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히치콕을 봅니다. '39계단' 짧은 잡담

 - 1935년작이니 대략 90살... 런닝 타임은 1시간 25분.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손가락 아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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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그림이지만 제목에 입체감 넣은 디자인이 정겹습니다.)



 - 런던의 한 극장에서 진행되는 쇼를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지식을 다 암기해서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해준다는 미스터 브레인인지 뭔지... 가 나왔는데 답하는 폼을 보니 정말 아는 게 많긴 하지만 모르는 것도 많은지 대충 얼버무리고 그런 게 많네요. 암튼 그러다 '왜 우리 질문에 대답 안 해줘!'라는 노동자 계급 관객들이 성질을 내서 난리가 벌어지고. 이때 갑자기 울리는 총성에 사람들은 우왕좌왕 뛰쳐 나오고. 우리의 주인공 리처드 해니도 그 중 하나인데요. 갑자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신비의 여성 아나벨라를 자기 집까지 데려왔더니만... 기대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가 무슨 정보 요원이네 어쩌네 하면서 이상한 소릴 늘어 놓으니 대충 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재운 후에 본인도 잠이 드는데... 꼭두새벽에 갑자기 이 여자가 등에 칼을 꽂고 쓰러져 죽어요. 그러고 밖을 보니 감시하는 남자들이 보이고. 헐레벌떡 도망치고 나니 본인은 살인 누명을 써 버렸고... 어쩌겠습니까. 여자가 죽기 전에 들려준 이야기와 지도 한 장에 의지해서 모험을 떠나는 리처드 해니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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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저 여인 등에 칼 꽂은 남자들이 왜 주인공은 그냥 두고 갔던 건지 궁금해지지만 그러려니 합시다.)



 - 할 얘기가 많다면 엄청 많고 없다면 또 별로 없고 그런 영화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이후에 확립된 '전형적인 히치콕 스타일'이라는 게 정말 알알이 빼곡하게 박혀져 만들어진 이야기라서요. 수수께끼의 여성이 등장하고, 이 여자랑 엮이는 바람에 누명을 쓰고 쫓기는 남자가 정체불명의 악당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금발의 미녀와 아웅다웅을 하며... 이거거든요. ㅋㅋ 얼마 전에 '사보타주'를 보고서도 비슷한 얘길 했었는데 이게 한 살 더 많으니 선배이자 원조라고 우겨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히치콕의 다른 영화가 더 먼저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본 걸로는 그러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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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데 꼭 '히치콕 스타일'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현대 스릴러물들 이야기들의 원조라고도 우길 수 있을만큼 갖출 건 다 갖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악당들에게 쫓겨 들어간 막다른 곳에서 처음 보는 여자에게 다짜고짜 키스하는 걸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도 나오거든요. ㅋㅋ 자기 살아 보자고 억지로 끌고 간 여자랑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정들어서 든든한 아군으로 만드는 전개 같은 것도 이미 탄탄하게 완성된 형태로 구현되구요. 적인지 아군인지 알쏭달쏭한 캐릭터들이라든가, 쫓기는 와중에 얼떨결에 사람 많은 행사 무대에 올라가서 즉흥적으로 연기하다가 박수 받으면서 나온다든가,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물건 덕에 운 좋게 살아 남는다든가 클라이막스를 많은 사람들 지켜 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활극으로 마무리한다든가 등등등...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하나 같이 다, 이미 완성도가 높아요. 아무래도 아흔 살 먹은 영화이다 보니 추격이나 탈출 과정의 액션 같은 게 좀 싱거운 부분은 없지 않겠습니다만. 그런 게 의외로 많지가 않고, 정말 아주 조금의 나이브함만 눈 감아 주면 흔한 말로 '요즘 영화들보다 못할 게 없네?'라는 기분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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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으로 묶여 버린 남녀의 어쩔 수 없는 동행 역시 전통의 설정 되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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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가볍고 발랄 유쾌한 분위기인 가운데 초반에 만나는 이 부부 장면은 어둡고 현실적인데... 다 보고 나니 또 여기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랬네요. 저 여자분의 남은 인생 걱정도 되구요.)



 - 덤으로... 남녀 주인공의 아웅다웅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로버트 도냇의 경우엔 보는 내내 아 이 양반 뭔가 익숙한데... 하다가 문득 깨달았는데. 까마득한 영국 후배 남자 배우 톰 엘리스와 말투나 목소리가 꽤 비슷합니다. ㅋㅋ 게다가 내내 투덜투덜 깐족깐족거리는 대사들까지 겹쳐서 '루시퍼' 보는 기분이었구요.

 여주인공은 캐릭터가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주인공이 살아 남으려고 협조를 요구하는 낯선 금발 미인인데... 그냥 착하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내 정말 있는 힘을 다 해서 주인공을 일러 바치고 화를 내고 탈출을 도모합니다. 기껏 키스 신공까지 시전했는데 "이봐요들 니들이 찾는 남자 여기 있어요!" 라고 바로 외치는 걸 보고 웃음이. ㅋㅋㅋ 물론 막판엔 주인공 사정을 알고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도와주게 되긴 합니다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으니 '아니 90년전 영화가 오히려 더 말이 되네' 라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보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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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이 정도만으로도 상당한 스릴을 동반하는 볼거리였겠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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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부터 이런 걸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한 사람들은 다 상 받아야 합니다. 이미 옛날에 세상을 떠났겠지만요. 그야말로 '사료' 아닌가요.)



 - 암튼 뭐. 아흔 살이라는 나이나 흑백...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봐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잘 만든 스릴러였어요.

