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28년 후] 관람 후기 - 3

  •  영화는 죽을 뻔 했다가 귀환한 스파이크 부자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곧바로 파티 장면으로 넘어간다. 극렬한 공포 다음에는 곧바로 쾌락이 이어진다. 이 비정상적인 호흡은 오히려 공포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노력처럼도 보인다. 스파이크는 왕자처럼 어떤 좋은 의자에 앉아있고 제이미는 신나서 단상 위에서 사냥 장면을 묘사한다. 한 발 날리고, 두 발 날리고... 그는 스파이크의 활약을 과장하면서 감염자들을 표현할 때는 욕을 섞어서 조롱한다. 그는 스파이크가 불편해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영화는 초반부에서 제이미가 아일라에게 욕 좀 쓰지 말라고 하는 걸 보여주었다. 너의 욕설은 안되지만 나의, 우리의 욕설은 가능하다는 이 이중성 앞에서 공동체 전체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성이 흘러나온다. 어떤 외부인을 때려잡았다고 할 때, 그 외부인을 향해서는 마음껏 욕설을 갈겨도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닌 어떤 존재들은 미개하고, 멍청하고, 건방지고, '우리'한테 덤볐다가 개박살이 나도 되는 그런 하찮은 존재들이다.

 

  •  스파이크는 처음 마주친 슬로우 로우를 제외하면 제대로 감염자들을 죽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제이미는 스파이크가 거인 사냥꾼이라도 된 것처럼 무용담을 지어서 늘어놓는다. 영화는 여기서 영웅신화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공되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서 가장 대두되는 것은 전통적 남성성이다. 바깥의 세계는 위험하고, 우리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용감하고 날쌘 전사가 필요하며, 공동체는 거짓을 보태서라도 어떤 영웅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한다. 마을 사람 그 누구도 감염자를 간신히 죽이고 내내 도망만 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영웅은 태어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재해석되고 창조되어야한다. 

 

  •  연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화살을 맞은 얼굴 가면을 쓴 아이가 보인다. 스파이크의 환상이 현실과 겹쳐있는 것인지, 현실에서 정말로 가면을 쓴 아이가 있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만약 이것이 스파이크의 환상이라면, 그는 아직도 화살을 쏴서 감염자들을 해쳐야 했던 트라우마를 돌아와서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스파이크는 제이미가 이웃집 여자와 몰래 나가는 걸 본다. 뒤따라간 스파이크는 그 둘의 불륜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에게 닥터 켈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할아버지를 축제에 대신 보내고 자신은 엄마 곁에서 잠든다. 

 

  • 제이미가 아침에 돌아온다. 제이미는 스파이크와 아일라 사이에 눕지만 스파이크는 내려가버리고 아일라는 등을 돌리고 있다. 스파이크는 아침을 준비하는 제이미에게 닥터 켈슨에 대해 묻는다. 제이미는 닥터 켈슨이 시체를 수십구 늘어놓고 있는 괴인이었다며 위험한 사람이라 일축한다. 엄마를 저대로 죽게 내버려둘거냐고 물으며 스파이크는 제이미가 이웃집 여자와 함께 살 건지 묻는다. 제이미는 스파이크의 뺨을 때리고 스파이크는 올라가버린다. 적을 물리치는 가부장제의 아버지는 그 폭력을 가족 내부로 향한다. 제이미는 사과를 하려고 하지만 스파이크는 칼까지 꺼내며 대화를 거부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폭력은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발산한다. 제이미는 분하다는 듯 벽을 때리며 내려간다.

 

  •  스파이크는 마을 창고에 불을 내고 시선을 돌린 뒤 아일라와 함께 본토로 향한다. 영화는 스파이크가 제이미와 같이 갔을 때의 어둡고 축축한 화면과는 의도적으로 다른 밝고 화사한 화면을 보여준다. 모자는  꽃이 가득 핀 길을 걷는다. 스파이크는 아버지와 함께 했을 때는 보지 못한 본토의 또 다른 모습들을 본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연은 위험한 생물들이 우글거리는 공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평화롭고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공간이 된다.

 

  •  아들과 어머니는 버려진 성당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한다. (프롤로그에서 지미가 아버지를 찾아 교회에 들어갔다가 쫓겨난 장면과 또 대조된다) 아일라는 외할아버지가 장난끼가 많은 사람이었다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일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제이미가 보여준 폭력적이고 강인한 아버지 상과는 또 다른 친근한 아버지상을 제시한다. 

