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비글로의 컴백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미국 백악관, 미사일 발사기지 등의 주요 기관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하루 일과 시작을 보여주며 막을 엽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던 이날 아침은 '대륙 간 탄도 미사일'로 추정되는 미확인 비행물체가 포착되면서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엔 흔히 있는 북한 같은 나라의 핵 무기 실험이거나 인공 위성 발사 실수겠거니 했지만 곧 궤도를 통해 미국의 한 도시를 타겟으로 발사된 핵 미사일이라는 것이 확인됩니다. 피격까지 남은 시간은 약 18분, 미 대통령 포함 각료들과 해당 분야 전문인력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어떻게 대응할지 신속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영화는 이 긴박한 상황을 세 챕터로 나뉘어서 각기 다른 인물들의 관점으로 피격 예상시간이 0초에 달하는 순간까지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캐서린 비글로가 17년 '디트로이트' 이후 정말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입니다. 약 2주간 제한적 극장상영을 하고 어제 넷플 오리지널로 올라왔어요. 명감독의 컴백에 핵 위기라는 소재, 화려한 대형 앙상블 출연진 등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은 작품인데 제 감상으로는 어느정도는 충분히 기대를 충족시켜줬지만 아쉬운 부분들도 있고 취향에 따라서는 (특히 결말에) 많이 실망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적으로 로튼 신선도는 전문가, 관객들 전부 70% 후반대가 나오네요.
일단 첫 챕터만 보면 '와 역시 비를고 감독님. 완전 스크린을 뒤집어 놓으셨다. 진짜 최고의 감독, 화이팅!' 이었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을 정신없이 오가며 이렇다할 액션없이 대화만 보여주는데도 긴박함, 압박감과 서스펜스가 몰아치고 약 40여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몰입감을 선사해주는데요. 아쉽게도 이게 2, 3번째 챕터에 가면서 많이 풀어집니다. 이전 챕터에서는 얼굴만 잠깐 보여줬거나 중간 중간에 맥락없이 주어졌던 대사들 때문에 확실히 알기 어려웠던 상황들의 속사정을 점차적으로 알게 되는 건 좋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에서 크게 영향을 주는 새로운 사실 같은 건 아니고 결국 이미 첫번째 챕터에서 중간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됐고 마지막엔 어떻게 될지 다 예상이 되는 상황을 2절, 3절 반복해서 보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어요.
정해놓은 서사 구조와 컨셉에 충실한 전개인 건 알겠고 거기에 맞춰서는 정말 훌륭하게 잘 만들어졌습니다만 차라리 1, 2 챕터에서 후반부 중요한 상황을 교묘하게 숨겼다가 마지막 챕터에 결말 직전까지 가서야 100% 퍼즐이 짜맞춰지도록 하는 게 불호 반응을 확 줄일 수 있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리고 엔딩이 이래저래 또 말이 많은데요. 스포일러가 아니라 기대치 조절 때문에 말씀드리자면 사실 작품의 전체 구조나 테마, 메시지만 보면 오히려 아주 딱 들어맞는 마무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핵 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날아온다라는 강렬한 훅을 생각할 때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뭔가 크게 임팩트 있는 한 방을 보여주지는 못하는지라 여기서 가장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도 영화제 등에서 미리 선보였을 당시 '이게 끝이야?'라는 반응들이 꽤 나왔다는 걸 참고하시길...
그런 단점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이 영화가 정말 잘해낸 것은 만약(이 아니라 언젠가?)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상당히 유능하고 이런 시나리오에 대비한 훈련도 잘 되어있는 전문인력들이 큰 갈등없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고 노력해도 피해를 최소화해서 가장 이상적인 결정을 제한시간 안에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결국 어떤 식으로 가더라도 이런 핵 전쟁 상황이 발생하면 얼마나 셀 수 없이 많은 목숨들이 소수 관련자들의 결정에 의해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는가를 소름끼치게 피부에 와닿도록 보여준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베카 퍼거슨, 이드리스 엘바 등의 빅네임부터 그레타 리처럼 최근 뜨고있는 배우들, 넷플 영화/시리즈 컨텐츠들에서 눈에 익은 여러 조단역급 배우들까지 정말 빵빵하게 꽉 차여있는 앙상블 출연진은 누구 하나 혼자서 씬을 잡아먹는다던가 하는 순간은 없이 각자 큰 퍼즐의 일부분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너무 튀지않게 충실히 소화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인상적인 연기를 따로 꼽기는 어려운데 그래도 평소보다 좀 더 눈에 띄었던 장군 역할의 트레이시 레츠를 언급하고 싶네요.