 후대에 완전히 정착된 이런 류 스토리의 원형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그런데 그걸 또 잘 만들어 버려서 느끼는 재미도 있구요. 

 감독이 감독이니만큼 긴장되는 순간들에선 이미 원숙한 연출을 시전해 주면서 또 계속해서 피식 웃을만한 유머를 넣어주는 센스도 좋구요.

 암튼 복잡하게 따질 거 없이 그냥 '재밌는 영화였다'라는 게 포인트 되겠습니다. 왓챠에 있으니 심심하고 볼 거 없으실 때 한 번 틀어 보세요. 런닝 타임도 짧아서 부담도 없고 아마 십중팔구는 어라? 하고 끝까지 보게 되실 겁니다. ㅋㅋ 전 그랬습니다.




 + 근데 정말 90년 묵은 영화 속 히어로(?) 치고는 이 남자 상당히 매너도 있고 괜찮습니다. 아주 절박할 땐 좀 여자에게 막 대하긴 하지만 상황상 이해해 줄 수 있는 선은 넘지 않구요. 그렇담 70~80년대 영화들의 그 마초 히어로들은 단순히 옛날 영화 주인공이라 그런 게 아니라 그 시절이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던 걸까요. 



 ++ 제목 '39계단'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포의 비밀 결사의 이름입니다. 서른 아홉 계단을 올라가면 뭔 일 일어나고 그런 거 안 나와요. 이런 말을 왜 적냐면... 전 그럴 줄 알고 봤거든요. ㅋㅋㅋ



 +++ 히치콕은 초반에 주인공 등 뒤로 슥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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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습니다. 히치콕 영감 영화는 아다치 미츠루 만화 같은, 언제나 비슷한 원패턴 같은데 각각 다른 걸 찾는 재미도 있고… 그렇다고 '한결 같은 직구 승부'라는 아다치 미츠루와 비교하기엔 너무 "뻔하지만 낚이는" 절묘한 체인지업 낚시구종 같기도 하고요. 집에 있는 건 원조 "싸이코"하고 "새" DVD정도인데 "나는 비밀을 안다"였던가~나, "이창"은 새로 디스크를 찾아서 매꿀까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DAIN_

      • 지금 작정하고 볼 수 있는 것들은 쭈루룩 다 훑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다 보니 생각 외로(?) 영화들이 다양하단 생각이 들구요. 하지만 말씀대로 대체로 관통하는 공통 정서, 스타일 같은 건 분명히 있기도 하구요. ㅋㅋ 전 사실 물리 매체로 갖고 있는 히치콕 작품은 싸이코랑 '알프레드 히치콕 프레젠트' 뿐입니다. 제가 앤솔로지를 좋아하다 보니. ㅋㅋㅋ 여러 번 돌려봐도 재밌고 그럽니다.

    • 옛날 공중파에서 하는 명화 극장에서 보았을텐데 이야기를 들으니 속속 기억이 나네요. '39계단'이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단서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범죄 조직 이름이라는 걸 알고 실망했었던 생각도 나고요. 어쩌다가 수갑으로 묶여서 운명 공동체가 된 커플 이야기의 원조! 어느 영화인지 이들의 후예인 현대판 수갑 커플이 화장실에 가서 한 사람이 볼일 보는 동안 다른 사람은 외면하며 어색해 하는 장면 같은게 있었는데, 옛날 수갑 커플은 화장실도 안갔는지 새삼 궁금해 집니다. 아마 옛날 영화라 그냥 화장실 장면 생략이었겠죠. 

      • 원작 소설은 굉장히 엄근진한 스파이물로 '현대 스파이물의 원조격' 소리 까지 듣는 작품이라네요. 당연히 '39계단' 조직도 아주 중요하게 나오구요.


        여기에 유쾌 발랄 분위기랑 로맨스를 끼워 넣은 건 각색 & 히치콕 판단이었다고 하는데 저는 왠지 히치콕 편일 듯 하구요. ㅋㅋ




        이 영화 보면서도 그랬고 영화 속에서 포박 당한 사람들 보면 늘 그게 신경이 쓰입니다. 저 사람들 화장실은 대체 어떻게 해결하는 걸까... ㅠㅜ

    • 국딩때 kbs3에서 본 1959년판이 너무 기억에 남아 나중에 35년, 78년, 08년 까지 다보고 얼마전에 원서로도 읽었습죠. 주머니에 뭔가 적당하게 아슬아슬 수준의 돈을 넣고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소소하고 적당히 아슬아슬하게 도망다니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해요 

      • 원작 소설이 나름 의미도 있고 히트친 작품인 데다가 히치콕 영화 버프까지 받아서 이후에 여러 번 다시 만들어졌다... 는 얘기만 들었는데 그걸 다 보셨군요. ㄷㄷ 최근에는 2020년 쯤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제작까지 추진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론 엎어진 듯 하구요.

    • 이 영화 재미있죠. 두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도 기가 꺾이지 않고 대처하던 게 좋고 흥미로왔어요. 히치콕 영화 중에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이라던 걸 읽은 기억이 있는데 저도 무척 좋았습니다. 저도 보기 전엔 계단 올라가다 누가 총맞나 예측했어요.

      • 주인공이야 주인공이니까(?) 그러려니 하며 봤는데 여주인공 캐릭터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어쩜 그리도 올곧고 당당하시던지. ㅋㅋㅋ 히치콕 영화들 중에 자주 언급되는 (그래서 저도 이미 몇 번씩 본) 작품들은 대체로 심각 진지한 작품들이 많아서 이런 가볍고 즐거운 영화를 보니 더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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