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본 후기 뒤늦게 올려봅니다
[커미션]의 오프닝 크레딧부터 관객은 동생 단경이 언니 주경의 압도적 재능에 절망하는 내용의 나레이션을 듣게 됩니다. 단경은 자신의 혈육에게 질투와 패배감을 느끼며 자라온 사람입니다. 이 환경에서 단경은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동료 강사의 웹툰 작가 데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본인의 재능에 대한 절망과 불신이 현재진행형인 사건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클리셰는 단순한 재능에 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재능에 따른 사회적 인정, 즉 인정투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커미션]의 진짜 장르는 이 인정투쟁을 중심으로 한 성장드라마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범재로 여기는 사람이, 천재의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살리에리에게는 궁정이라는 무대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단경에게는 웹툰시장이라는 공식적 무대 외에도 다크웹이라는 또 다른 무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단경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딜레마가 생깁니다. 단경이 메이저 웹툰시장에서 인정받기란 지극히 어렵고 먼 길입니다. 그러나 다크웹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인정과 금전적 보상까지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만족이 아닙니다. 내가 생활을 하고 합의금을 내는데 당장 필수적인 돈이 들어옵니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그걸 인정하고 쫓아갈 수 밖에 없는 인력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인터넷이란 공간에 있습니다. 단경처럼 현실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 특히 자아표출욕이 강한 "오타쿠"에게 인정을 얻는데 인터넷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아마 인터넷이 있었다면 살리에리도 영화에서 모차르트를 굳이 해치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익명의 타인들이지만 자신을 인정해주고 돈까지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 속 단경은 이 인정욕구와 재능과 결과물의 관계가 슬슬 역전이 됩니다.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의 결과물로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인정을 받으니까 재능이 있다고 착각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인정을 받기 위한 결과물들을 일부러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것은 영화 속 어느 충동적인 오타쿠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닙니다. 당장 아프리카(현재는 '숲'으로 이름을 바꾼 실시간 방송 플랫폼)에서 인정과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괴상한 언행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 성장하거나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타락과 추악을 인정의 기준으로 삼는 곳에서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망가지고 추한 행위를 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인정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경의 자발적 추락은 단지 실수가 아니라 인정투쟁이라는 본능적 역설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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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단경은 거장 목진필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그림의 재능을 인정받고 선배 문하생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견디려고 하죠. 그러나 영화는 단경의 인정욕을 쉽게 채워주지 않습니다. 단경의 음모로 쫓겨난 다른 문하생의 자리에 단경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태범을 꽂아넣습니다. 문제는 태범이 일종의 천재로 정말 인정을 받아버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도하는 듯한 단경은 다시 한번 좌절에 휩쌓이고 그는 심지어 목진필 선생의 칭찬이 의례적인 말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영화의 이 질문은 무섭습니다. 만약 본인이 성장하는 듯 해도 재능이 없는 존재라면,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재능을 인정받으며 치고 나간다면 이 현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영화의 진짜 저주는 다크웹이나 살인마 한냐의 존재가 아닙니다. 그 장르적인 환상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현실과 욕망의 괴리입니다. 현실 속에서 단경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보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도망친 인터넷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인터넷이라는 도피처에서 자신을 가장 인정해주고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필이면 살인마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살인마는 단경이 없어져주길 희망하는 타인들을 없애줍니다. 자신이 가장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제일 끔찍한 인간이라면 그 사람에게 받은 인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공허한 인터넷에서 벗어나, 노력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현실의 차가움을 수긍하고 계속 고군분투를 해야할까요. 이것은 맞는 선택 이전에 거의 불가능한 선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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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한냐'로 알려지는 이 살인마 캐릭터 역시도 흥미롭습니다. 그가 저지르는 살인이라는 초현실적인 폭력보다도, 그 폭력을 통해 어떻게든 인정욕구를 채우려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인을 한다고 갑자기 모든 현실감각을 잃고 폭력에 중독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이 '한냐군' 역시도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살인행위를 인정해주진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자신의 살인을 사진으로 남겨 인증을 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가 인정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굳이 살인을 인증해가며 교감을 꾀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특정 장르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거액의 돈까지 뿌려가는 그가, 굳이 살인을 통해 인정받으려 한다면 이건 사실 그의 결핍을 증명하는 것일테지요. 나는 너한테 이렇게 돈도 팍팍 주고 네 그림과 똑같이 살인도 할 수 있다면서 자신이 그런 그림은 그리지 못한다는 걸 필사적으로 감추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원래도 살인이라는 행위는 현실에서 무능하고 결핍된 사람들이 사람을 압도하고자 할 때 저지르는 자폭에 가까운 행위니까요.
여기서 주경이 목진필 선생을 굳이 청부살인을 한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단경이 제일 충동적이고 통제가 안되는 사람 같지만 오히려 그의 주변에는 인정받지 못함을 견디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둘이나 더 있습니다. 천재, 혹은 인기작가, 혹은 "금손"으로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서 그렇지 않은 현실을 눈치챈 타인을 견디질 못합니다. 이 영화에서 인정욕구란 성공부터 살인까지 양 극단으로 인간을 이끄는 파멸적 동력입니다. 천재란 사람도, 살인마란 사람도 인정욕구를 어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내가 너를 인정해줄게, 너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이 거래 자체가 사람을 망가트리는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은 한냐가 주경에게 죽어주면서 덮여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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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은 "웹툰" 시장이었습니다. 즉 인터넷을 기반으로 인정욕구가 거래되는 곳입니다. 이곳의 근본적 속성이 다크웹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영화는 단경이 한냐를 만난 게 마치 다크웹이라는 신비한 공간 때문인 것처럼 그리지만 그 본질은 낯선 타인에게서 받는 인정과 보상이었습니다. 웹툰 시장은 보다 일반적 취향을 기준으로 훨씬 더 막대한 인정과 경제적 보상이 흐르는 곳일 뿐입니다. 단경이 웹툰 시장 진출에 성공했어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인정욕구에서 어느 정도는 초탈해야하는 심지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인정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별의별 작당을 다 합니다. 과거로 보내고, 죽은 사람을 환생시키고, 이미 주인공이 다 알고 있는 세계와 시간대에 다시 위치시켜 전지전능을 발휘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커미션]은 보다 솔직하고 현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습니다. 인정욕구는 그 자체로 마약 같은 것이고 그것을 채우는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험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하면서요. 이 이야기를 20대 오타쿠 여자를 중심으로 풀어가서 좋았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피부를 가진 초미녀 커리어우먼들의 걸크러쉬가 아니라 찌질하고 음침해서 인간적인 여자들이 욕망에 휘둘려대는 그런 이야기라서 더 신선했습니다.
오 보셨군요. 다행히 이 게시판에서 또 한 분이 더 ㅎㅎ 이 작품이 아쉽게도 메가박스 단독개봉이고 이렇다할 유명배우가 나오지 않아서인지 조용히 묻혀서 심도있는 리뷰글도 찾아보기 힘들던데 잘 읽었습니다.
전에 감상글 올렸던 '노이즈'도 충분히 재미있고 시사하는 바도 있는 호러물이었지만 이게 더 흥미롭고 써주신 것처럼 깊게 파고 들어가볼 부분도 많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