대체적인 반응을 보면 아쉽게도 개봉/공개 전의 화제성과 기대치를 다 충족시켜주지는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각본에서 짜놓은 전체 스토리 구조와 엔딩이고 연출자로서의 실력은 역시 여전하시다는 건 여실히 증명했기 때문에 차기작은 이렇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조금 더 박한 느낌을 가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쓰신 내용들에 다 동의합니다.
두 번째 챕터를 보는 중간에 잠깐 딴 짓을 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보강되는 정보가 있었으나 그보다는 느슨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편이었어요. 같은 상황을 두 번, 세 번 주요 인물만 바꿔가며 다시 보여 줄 때는 압박감 등의 정서적인 심화나 아니면 전체 그림이 보이든, 뭐가 되었든 강도가 쌓이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부족했습니다. 말씀대로 최후의 선택이 무엇인지는 마지막 부분으로 남겨 뒀으면 덜 했을까 싶기도 하네요.
이드리스 엘바가 하는 대사처럼 가방든 장교가 맨날 따라다녀 봐야 막상 닥치면 아무 준비가 있을 수 없다는, 그런 우왕좌왕의 상황 자체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다큐멘터리 비슷해진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긴장감 조성 연출은 정말 잘 하시지만 영화가 세 개로 나뉜 것의 효과에는 좀 의문이 남았습니다.
워낙 오래 기다린 감독님의 신작이기도 하고 프로덕션 가치만 따지면 정말 장인의 손길과 최정예 스태프들이 만든 훌륭한 결과물인지라 칭찬 위주로 하고 싶은데 사실 저도 심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크긴 합니다. ㅠㅠ
해외 관객 평들 중에 세 스토리를 다 중간 어떤 상황에서 끊은 다음 마지막 네번째 챕터에서 전부 동시에 결말까지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봤는데 차라리 이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죠. 작품의 구성, 메시지와 테마에 충실한 엔딩이었는데 뭔가 기대한 다수의 관객들에겐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해외에 검색해보면 거의 조롱하는 수준의 악평도 보이더라구요. 장점도 참 많은 영화인데 ㅠㅠ
비글로 감독님 지금 나이가 한국식으로 75세이시니... 여전히 현역이고 준수한 작품 뽑아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만. ㅋㅋ 그건 그거고 어쨌든 영화가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요. 말씀대로 부디 팔순 전에는 신작 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하하;;
연출력 하나는 건재하십니다. 썼듯이 이 작품의 단점은 전체 스토리 구성, 각본에 있는 것 같아서...
저번에 검색해봤을 때 분명 이거하고 또 하나 차기작 두 편을 준비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찾아보니 정보가 없네요. 귀신에 홀렸나;;; 하여간 빨리빨리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경고: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후반부에서의 주요 관료 중 한 명의 선택이 가장 충격적이었죠. 결말도 그렇고 다른 부분들은 뭐 다 괜찮은데 가장 크게 답답한 부분은 핵미사일을 어떻게 저지할 것이냐에 대한 의논이나 설명 부분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은데. 제가 놓친 게 아니라면 핵미사일을 저격하기 전에 사전 조율도 없었던 것 같고 성공 확률이 그 정도인데 차선책에 대한 의논도 없었던 것 같고... 뭐 현실이 그렇다는 걸 보여준 것뿐이라면 어쩔 수 없는데 실제로 저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건가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게 현실이라면 제대로 전달한 게 맞겠죠. 막판에 스텔스 폭격기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혹시 자살 특공대라도 보내는 건가했는데... 핵미사일이라는 게 참 애매한 게 일반 미사일이라면 공중에서 아무 때나 저격을 하면 큰 피해를 줄을 수 있지만 핵미사일이라면 어중간한 공중에서 저격했다간 오히려 지면에 대한 피해가 더 커질 우려가 있으니 그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한데 알래스카 기지에서 쏘는 저격용 미사일이 그 마지막 보루인 건지 그에 대한 설명도 없었던 것 같고요. 제가 틀렸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스텔스 폭격기는 그 용도가 맞는데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안 쓴 거고요. ㅎㅎ. 처음 공군 조종사들이 보일 때는 영화 아마겟돈처럼 자살 특공대를 보내나하는 생각을 잠깐 했죠.
