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듀게 일화...


 1.듀게는 어떤곳일까? 라고 묻는다면 글쎄요. 듀게란 곳이 시기별로 다른 구석이 많으니까 딱 잘라서 말할 순 없겠죠. 듀게는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가? 그리고 듀게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아 있는가? 라고 물어도 쉽게 유형화할 수는 없어요. 조회수가 찍히는 걸 보면 눈팅족이 글 쓰는 사람보다 수십배는 많으니까요.


 듀게는 그래도 만나보면 착한 사람이 많아요. 물론 강용석 말마따나, 진짜로 만나 봤는데도 나쁜 놈이면 그건 심각한 나쁜놈인 거긴 하죠. 



 2.오래전의 일이예요. 누군가가 만나자고 쪽지가 왔어요. 그런데 뭔가 느낌이 쌔해서 회원정보를 조회해 봤어요. 역시, 전에 나에게 악플을 단 놈이었어요.


 그런 녀석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밥 사주는거냐.'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사준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역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그럼 밥먹고 커피도 사는 거냐.'라고 물었어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포기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는 커피도 사주겠다고 대답했어요. 


 공짜 밥에 공짜 커피라면 안 나갈 수가 없어서, 그냥 나가기로 했어요. 만나기 전날, 듀게에서 만난 여자와 만나서 '내일 나한테 악플 단 놈이 찾아온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어.'라고 말하자 만난 뒤의 얘기가 궁금하다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3.신세계백화점에서 만났어요. 기다리면서 혹시 이 녀석이 나를 엿먹이려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여기까지 나를 나오게 만들었으니, 안 나오기만 하면 충분히 엿먹인 게 되니까요.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어서도 안 나오길래 역시인가 싶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늦게나마 그가 나타났어요. 마른 외모의 여자였으니까 '그'라고 하면 안되겠지만 그냥 이렇게 계속 쓰죠. 어쨌든 최대한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멀리서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냐고 너스레를 떨고...식당가로 모시겠다고 친절한 척 길안내를 하다가 그의 목덜미를 잡고 외쳤어요.


 '야 너 나한테 악플 달았었지? 잡았다 요놈!'



 4.휴.



 5.그는 매우 놀란 것 같았어요. 닉네임도 바꿨는데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묻길래 말해 줬어요. '회원정보를 켜면 닉네임을 바꿔도 아이디는 그대로야. 몰랐어? 하긴 몰랐으니까 여기까지 나온 거겠지만.'이라고 대답해 주자 그가 이해했다는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쨌든 왜 악플 달았냐고 묻자 '그때는 좀 얄미워서 그랬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 악플이 좀 얄밉다고 해서 달 수 있는 수준의 악플인가...라고 갸우뚱거렸지만, 강남 한복판에 서서 계속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쨌든 밥을 먹으러 갔어요. 나는 돈까스를 먹었던 것 같고 상대는 돈까스덮밥을 먹었던가 그랬어요. 최대한 비싼 걸 사게 만들고 싶었는데 백화점 식당가라고 해서 딱히 비싼 건 없었어요.


 그리고 '네가 커피도 사는 거 맞지?'라고 묻자 그는 그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며 싫다고 했어요. 어쨌든 커피는 내가 사게 됐어요.



 6.이렇게 별거 없이 끝난 일화를 그녀에게 들려줬는데 그녀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어요. '너 그자리에 방역복 입고 나갔냐?'라는 거였어요. 약 일주일전에 백화점 행사장에서 클럽모나코 깔깔이를 샀는데 그녀는 그 옷을 싫어했거든요. 마치 방역복 같다며 절대로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나는 역시 그 깔깔이를 입고 갔다 왔죠.



 7.이 글의 주제가 뭐냐고요? 그런 건 없어요. 인생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지 무언가 주제가 있을 리가 없죠. 그때가 2017년이었는데...흠.


 이제는 2017년에 만난 그들도 없고 그들의 연락처도 없게 됐다는 게 이 글의 주제라면 주제겠네요.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그 깔깔이를 입어요. 아직은 반팔을 입지만 이제 슬슬 추워지니 그 깔깔이를 또 꺼내서 입겠죠.


 가끔 돈 얘기를 주구장창 하긴 하지만 나는 정말 돈을 안 쓰긴 해요. 2017년에 안 팔리는 옷들을 한데 모아서 연 할인행사에서 산 깔깔이를 아직까지도 입고 다니죠.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산 옷은 얼마쯤 입다 버릴 거예요.



 8.하지만 나는 해진 깔깔이를 입으면 아직까지도 2017년부터 쌓아온 추억이 서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죠. 오늘은 윈도우를 새로 깔았어요. 아는 동생이에게 '컴이 말썽이야'라고 하자 좋은 가격에 나온 컴퓨터를 알아봐준다고 했지만 됐다고 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컴퓨터는 2012년에 산 거예요. 이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내 글을 읽어온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겠죠. 인터넷에서 막 현금 30억 50억 운운하고 멀티버스를 여행한다는 소릴 하는 사람이 2012년에 산 컴퓨터를 쓰고 있다고? 그게 말이 되나? 라고요. 월 200만원 버는 청년이라도 2012년에 산 컴퓨터를 그대로 쓸 리는 없겠죠.


 하지만 나는 이 컴퓨터를 처음 샀을 때의 일을 기억하거든요. 2012년에 이 컴퓨터를 사면서 '내가 이제야 집에서 던파를 할 수 있어'라는 대화를 나눴던 걸 기억해요. 



 9.이제는 던파를 하지도 않고, 이 컴퓨터에서조차도 던파는 잘 돌아가지 않아요. 던파란 게임도 이것저것 업데이트를 하고 업그레이드를 시켰으니까요. 애초에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한 컴퓨터를 십수년씩 썼기 때문에 처음에 샀을 때의 성능조차도 잘 안 나오죠.


 그래픽카드를 새로 단 것도 아니고 램을 새로 박은 것도 아니예요. 하지만 그냥그냥...꾸역꾸역 이걸로 드라마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컴퓨터가 못 견디면 다시 윈도우를 깔고 그러면서 써 왔죠.


 도구를 인격화시키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 8기가 램 컴퓨터가 버텨줄 때까지는 계속 쓸 거예요. 엄청나게 싼값에 산 클럽 모나코 깔깔이도 슬슬 해져가고 있지만 계속 입을거고요. 



 10.이 컴퓨터를 버리게 되면 '이제 집에서 던파를 할 수 있어'라고 말했던 날이 기억이 사라지고, 깔깔이를 버리게 되면 방역복 같은 옷을 입지 말라고 신경질내던 그녀와의 기억도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새 물건을 잘 안 사는 건 돈이 아까워서는 아니예요. 새 물건을 안 사야 기존의 물건을 강제로나마 계속 쓸 거니까 안 사는 것 같아요. 최신 그래픽카드에 128기가 램 컴퓨터를 사서 한번만 켜보면 이 컴퓨터는 순식간에 잊혀질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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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게 번개 일화를 쓰다가 의식의 흐름으로 글이 멀리까지 왔네요.







    • "잡았다 요놈!!!" 에서 육성으로 웃어 버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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