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28년 후] 관람 후기 - 4

  • 스파이크 모자는 알파에게 잡히기 직전까지 몰린다. 이 때 알파를 향해 어떤 노인이 독침 같은 걸 쏘고 그걸 맞은 알파는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멈춰있게 된다. 그 노인은 스파이크 모자가 그렇게 찾고 있던 닥터 켈슨이었다. 그는 그 알파를 '삼손'이라고 부르며 알파가 깨기 전에 다 같이 자신의 거처로 도망가자고 한다. 

 

  • 흘러가는 듯 하지만 이 장면에서 유의미한 정보들이 나온다. 하나는 그가 알파에게 이름을 붙여줄만큼 알파를 자주 목격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알파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 몸이 마취되어있다면 그 틈을 노려서 죽이는 게 모두에게 훨씬 안전하지 않은가? 여기서 영화는 거의 최초로 비감염자가 감염자를 죽이지 않고 공존해온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닥터 켈슨은 어지간하면 감염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감염자를 두려워하거나 위험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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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들은 흐르는 강을 건너 닥터 켈슨의 거주지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엄청난 높이의 해골 무덤들이 있다. 켈슨은 자신의 몸을 감염을 막기 위해 "요오드"로 온몸을 칠해놓았다고 말한다. 그는 여태 죽은 사람들을 다 여기에 장사지내주었다고도 밝힌다. 여기에서 많은 편견들이 걷혀나간다. 그는 피에 절은 미치광이 의사가 아니다. 그는 온몸에 요오드를 묻힌 채, 장례를 치뤄주는 사람이다. 만약 '죽음'에 대해서도 무조건 피해야하고 그것은 끔찍한 것이며 그 자체로 끝이라는 편견이 있다면, 그것을 다시 재고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영화는 켈슨이 화장을 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는 두개골을 쇠통에 넣고 불로 달궈서 머리카락이나 살점을 다 태워 없앤 다음 해골을 꺼내서 물에 빠트려 식히고 씻어낸다. 이것은 일종의 노동이며 장례의식이다. 죽음을 누군가의 시체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생명 활동이 끝난 다음의 육신을 일일이 다듬고 해골만을 남긴다. 죽음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한 끝에 찾아오는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를 보내주는 작별의 과정이다. 죽음은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연현상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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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이크는 아일라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고쳐주라고 하지만 켈슨은 아일라의 신체에 이미 암이 상당부분 전이된 상태라고 진단한다. 스파이크는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고 믿지만 켈슨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일라가 스파이크를 안아주고 있을 때 켈슨은 스파이크에게 마취침을 쏴서 맞추고 아일라는 켈슨을 따라나선다. 아일라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 때 마취침으로 어지로워진 스파이크의 눈에 불씨가 소용돌이처럼 흩날린다. 잠깐이지만 이 여정에서 함께 나눈 시간들이 플래시백으로 스쳐간다. 이후 켈슨은 스파이크에게 아일라의 해골을 건네준다.

 

  •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 '해골' 의 미쟝센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고이 잠든 것 같은 사망 상태를 보여주거나, 두 눈을 감겨주고 시체를 껴안는 등의 연출을 동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28년 후]는 대놓고 해골을 보여준다. 죽음이란 현상을 굳이 잠을 자는 상태처럼 그리지 않고 어느 문화권에서나 꺼림칙한 대상으로 여기는 해골로 보여준다. 영화는 두려운 이미지를 안겨주면서 두려운 개념도 포용할 수 있게끔 길을 연다. 해골은, 죽음은 괴롭고 끔찍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이제 중지되었다는 어떤 객관적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  만약 우리가 죽음의 어떤 이미지에 심취되어 다른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죽음과 연관된 다른 것들에도 다른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토에 왔던 첫번째 날 스쳐갔던 감염자들의 무시무시한 이미지가, 감염자들이 물가에서 해맑게 놀고 있는 또 다른 이미지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면? 닥터 켈슨에 대한 이미지와 실체의 괴리는 어떠했나. 죽음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죽음을 이끄는 다른 모든 것을 공포로만 정의하고 그것들을 피하려고만 하고 있는 것이라면?

