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보는 신기한 기분


이번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ASL 4강전 1경기와 2경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변현제라는 선수를 응원하지만 그는 8강에서 별로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남은 4강 선수들 중 그래도 플레이 종족이 프로토스로 똑같은 장윤철과 김택용을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운좋게도 4강전 1경기는 현장에서 직관할 수 있었고 2경기는 2만원짜리 티켓을 사서 극장에서 봤습니다. 


현장에서 간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예전에 스타크래프트 1 리그는 용산역 6층의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그 전에는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이라는 곳에서 열리곤 했습니다) 거기에서 열렬하게 응원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이 날 장윤철의 4강전 경기가 열리는 곳은 무려 삼성역 근처인데 가는 길이 멀고 비까지 오고 있어서 좀 피로하긴 했습니다. 


장윤철과 황병영이란 선수가 맞붙었는데요. 황병영이란 선수는 현재 스타판에서 제일 잘생긴 선수로 유명합니다. 약간 유승호 느낌도 나는데 외모력(?)에 비해 실력은 아쉽다는 느낌이죠. 다만 이번 리그에는 정말 쟁쟁한 우승후보들을 막강한 공격력으로 꺾고 4강까지 올라왔습니다. 이 선수 본인 커리어에서도 개인리그 4강은 처음인지라 4강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장윤철은 현재 최강의 프로토스로 뽑히는 선수입니다. 실력에 비해 우승경력이 없어서 '이렇게 잘하는데 우승은 서너번 했겠지~' 라면서 놀리는 밈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동료 게이머들도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정 컨트롤을 잘하는데, 그게 멀리서 툭 치고 빠지는 방식의 컨트롤이라 보는 사람들이 화를 낼 정도입니다. 제가 스타크래프트 1을 거의 20년 넘게 봤는데 이 정도까지 리버컨트롤을 쓰는 선수는 정말 장윤철이 처음입니다. 오죽하면 중계진이 해설을 하다가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아니... 뭐하는 짓입니까 이게??"




장윤철과 황병영이란 두 선수 사이에는 인상깊은 히스토리가 하나 있습니다. 스코어가 어떻게 나오든 무조건 아홉번 다 싸우는 변칙적 9전 5선승제 "끝장전"이란 컨텐츠에서 장윤철이 최초로 9전 전승을 거둔 선수가 됐는데요. 이 때 9전 전패를 했던 게 바로 황병영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해설진들이나 보는 사람들도 한판은 이겨줘... 이러면서 역으로 황병영을 응원했지만 0:9로 완패를 해버리더군요. 장윤철은 이 경기 결과에 굉장히 미안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승자 예측도 이번에 장윤철에게 많이 쏠렸습니다. 황병영은 처음으로 4강에 올라온, 패기말고는 다른 게 증명되지 않은 선수이고 장윤철은 지구에서 테란전을 제일 잘하는 프로토스로 이미 정평이 나있었으니까요. 거기다가 사람간의 전적에서도 장윤철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경기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건 사운드였습니다. 컴퓨터로 볼 때는 그냥 당연하게 들리던 소리가 현장에서는 훨씬 더 웅장하게 진동으로 느껴지더군요. 사람들과 함께 응원 구호를 외치는 것도 즐거웠고, 중계진들이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는 것도 훨씬 더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현장에서 빼랙빼랙 소리지르며 응원을 하니 경기를 볼 맛이 나더군요. 중요한 순간마다 사람들과 함께 탄식하거나 흥분하면서 보는 것도 매우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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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극장에서 본 두번째 4강전은 김택용과 박상현이라는 선수의 대결이었습니다. 김택용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박상현은 "짭제"라는 이상한 닉네임으로 더 알려진 선수입니다. 그는 이제동을 너무 좋아하고 또 이제동의 플레이를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찐제동'이 아닌 '짭제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지금 현재의 실력만 본다면 저그 중에서는 그와 견줄 저그가 김민철을 제외하고는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상현은 아마 현재 저그 게이머 중에서는 가장 사납고 공격적인 선수일 것입니다.


그 전날 현장에서 게임을 봐서 그런지 극장에서 게임을 보는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일단 극장이니만큼 당연히 스크린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공간이 어둠에 휩쌓여있었는데 현장에서 게이머들을 잘 비춰주기 위해 조명이 번쩍거리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극장이라서 스크린의 소리 말고 다른 소리는 별로 안들렸던 것도 확실했습니다. 관객들이 훨씬 더 많아서 장면장면마다 호응하고 같이 탄성하면 또 분위기가 다를 순 있었겠죠. 그런데 보는 관객이 몇 안되서 좀 적막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몇몇이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건 약간 묘했습니다. 


극장이란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크린 앞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부동, 침묵을 고수해야합니다. 그렇게 현실의 자기 존재를 최대한 억누르고 스크린 너머의 세계에 다들 몰입하는 거죠. 그런 자세로 스포츠를 보니 희한한 기분이었습니다. [스톱 메이킹 센스] 같은 영화를 다같이 들썩이며 보는 경험도 있겠지만, 그 영화는 결국 스크린 안에서 또 다른 열광하는 존재들을 보여주었기에 그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경기는 끝내줬습니다. 특히나 2경기 같은 경우 프로토스 대 저그 전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만한 경기라고 할 수 있겠죠. 종종 게임을 보면서 단순한 지략이나 피지컬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모든 걸 내던지는 판단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럽습니다. 결승전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극장은 계속 진화하네요. 콘서트 보는 것도 새로운 유행이다 싶었는데, 이젠!

      • 이젠 컨텐츠 자체가 아니라, 공동의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곳으로 점점 변화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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