 

  •   스파이크는 자신이 불침번을 서기로 하지만 잠들어버린다. 슬로우 로우가 성당 안을 기어서 오고 스파이크를 깨물려고 한다. 스파이크가 잠에서 깨자 아일라가 깔고 있던 푸른 담요로 쌓인 채 머리가 깨져 죽은 슬로우 로우를 본다. 아일라에게 묻지만 아일라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아일라가 슬로우 로우를 돌에 부딪혀 죽인 장면을 보여준다. 아일라가 만약 자기가 죽인 걸 기억하는데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거라면 왜 그런 것일까. 제이미와 달리, 그는 아들에게 무언가를 죽이는 것 자체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  다른 곳에서 군인들과 감염자들의 전투가 벌어진다. 군인들은 총을 쏘며 감염자들을 물리치지만 중과부적이라 폐터널쪽으로 간신히 도망친다. 어두운 폐터널 속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은 알파를 마주치고 한 명은 척추가 뽑혀서 죽는다. 남은 군인은 반대방향으로 총을 쏘며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이후 영화는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서로 장난을 치는 감염자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항상 미쳐있거나 흉포한 상태로 있지 않으며 본인들끼리는 평화로운 상태로 모여있다. 이것은 제이미와 본토를 다닐 때 영화가 상상 속 장면으로 보여주던 적외선 화면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 감염자들 사이에서 여자 감염자는 무려 임신 상태다. 단순히 병에 걸린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무리를 짓고 번식하며 공동체를 이어가는 존재들이라면 이들을 어떻게 봐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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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터 켈슨을 향해 가다가 아일라는 꽃밭에서 코피를 흘린다. 이를 닦아주는 스파이크는 아일라의 등뒤에서 나타난 감염자를 본다. 꽃들 사이로 햇볕을 받으며 걸어오는 감염자의 분위기는 느리고 허약해보인다. 아일라가 말리지만 스파이크는 그 감염자를 활로 쓰러트린다. 이윽고 다른 감염자들이 모자를 뒤쫓기 시작한다. 이 때도 스파이크가 감염자를 먼저 죽이고, 그 뒤에 다른 감염자들이 쫓는 순서대로 추격전이 시작된다. 만약 감염자들이 비감염자들의 학살에 분노해서 반응하는 것이라면?

 

  •  모자는 근처의 주유소로 간신히 대피한다. 안에는 가스가 꽉 차있고 모자와 감염자들 모두 가스에 취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위에서 어떤 군인이 엎드리라고 한 뒤 총을 쏘고 가스에 불이 붙어 엎드리지 않았던 감염자들은 전부 다 불길에 휩쌓인다. 이 때도 영화는 이 감염자들이 불타고 있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어느 정도 길게 보여준다. 감염자들을 물리쳤다, 라고 하는 대신 감염자들은 불에 타면서 이렇게 괴로워했다, 라고 하듯이. 

 

  •  군인은 자신을 에릭이라 소개하며 순찰정이 좌초되어 이 본토로 흘러들어왔다고 밝힌다. 그는 스파이크의 공동체로 가고 싶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닥터 켈슨을 찾는 모험에 합류한다. 아일라는 총을 보며 재수없는 놈이라고 그를 평한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내뱉은 말이지만 묘하게 뼈가 있는 말이다. (이 전작인 [28주 후]에서 주인공 일행은 총을 든 군인들과 싸웠다) 에릭은 왜 아일라가 스파이크를 '아빠'라고 부르는지 의아해한다. 아일라는 아직도 이미 무너진 '아버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어떤 소리가 들리고 아일라는 폐지하철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여성감염자가 부풀어오른 배를 안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계속 소리를 질러대는 여성감염자에게 아일라는 손을 뻗는다. 여성감염자는 손을 맞잡고 아기를 출산한다. 아일라는 그 아기를 받아서 탯줄을 잘라준다. 에릭은 뒤따라 들어와서 이 광경을 보고 기겁한다. 그는 "그건 좀비야!" 라고 외친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 감염자는 좀비로 구분되지 않고 좀비라는 게 허구적 개념임을 역설한다. 아기를 버리지 않으면 다 쏴죽여버리겠다며 에릭의 흉포함이 돌출된다. 출산 뒤 기진맥진해있던 여성감염자가 정신을 차린 뒤 다시 날뛰려고 하고 에릭은 여성감염자를 쏴 죽인다. 허망해하는 아일라와 스파이크를 보며 욕설을 날리던 에릭은 갑자기 허공으로 불쑥 들어올려지고 이후 알파에 의해 척추가 뽑힌다.

 

  •  아일라가 여성감염자와 손을 맞잡은 장면을 통해 영화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만약 감염자들이 하나의 야생동물이고 그들 역시도 인간과 비슷하게 아기를 낳고 기르는 존재들이라면 어떡할 것인가. 그들은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을 해하려는 존재만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그 생명의 계승을 자기들끼리 이어나가고 있다면? 이 질문은 에릭의 총격난사에 바로 터져나가고 이후 분노한 알파가 스파이크 모자를 뒤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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