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횡설수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지난 번 글에 제목이 안 끌렸다고 썼었는데 이 제목은 독일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실러의 시 중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슈베르트가 이 시 일부로 곡을 만들기도 했다하고요. 샐리 루니가 후기에 써 두었네요. 하지만 표지는 정말...그래서 그냥 전자책을 샀었습니다.

30대를 목전에 둔 두 여성을 중심으로 우정과 연애 문제를 잘 헤쳐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주로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시대에의 관심도 좀 담겨 있고요. 인물들의 시대와 시간은 작가 자신의 시대, 작가 자신의 시간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일정한 시기를 거치고 한 고비 넘긴 다음에 돌아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라 조금은 설익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성적인 묘사가 세밀한 작품은 오~래간만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나이를 의식하였습니다. 이 소설이 전적으로 여기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소설이 불러온 생각이기도 한 것인데, 문학 작품이 독자의 나이대를 탄다는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특정한 시기를 다루는 작품이라 해서 나이대를 탄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것은 청춘들 이야기이며 그들에게 훨씬 다가가는 바가 있겠고, 나한테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고, 나는 이 작가의 책을 한 번 살폈으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모든 젊지 않은('늙은'이라고 차마 쓰지 않음) 독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완성도 있는 소설을 요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정서적으로, 세대적으로 익숙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음을 인정하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쓰자니 마치 이 작품이 가치관이나 인물들 생활 방식이 아주 진보적이거나 혁신적이거나 과거 파괴적인 거 같은데, 아닙니다. 오히려 이 친구들 좀 보수적인데? 싶은 면이 있는 소설입니다. 

제가 나이든 사람들 작품, 시간이 좀 흐른 소설을 주로 읽고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을 모처럼 읽어 그런가 합니다. 국내외 불문하고 젊은 작가들 소설에는 사실 손이 좀 안 갑니다. 읽는 행위 자체의 힘듦, 독서 속도의 느림과 한정된 시간, 이런 문제가 있고 이는 앞으로 나날이 더 심화될 문제겠습니다.  

작가 자신이 모든 세대에게 호소력 있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자기 시간의 독자와 함께 나이들며 작가로 계속해 나가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생각을 맺자면 제가 읽기에는 아주 젊은 소설이었고 공정하게 평가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었다는 것. 그래도 내용 관련 잡담을 조금 잇겠습니다.

       

아일린과 엘리스는 대학에 가서 만나 친구가 되는데 둘 다 또래 사이에서 무난하지 않은 애들이라 대학 때까지 깊이 사귄 친구가 없었어요. 둘은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서로 유일한 친구가 됩니다. 졸업 후 시간이 몇 년 흐르고 한 사람은 편집자로 더불린에, 한 사람은 작가로 시골 동네 바닷가에 면한 집을 빌려 살고 있어요. 독자에게 아일린 쪽의 정보를 더 풍부하게 줍니다. 가족과 일상의 세부가 훨씬 많이 제공되네요. 성실하게 잡지사 일을 하고 있으며 평범한 편입니다.(외모 빼고) 그에 비해 엘리스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데 현실적인 고통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고 가족이 돈 문제로 고통을 준다는 언급은 있으나 가족이 등장하진 않아요.(책이 많이 팔려서 부자가 된 후 가족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책이 많이 팔린 것과 유명세에서 압박감을 받기도.) 각각의 남자들 두 사람 중에서도 시골 동네 청년 펠릭스 중심의 내용 전개 장면은 있지만 아일린의 상대인 사이먼 경우는 이 인물에게 분량을 주어 이해를 보태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길을 걸으면 여자들이 돌아보는 외모임은 강조) 이런 점이 좀 균형이 안 맞습니다. 펠릭스가 계급적으로 나머지 인물과는 달라서 이 사람을 따라가며 이것저것 묘사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먼은 가톨릭 신자라 이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격을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재미가) 없기도 합니다만. 하여튼 남자들은 좀 더 주변 인물들입니다. 이 두 커플이 밀고 당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소설은 안정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너무 안전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후에 이들이 결혼을 하든, 아이들이 생기든, 홀로 나이를 먹든, 샐리 루니의 앞으로의 소설적 재료는 더욱 (전통적으로)심각해질 것이라고 저는 확실하게 내다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두 여자 친구의 일상이 전개되는 한편으로 그 사이사이에 주고 받는 이메일을 통해 내면 풍경, 관심사가 서술되고 있어요. 

아일린과 엘리스의 이 편지들을 신경써서 읽게 됩니다. 일상의 보잘 것 없음과 한심한 선택들에 비해 글이라는 것은 자신의 최선이 드러나므로 이 사람들이 자기라고 알아 봐 주기를 바라는 모습을 잘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부작용도 따릅니다. 일상 장면을 읽으면서, '편지에 쓴 것과 다른데?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 실제로는 왜 그러냐고?'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ㅎ 넘어가야죠. 현실보다 더 나은 부풀려진 자아로 인해 본인들이 제일 괴로울 것이라는 점이 이 소설에 담긴 이야기거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보다 이메일을 주고 받는 두 사람을 보며 우정이란 이런 것이지, 했습니다. 한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 다른 한 사람이 이에 반응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고 필요하면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자기 생각을 확장시켜 응답하는 것. 누가 이렇게 할까요.(친구여 잘 있는가...) 부러웠습니다. 나의 관심에 반응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찾아보고 확장하여 응답해 주는 사람, 아직도 있으신지요. 








