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 - 과한 캐릭터 설정과 배우의 매력

2DAIHFIOKV_13.jpeg

북한군 중사 규남(이제훈)은 곧 만기 제대를 앞뒀는데 출신성분이 별로라서 당에서 지정해주는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로 남은 생을 살아야할 운명이고 이를 벗어나보고자 남한으로 탈주를 맘먹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치밀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다 세워놓았고 운명의 디데이가 다가오는데 하필 평소 각별하게 아끼던 한 후임 병사가 눈치를 챘지만 고발하지 않고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일이 꼬이다가 제대로 탈주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둘 다 잡혀서 총살을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 건을 조사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명성이 있는 보위부 리현상(구교환) 소좌가 부대로 오는데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개봉작이고 평은 좀 갈린 편이지만 그래도 요즘 국내에 귀한 극장흥행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기특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북한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국내 영상물이라는 게 거의 대부분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남주가 등장해서 대립구도 or/and 브로맨스를 보여주는데 이건 재밌게도 영화의 99.99%가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주인공도 둘 다 북한군입니다.


제목에 쓴 과한 캐릭터가 바로 리현상인데 나름 유학으로 외국물 먹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인재인데 단순히 유능한 먼치킨 캐릭터 그런 걸 떠나서 독특하면서 과한 설정들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탈주병을 추적하는데 쓰는 어떤 기술은 무슨 초능력자 같은 연출도 나오고 여태까지 국내 영상물에서 다룬 북한군 중에서 이런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영화라도 이게 말이 되는 건가를 엄격하게 따지는 편이거나 좀 오글오글한 설정에 약하신 분들은 보기 괴로울 수도 있고 오히려 그래서 같은 소재의 기존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차별점도 생기고 거기서 나오는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저는 대충 반반 정도였네요.



리현상이라는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던 말던간에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각본상 설정과 디렉션에 맞춰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것 자체는 대부분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이 배우 특유의 그 중성적인 느낌과 거기에 기반한 캐릭터들도 최근 꽤 다작을 하면서 좀 많이 소비가 됐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나니 이런 색깔의 배우가 국내에 있어서 참 좋구나 싶었습니다. 진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규남 역을 맡은 이제훈은 상대적으로 캐릭터가 단순하고 심심해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 절박함과 끈질긴 진념을 몸을 마구 던져가며 설득을 시켜줘서 충분히 자기 몫은 챙겨갔습니다.


두 주인공의 뻔하면서도 몰입은 금방 되는 교감과 대립이 오고가는 관계를 오묘하게 밸런스를 잘 잡았고 1시간 반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추격전 액션과 드라마를 오가는 페이스 조절도 좋아서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리현상 캐릭터 설정 외에도 진행상 편의를 위한 상황 연출이나 그냥 좀 개성있어 보이려고 했는데 약간 튄다거나 하는 부분들도 적잖이 있으니 미리 유의해두시길 바랍니다. 아마 이래서 평은 좀 갈리지만 어쨌든 흥행은 괜찮게 된거구나 싶었네요.


1719885452822xiFBn.jpg

예를 들면 이 캐릭터들... 같은 경우가 나름 신박한 설정이구나 싶다가도 너무 잠깐 맛보기만 가볍게 보여주고 퇴장하다보니 전체적으론 그냥 애매했습니다. 아예 각잡고 길게 만들어서 분량을 챙겨줬으면 모르겠는데요.


552523_874381_3511.jpeg

투톱 주연배우님들도 언제나처럼 잘하셨지만 '만인의 연인', '화란' 등에서 눈여겨 봤던 이 홍사빈이라는 배우가 여기서도 연기력이 범상찮더군요. 특히 다른 배우들은 북한 억양을 잘 연기한다 싶은 정도인데 이 캐릭터는 제가 배우를 미리 몰랐따면 진짜 탈북한 사람을 데려다 썼나 싶게 느껴졌을 정도였어요.



약간 남한 미화, 프로파간다(!) 영화가 아니냐 하는 비판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조금 있었는데 딱히 남한이 무슨 지상 천국이라서 주인공이 그렇게 절실하게 가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만큼 북한이 현시창이라서 최소한 ~~할 자유라도 있는 곳이 낫지 않겠냐는 정도가 작품의 스탠스인 것 같습니다. 아예 전후반에 걸쳐 주인공들 입으로 직접적으로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구요. 그정도만 가지고도 미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남한도 사실 별로야!라는 생각을 그렇게들 하고 있었던 걸까요? 뭐 작년이니까 그렇게 받아들여도 이해는 됩니다. 하하;;



감독님 전작이 재밌게 봤던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이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이어지는 우정출연진이 좀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개별구매로 올라와있고 넷플릭스 이용하시면 그냥 보실 수 있습니다.

    • 저는 구교환의 연기를 '꿈의 제인'으로 처음 접해서 이후로 이 분이 어떤 과한 캐릭터를 맡아도 늘 그러려니 하며 보고 있습니다. 소화를 잘 하기도 하시지만 암튼 첫 만남의 임팩트가 워낙 컸어요. ㅋㅋㅋ




      중간에 이솜씨의 얼굴을 보고 앗! 봐야겠네? 했으나 잠시 나오고 사라진다니 멈칫...


      하면서 일단 찜해 놓겠습니다. ㅋㅋ 설명해주신 대로라면 저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과한 캐릭터, 괴상한 설정 같은 거 좋아하니까요. 하하.

      • 저도 꿈의 제인으로 처음 접했고 아마 국내 독립영화들 거의 다 챙겨보는 수준이 아닌이상 대부분 그랬을 것 같아요.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처럼 주류에서도 성공하실지는 몰랐습니다만 관객 입장에서는 참 다행입니다. ㅎㅎ




        이솜씨와 그 패거리는 아무래도 작품이 북한군 남자들만 나와서 칙칙하니까 잠깐 분위기 전환을 하려는 용도로 넣은 것 같은데 무슨 스핀오프 나올 것도 아니면서 감칠맛만 나더라구요. 과하거나 편의적인 설정을 대충 눈감아줄수만 있다면야 90여분동안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장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꿈의 제인' 보고 구교환 연기에 반한 사람 여기 더 있습니다. 근데 이 영화 이후에 제가 본 출연작인 '반도', '모가디슈', '탈주'에서는 주로 군인 역을 맡아서 (심지어 그중 둘은 북한 군인;;;; 아니 참사관은 군인이 아니었던가?) 첫 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었죠. 리현상 캐릭터가 엄청나게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 대놓고 말하지만 않았지 사실 퀴어 캐릭터 아닙니까.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는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싶었는데,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부분까지 가면 거의 환타지 영역에 들어섰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넷플 'DP'에서도 군인이었죠. 탈영병 잡으러 다니는 것까지 이거랑 비슷;;




        뭐 이정도 규모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렇게까지 표현했으면 그냥 대놓고 묘사했다고 봐도 되겠죠. 애초에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렇게 환타지 영역으로 들어가서 막 지르는 재미를 주는 게 연출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1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