠. 하지만 안 쓴다 이거죠.


 그야 이건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긴 해요. 나는 전멸 폭탄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지금 플레이하는 인생과 주식 게임의 점수에는 전혀 영향이 없거든요. 그렇지만 마음가짐의 문제인거죠. 이 게임을 나는 지금 극도의 극기로 플레이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의 표현인거예요.


 이번에는 어쩌다보니 전멸 폭탄 버튼을 눌러서 택시를 타버렸지만, 이제는 또다시 안 타요. 누군가는 무의미한 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택시'라는 전멸 폭탄 버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다른 전멸폭탄 버튼을 마구 눌러대기 시작하는 건 금방일 거거든요.



 6.그야 이번 사이클이 끝나고 주식을 쉬게 되면 돈을 좀 써볼 생각이예요. 구두도 하나 사고. 80%정도 할인하는 패딩이나 무스탕이 있으면 그것도 한벌 사고.


 80% 할인해주는 패딩이나 무스탕이 없으면? 내년을 기다리면 되죠. 올해 80% 할인행사가 없다면 내년쯤에는 못 버티고 80% 할인행사를 할거니까요. 60% 할인해주는 무스탕을 보면 나는 짜증이 나더라고요. 60%밖에 할인을 안하다니 아직 배가 불렀구나? 라고 말이죠. 할인이라는 건 최소 80%부터 상대해주고, 90% 할인해주면 땡큐죠. 


 여기서 약간의 문제는, 80% 할인행사장까지 가버린 패딩들 중엔 내 사이즈는 잘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이죠. 하지만 여기서도 나는 밝은 면을 봐요. 80% 할인행사장에 내 사이즈 옷이 없으면 돈을 아끼는 거니까요. 나는 지금 가지고 있는 패딩들을 50년은 더 입을 수 있거든요. 50년 안에는 80% 할인행사장에 내게 맞는 사이즈의 패딩이 남아있겠죠.



 7.사실 80% 할인해주는 옷을 살 때는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해요. 사이즈가 약간 안 맞거나, 디자인이 별로거나, 색상이 별로거나...무언가 하나는 문제가 있거든요. 애초에 마음에 쏙 드는 옷이 거기까지 올 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또 살다보면 모든 부분이 완벽한 옷이 80% 할인행사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행운도 만나볼 수 있는거겠죠. 디자인, 색상, 사이즈...뭐 하나 하자가 없는 옷인데 이게 왜 내 눈앞에 있지? 함정이거나 몰카 아닐까? 라고 한번정도 갸우뚱거리게 되는 옷을 말이죠.








    • 순수한 의문이 들어서 적어보는데, 내년을 기다려도 되는 80% 할인행사는 삶이 무한할 때 통용되는 설정 아닌가 해서요. 


      우리가 살아있을 때 돈으로 무한한 삶을 얻을 수 있는 버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할인행사 타이밍은 많아야 120회 정도 아닌가 싶어서.


      그에 따르면 점수로 치환되는 전멸 폭탄 이야기도 비슷한 의문이 있죠. 슈팅 게임은 끝에 도달하고 결산을 하지만, 인간은 끝에 도달하면 죽을 뿐이니까요.

    • ↑체감상 80% 할인행사는 3년에 한번은 있더라고요. 발품을 많이 팔고 아울렛 정보를 자주 체크하면 거의 매년 있고요. 그렇게 5년쯤 존버해서 좋은 물건이 80%에 한번씩 나온다고 치면 외투를 5년에 한번정도 새로 사는 느낌이네요.




      슈팅 게임에서 아낀 전멸 폭탄은 게임이 끝나면 데이터 쪼가리라 써먹을 수 없지만 주식 게임에서 아낀 전멸 폭탄(돈)은 사이클이 끝나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죠. 이번 폭등장이 끝나게 되면 쉬면서 전멸 폭탄을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나저나 불로불사는 빨리 가능해졌으면 좋겠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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