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생각 잡담
김우창에 대한 다큐가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20년에 걸쳐 조금씩 찍은 걸 마무리했다고 하네요. 며칠 후 biff에서 상영된다고 합니다.
기사를 보고 검색하다가 이분의 평창동 주택과 가족들을 보게 되었는데,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서 녹음을 이룬 정원이 통창으로 보이는 거실이 아름다웠어요. 거실은 넓고 천장이 높은데 한 벽면 가득 책이고 소파 주변 곳곳에도 책이 놓였네요. 서재는 말할 것도 없이 책상 자리를 뺀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가히 책의 밀림입니다. 이분의 부친이 일제 때 경찰 출신으로 다선 국회의원이었던 것도 이번 검색 중에 알았어요.
오래 전에 유홍준의 집이 잡지에 실린 것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생각났습니다. 문화유산답사 책들로 공전의 판매 부수를 올린 이후였는데, 나는 그때까지 유홍준의 글은 한두 권 읽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잡지를 본 이후로 관심이 없어졌어요. 그냥 관심이 안 가게 되었습니다.
김우창의 집과 일상 장면을 엿보고 나서 이번에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자 티가 나게 집을 잘 꾸며 놓은 것은 아니었어요. 40년 살고 있는 집이니 비가 새는 곳도 있고 천소파는 모서리들이 닳아 헤졌고 물건들은 오래 쓴 것처럼 보이더군요. 집 자체는 규모가 예사롭지 않아서 실내에도 짧은 계단들이 있고, 현관을 나오면 정원으로 연결되는 긴 계단이 이어집니다. 정원은 나무들과 풀이 다듬어지지 않고 우거져 있어서 숲 같은 느낌이었어요. 눈이 온 날 선생은 낙상을 조심하며 긴 빗자루로 가파른 계단을 쓸었어요. 어쩐지 낡아 보이는 얇은 패딩을 입고 눈을 쓸고, 거실에 앉아 창으로 눈 내린 숲을 보더군요.
오래 전 어디선가 골목을 걸을 때, 대문 너머로 나무들만 보이던 집을 지나면서 저런 집엔 누가 살까 생각했던 일이 있는데 누가 사는지 내부가 어떤지 들여다 본 기분이었습니다.
글로 만나 상상하던 인물과 실제 인물 사이에 차이가 커서 둘 사이를 조절하고 재설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젊을 때는 이런 일이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덜 어려운데, 매번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것을 고려하게 되었나 봅니다. 그 중 한 가지를 꼽아 보자면 어떤 집에 살아도 다양한 방향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사는 일의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겠습니다. 그리고 대상이 되는 인물이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의 고통을 언제나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타인의 이런 힘듦에 대한 사색에 평생 매진한 사람이라면,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에서 때로 나무가 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을 대상으로 내가 가질 감정도 아니고 이 글이 나의 좁디좁은 경험을 강조하는 꼴이지만, 기사를 본 후 생각이 오래 전과는 좀 달라진 듯해 끄적여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저처럼 '어떤 집이길래?' 라는 게 궁금해진 분들을 위해...
적어 주셨 듯이 막 '부잣집이다!' 이런 느낌은 아닌데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집에서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일상을 보내며 사는 실존 인물을 보니 현실감이 사라지는 느낌이... ㅋㅋ 저처럼 게으른 사람은 평소에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의 집이지만 이건 왠지 부럽습니다. 하하;
막 부잣집이다! 는 아닌데 찐 부잣집 같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다른 건 다 두고 거실 지척에서 보이는 나무들이 넘 부러웠어요.
깊은 밤에 찾아서 올려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지속 가능한 듀게 생활을 위해 취침 시간을 좀 당기시고 건강 챙겨 주시고요.ㅎㅎ
유홍준씨의 집 사진을 보고 관심이 사라졌다는 게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네요
오래 전 일인데, 그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네요. 지금 생각하기에 아마, 어느 진영이든 개인적으로 사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 여건에 달려 있는가 보다,라는 생각 아니었나 해요. 그냥 정이 안 갔습니다. 그 집에 관한 자세한 사정도 모르는 상태면서, 어렸고 단순했던 감정이었어요. 90년대 이후로 사회의 많은 것이 달라지고 변화해서 저도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별 계기도 없어서 저분에 대한 관심이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댓글을 쓰려고 검색하다 보니 '화려하되 사치하지 않으면 된다, 계층간의 차이만 의식하면 문화의 발전이 어렵다'라는 유홍준이 최근에 했다는 언급을 들었습니다. 문화 전반에 경험과 고민이 많은 분이니 그런가 보다 합니다만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저라면 공개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닌...
젊을 때의 그런 감정이 저에게 완전히 떨어져 나갔는가 생각해 보니, 인간은 복잡하며 그런 감정들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려운, 뭔가 나머지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김우창님의 고택에 대한 글에 다른 글을 쓰려니 민망하긴 한데 유홍준의 말에 이런 생각이 좀 드네요. 화려하되 사치하지 않으면 된다. 정갈하고 사치 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죠. 아니 그리고 사치하면 어떤가 싶기도 하고요. 계층간의 차이만 의식하는 게 아니라 미적인 이상을 끝까지 추구하는게 문화발전에 더 도움되는 거 아닌가...
하여간 저는 수십년 전에 실대면 하고는 책도 안읽고 기사도 안 보고 완전 관심을 끊은 분이라 괜히 토마님 글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악플(?) 달아 봅니다.
이해하자면 문화 정책이나 행정에 몸 담은 경험과 개인 미의식이 결부된 입장이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아니고 정책과 관련된 사람은 계층간의 차이를 조절할 수 있는 걸 비중 있게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사치'라는 게 사람마다 기준치가 달라서 화려함과 구분도 참 애매한 거 같고.....
저도 미적인 이상이 끝까지 추구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런 것을 알아 볼 눈도 갖고 싶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