    •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것은 청춘들 이야기이며 그들에게 훨씬 다가가는 바가 있겠고, 나한테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고, 나는 이 작가의 책을 한 번 살폈으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




      저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소설들은 제가 어릴 때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나이가 든 지금 다른 소설들이 담고 있는 패기나 자유로움을 이제와서 잘 느낄 수 있을까 살짝 회의감도 들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나인을 더 일찍 읽었으면 좋았을까 싶네요. 정신적 연령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나이들면서 쌓인 것과 잃은 것이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Thoma님의 정신연령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글이 찾아지면 좋겠네요.


      • 네 영화도 책도 적절할 때 만나면 확실히 흡수가 다른 작품들이 있습니다.


        나이나 세대를 뛰어 넘어서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가 발견되는 명작도 있고요. 


        어떤 책이든 제 나름으로 투영해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읽으며 나이듦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읽지 못한 어마어마한 갖가지 책이 있으니 이리저리 넘겨 봐야죠. 

    • 감사합니다. 글 '꼼꼼히' 읽었어요. 슈베르트는 자기 소유의 피아노를 죽기 전 '해'에야 처음 샀다네요. 너무 슬퍼요ㅠ.ㅠ


      저는 다른 '커뮤니티'에서 매일 육년이상 상당한 분량의 글을 주고받던 분과 며칠 전부터는 연락 안해요. 그냥 덤덤해요. 




      아시는 노래겠지만 이렇게 들으니 또 뭉클해요.


      [music]윤선애 - 가을밤 (이태선 시, 박태준 곡) : 클리앙

      • 저는 듀게 외엔 모르지만 아직도 커뮤니티라는 가상 공간이 낯섭니다. 가끔 커뮤니티에서 이름들을 알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생각합니다. 거의 매일 흔적을 남기던 이들이 어느날 문득 발을 끊으면 누구에게 가서 이분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야 되는지도 모르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죽어도 그만 어딘가에서 살고 있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닉네임들을 대해야 하는가 싶기도 합니다. 글을 통해 공감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로그인하고 있는 순간일 뿐이지요. 이걸 길게 늘어뜨려 보면 현실 인생에서 오가다 만나는 관계도 그렇지 않나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커뮤니티는 좀 가혹한? 느낌입니다.

      • 저도 읽은 것 같아요. 안 본 영화가 대부분이라 대충 봤지요.

    • 제가 누군가의 관심에 반응하고 깊이 생각하고 찾아보고 확장해서 응답한 적이 있긴 했을까요. 타인에게 그런 걸 하거나 받기 이전에 제 자신의 관심과 반응을 좀 더 살피려하고 있어요. 스스로를 살피는 것조차 타협하기를 원하는 걸 깨닫고선 정신이 조금 났거든요.
      • 두 인물에게 저런 인상을 받은 것은 편지(이메일) 왕래여서 가능했던 우정의 실천인 점이 큽니다. 두 인물도 현실에서의 만남에는 어쩐지 적극적이지 않고, 만나서도 글에서만큼의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오래 전에 저도 편지 쓰기를 했었던 기억도 났어요. 이제는 제가 못 그러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기대가 없어진 듯합니다. 

    • 본인의 부풀려진 자아를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친구가 몇 년 전에도 있었는데 모르면 몰랐을까 알면서 모른 척 하며 계속 받아주기란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 피곤하셨겠네요. 저는 좀 쪼그라진 자아를 갖고 있어선지 부풀려진 자아를 가졌다 싶은 사람들은 피하게 되더군요.ㅎ 

    • 아. 마침 저도 요런 느낌 받을 때가 자주 있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하하. 뭔가 그 '청춘'을 다루는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네 네 참 좋은 얘기군요. 그런데 저 보라고 만든 이야긴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은... ㅋㅋ 물론 반농담이구요. 아 그래 이랬었지. 그랬었지. 그러고보니 이런 느낌 받고 저런 고민이란 걸 해 본 게 정말 오래 전인데 아마도 이제 죽을 때까지 저럴 일은 없겠구먼. 이러면서 창작자의 의도와 관계 없이 슬퍼지고 그러는데요. 차라리 집에 있는 녀석들이 좀 더 크면 자식들 얘기라고 생각하며 대견한 느낌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 저랑 비슷한 얘기인데 왜 로이배티 님이 표현하시면 훨씬 재미나죠? 입말의 자연스러움이 글에 잘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평소 대화를 잘 안 하기 땜에 글도 좀 딱딱해지고 점점 고리타분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배웁니다. 

        •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냥 이런 어투가 아니면 글을 못 쓰는 사람이어서요. ㅋㅋㅋ


          오히려 thoma님께서 쓰시는 글과 문장들 읽으면서 부러워하곤 합니다. 저도 이렇게 정돈된 느낌으로 쓰고 싶은데 이젠 그른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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