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를 위하여'

'불가사리를 위하여'

19세기 중반의 조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지만 이곳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를 흔히 볼 수 있고, 조선 사람들은 '시간여행'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그리고 동네 한편에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물이며 마찬가지로 시간여행이 가능한 불가사리가 존재합니다. 희한한 이야기죠.

불가사리는 어느 시간선의 세계에서 인간과 전쟁을 하고 막심한 피해를 입혔어요. 어떤 사람들은 불가사리가 인간의 순수성을 해치고 인간과 기계신을 결합시키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그들은 과거로 와서 불가사리를 퇴치하려고 하고 중심 인물들은 그에 반하는 입장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 인물이 토로하는 내용은 매우 급진적이라 이 소설집의 뒷표지 장식을 하기도 합니다. 

'(불가사리와의) 대화의 가능성도 열렸어요. 우린 이 가능성을 최대한 넓혀야 해요. 그리고 만약 불가사리들이 우리와 가까워지고 우리와 섞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거부해야 할 일일까요? 도대체 순수한 인간이 뭔가요? 왜 우리가 그런 게 되어야 하는데요?' 

밑줄 그은 부분에 흔쾌하게 동의 되시나요. 인간이면 그냥 인간이지 순수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불가사리와 섞인 나를 받아들일 수 없으면 순수한 인간을 고집하는 입장에 서는 것일까. 제가 저 단계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아 보여요. 그런데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인 '그깟 공놀이'에는 인공지능이 이식되고 여러 의식의 혼합인 자아를 갖는 인물이 이미 등장했는데, 어째서인지 본 단편에서는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느낌입니다. 그게 불가사리의 외형을 지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그깟 공놀이'의 세계는 이런 고민 과정을 다 끝냈고 이미 혼종은 불가피해졌고, 익숙해졌고, 그래서 당연히 진행된다는 설정을 받아들이고 진행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요. '불가사리를 위하여'는 이제 질문을 던지고 제안하는 내용이라 독자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 단편은 사건의 한 장면으로 시작해서 모험을 마치고 수기를 마무리하듯 끝납니다. 짧은 분량의 단편에서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한계 없는 제안이 계속되니 단련 부족의 독자로서는 너무 많은 격차와 격변의 내용이 어지럽기도 합니다. 

따라잡기 힘들었지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는 것이겠죠.


아래 몇 문장을 개인적으로 건져올렸습니다. 수많은 시간선이 존재해서 죽음을 맞은 친근한 이를 다른 어느 시간에 다시 만난다는...오늘 자기 전에 이 부분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성초와 지호는 다른 우주에서 왔지만,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기도 했다. 원래 둘은 하나의 세계에 살았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여행에 의해 그들의 우주는 계속 갈라졌고, 각각의 우주에 수많은 성초와 지호가 생겨났다. 성초와 같은 우주에 있던 지호는 불가사리를 연구하다 목숨을 잃었지만 계속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다 지금의 지호를 만난 것이다.' 




 

 



    • 조선 시대가 배경인데 '불가사리'라면 대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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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생겼을 테니 거부하는 사람들 심정도 이해는 가네요.


      개나 고양이였다면 달랐을지도... ㅋㅋㅋ




      뻘플 죄송합니다!



      • 듀나 님 책에 나오기는, 길이 2.5미터, 검은색 전갈과 비슷, 여섯 개의 다리는 몸통 옆이 아닌 배 밑에 나 있고 앞에 난 집게발이 벌어지면 그 안에는 사람과 비슷한 손이 드러남, 몸 앞에 삐죽 나와 있는 둥근 얼굴은 입 없는 부처상 같다, 거대한 입은 목 밑, 몸통 앞에 따로 나 있다, 사람과 전갈을 반씩 섞어서 검은색을 칠한 것 같은 못생긴 기계였다.....라고 묘사되어 있어요. 생긴 건 다른 것 같은데 쇠를 먹는다니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조건과는 맞아요.


        개나 고양이 ㅎㅎ 생각이 좀 달라진다에 저도 한 표.

    • 최근 읽는 책에서 듀나 님을 이렇게 인용 했더군요. [한국의 SF 소설가 듀나는 2016년 3월 9일 트위터(현 X)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 앞으로 굳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데에 한 표.” “우리가 더 나은 지적 존재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린 그들의 요람이 된 것으로 만족하고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 도리.”] 




      [면세구역]의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 때 저도 신선하게 충격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런데 전 이제 너무 듀나 님 사상에 물들어(?) 버려서 그런지, 인간의 허약한 DNA 구성은 언젠가 빠르게 뭉그러져 바뀌는게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차라리 그나마 인간 DNA가 첨가된 유기체가 더 살아가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짤막하니까 [바리]도 읽어보시죠.) [두 번째 유모] 단편 정도 되면 이제 인간 모양이 그렇게 중요한가 싶을꺼에요.




      애인과 [바리]를 같이 읽었는데, (애인은 이번에 듀나 소설을 처음 읽어봅니다. 제 최애 작가라고 소개했는데) 왜 재미있냐고 물어봐서 이것저것 설명했지만, 애인이 축약한 이 말이 재미있더군요. "(마치 국뽕처럼) 인간뽕이 없는게 재미있다는 거군."

      • 생각해 보면 저의 경우는 처음 책을 접하고 독서 취미를 들일 때 본 책의 종류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사고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다양한 책을 읽지 않았고 청년이 되어서도 장르 문학에 대해서는 편견이 있었고 읽는 책의 폭이 좁았어요. 과학책은 요즘처럼 교양과학이 흔하지 않았고, 저는 문과쪽만 눈에 들어왔죠. 주로 학교에서 언급되고 도서관에서 자주 보이는 세계문학으로 독서이력을 채웠네요.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랬네요. 주변에서 폭넓은 독서의 본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지금도 고전이나 그 전통 아래의 책 언저리만 돌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가 첫 문단에 쓰신 듀나 님의 사고는 거기에 이르게 한 책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러한 사고는 일반 학교에서 인간중심주의 교육을 받으며 형성되기는 어려우니까요. 제가 인간을 좋아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인간존중, 인본주의 같은 것을 최고의 답으로 교육받았고,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 성이 강한 거에 머물고 있어서 앞으로 나이들면서 유연해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듀나 님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것으로 진심 체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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