아, 이미지 처음 잠깐 그런건가 하셨다는 거군요 ㅎㅎ. 제가 너무 넘겨짚었네요. 밑의 댓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스텔스 폭격기는 윗분 설명이 맞는 것 같고 찾아보니 핵 미사일 요격은 여러가지 단계가 있더군요. 다만 이 영화에서는 절망적인 상황 연출을 위해 한 발 실패 후 이제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전개한 것 같습니다. 50개가 더 남아있긴 하지만 이게 유일한 공격이 아닐 수 있으니 혹시 모를 이후 사태에 대비해 남겨놔야 된다는 식의 변명용 대사가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한 번만에 포기하는 건 좀 무리수였죠.
사실 미사일을 어디서 발사했는지 놓쳤다는 것도 정확한 정보 없이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을 위해 무리한 것 같구요.
요격용 미사일이 몇개 남았다는 대사를 제가 놓친 모양이네요. 그리고 한 발이 아니라 두 발을 쐈죠.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서둘러 봤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미국이란 국가가 국가적 폭력에 휩쌓였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제일 냉철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같은 컨텐츠가 동어반복으로 나오는 것 같아 나중에는 조금 지치긴 하더군요. 저도 어느 참모 한 사람의 선택이 진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네요
네 말씀하신 그런 면에서 특히 허트 로커부터 일관성이 있는 작품들을 만드는 것 같아요. 1, 2 챕터에서 그 부분을 궁금하게 만들긴 했는데 저도 충격이었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또 중반 이후 실망스러운 부분 때문에 돈 아끼길 잘했나 싶기도 하구요. 하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라는 제목이 말씀하신 그런 부분이죠. 정말 어떤 또라이 같은 지도자 하나가 홧김에 저지르면 순식간에 터지는데 아직까진 별 일 없었으니까 다들 무감각하게 살아가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확실히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배우들 얘기를 좀 하자면... 이드리스 엘바하고 레베카 퍼거슨은 좀 유명세와 연기력에 비해 좀 낭비된 느낌이 들더군요. 특히 이드리스 엘바는 막판까지 모습을 안 드러내다가 등장을 해서 뭔가 그만의 카리스마를 뽑내길 기대했는데 그냥 무기력한 대통령의 모습만 보여줘서... 가브리엘 밧소도 뭔가 중요한 역할 같은데 너무 허둥지둥되는 모습이 좀 안 어울린 것 같았고 젤로 인상 깊었던 역은 자레드 해리스가 연기한 국방부장관하고 트레이시 렛츠가 연기한 장군 역이었던 것 같아요. 그레타 리도 짧게 나왔지만 무슨 군사 전문가 역으로 제 역할을 해준 것 같고요. 아 케이틀린 데버도 너무 잠깐 나와서 낭비된 배우 중 하나.
제가 볼 때는 낭비라기 보단 그냥 유명한 배우도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배우도 다 비중이 고만고만하다보니 제일 잘나가는 그 둘이 뭔가 몸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하죠. 무기력했다기보다 그냥 상대적으로 널널한 일정 소화하다가 10여분 안에 어마어마한 인명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닥치니 그 어떤 유능한 대통령도 다 그렇게 멘붕할 것 같아서 리얼하게 다가왔어요.
케이틀린 데버는 감독 전작 '디트로이트'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그냥 짧은 카메오 출연한 것 같더군요.
LadyBird님의 댓글을 읽고 보니 한편으로는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와 일백상통하는 캐스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대응? 뭐 이런 효과를 일부러 노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