 

  •  날이 밝고 스파이크는 떠나려고 한다. 이 때 삼손이 습격하고 스파이크와 켈슨은 두꺼운 쇠창살이 있는 참호에 숨는다. (이 장면은 오프닝에서 지미가 교회 구멍에 숨었던 씬을 상기시킨다) 삼손은 끝내 쇠창살을 뚫고 켈슨을 잡아 계속 참호 천장에 부딪힌다. 이대로라면 켈슨은 에릭과 마찬가지로 척추가 뽑혀 죽을 것이다. 이 때 스파이크가 마취침을 찾아 황급히 맞추고 삼손의 공격은 멈춘다. 영화 오프닝에서 지미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탈출했었다면, 스파이크는 죽이지 않고서도 무사히 탈출한다. 이 둘의 차이는 어떤 식으로 드러날까. 

 

  •  스파이크는 바닷길을 건너 아일라가 담긴 바구니를 걸어놓고 본토로 다시 떠난다. 그 안에 든 편지를 읽은 제이미는 바다로 뛰쳐나가 스파이크를 부르짖는다. 이제 아들은 가부장제의 가족에서 독립했고 아버지는 아들과 아내를 잃었다. 그 둘은 후에 재회해서 다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혹은 그 결별의 상처라도 아물게 할 수 있을까.

 

  • 스파이크는 본토의 어떤 곳에서 물고기를 굽고 있다. 이 때 감염자가 그곳에 나타나고 스파이크는 뒤로 물러서면서 그 감염자를 활로 쏜다. 이후 감염자들이 연달아서 나타나고 스파이크는 후퇴한다. 이 때 목사 복장을 한 금발머리 청년이 스파이크의 활솜씨를 칭찬하고 이제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말한다. 비슷한 금발의 청년들이 감염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그 어떤 부담이나 걱정도 없이, 감염자들을 죽이는 걸 낄낄대며 즐긴다.

 

  •   이 장면은 의도적으로 낯설게 찍혔다. 감염자에게 죽거나 감염자를 죽이는 행위를 몰입해서 감상하게끔 하지 않고 영화가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영화는 스릴넘치고 긴장이 "쩌는" 게임을 의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염자를 죽이는 걸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이건 이렇게나 잔학하고 철없는 짓이라는 것처럼, 감염자 죽이기에 신을 내는 지미일행에 초점을 맞춘다. 잘 차려입고 한껏 꾸민 지미 일행에 비해 감염자들은 헐벗은 원시부족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줄톱이나 창같은 다양한 도구로 학살당한다. 이 장면에는 무심하고 쾌감만 좇는 지미일행과 그들에 의해 처참한 살해를 당하는 감염자들만이 놓여있다.

 

  • 영화는 다시 묻는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인다는 그 핑계로 벌어지는 행위들이 정말로 전부 다 절박하고 필사적인 선택일 뿐이냐고. 시원하게, 아주 "끝내주게" 죽여버리는 걸 다들 원한다면 이런 장면이 당신들이 원한 게 아니냐고. 죽을지도 모르는 것 자체가 삶이라는 걸 이해한 스파이크는 죽음 자체를 농락하는 듯한 지미를 만났다. 이 다음 영화는 전작과 또 다른 톤으로 잔학하고 슬픈 이미지 속에서 우리가 외면하는 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대니 보일 특유의 영상미도 어디 안갔지만 각본을 쓴 알렉스 갈랜드가 이제 우려먹을 거 다 우려먹었다는 좀비 장르에서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부분들을 잘 분석해주신 것 같아요.




      관객들은 '이건 내가 기대하던 28시리즈가 아니야!'하면서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데 아쉽습니다. 어쨌든 흥행은 괜찮게 됐고 2편은 이미 촬영을 다 끝내놨던데 기대가 되요. 특히 지미 캐릭터

      • 긴 글인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이 기대와 다르다고 혹평을 맞는 건 좀 부당한 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흥미롭게 봤던 작품이라 여러가지를 빠트리지 않고 쓰고 싶더라고요. 속편도 재미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그 지미 캐릭터는 대체 어떻게 나올지...

        • 고 로저 이버트 영감님이었나 누가 영화를 보고 평가할 때는 'What is about'이 아니라 'How is about'을 봐야한다고 했다는데 굉장히 공감이 가더군요. 창작자가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하는 건 당연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로 하는거지 스토리가 이렇게 가야하고 캐릭터는 이렇게 행동해야하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건 망작이다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관객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 '좀비'라는 대상(이 영화에서는 감염자)을 무조건 이성이 통하지 않고 쳐죽여야 하는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어떤 주장들에서 시대정신같은 걸 느꼈습니다. 별로 좋은 징후는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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