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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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이 영화를 집에서 컴퓨터로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던 건 너무 당연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아키라]를 극장에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얼마나 약동하는 영화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작품 전체가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로 꿈틀댑니다. 그 에너지는 카네다 일행의 질주하는 ‘선’의 에너지이든, 혹은 약물 투여 후 점점 폭주하는 테츠오의 사이킥 파워든, 혹은 도시에서 계속 시위하는 시위대 무리나 그걸 제압하려는 군인 무리든 본인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분출시킵니다. 

 

그 에너지가 얼마나 정확하게 대상을 겨냥하고 있는지, 혹은 그 에너지가 정당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에너지들이 사방에서 들끓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에너지 발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에너지가 분출될 수 없게끔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 더 핵심일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테츠오가 그 에너지의 억압과 분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테츠오가 착한지 나쁜지는 이 영화가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테츠오가 자신을 지켜주거나 이끌던 가네다에게 늘 열등감을 갖고 있던 것, 즉 자신이 가네다란 존재에게 억눌려있다는 그 구도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테츠오가 그냥 되바라진 청소년이고 “중2병”에 빠진 사람이라 이 도시를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억눌린 존재이고 하필 그런 그에게 힘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이 억눌린 존재와 힘을 해방하고자 하는 구도는 다른 여러 곳에서도 발견됩니다. 일본 정부의 초능력 계발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아키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소년이지만 그는 조각조각 분해된 채 어느 경기장 지하에 유폐되어있습니다. 군부의 실질적 통솔자인 시키시마 대령 역시 회의에서 아키라 프로젝트에 충분한 지원을 얻지 못하자 결국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반정부군은 넘버즈의 타케시라는 힘을 외부로 분출시키려다가 실패하고 총격에 맞아 죽습니다. 이 영화에서 힘으로 표현되는 것들은 거의 어딘가에서 충돌하고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파괴를 일으킵니다. 이후 아키라가 부름에 응하면서 엄청난 힘으로 도시를 거의 소멸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가네다 무리는 단순한 불량 청소년이 아니라 폭주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되 방향성은 없어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른 폭주족을 부수는 그런 에너지덩어리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얌전히 억제되어있는 넘버즈와 대조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설정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에너지에 대해 우리의 일반적 전제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보통 뜻과 의지를 갖춘 다음에서야 그 물리적 수단으로 동원되며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는 상상합니다. 프랑스 혁명, 세계대전, 각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시위나 이에 맞서는 군경 같은 구도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되묻고 있습니다. 의지가 에너지를 운반하는 게 아니라, 사회 자체가 각종 에너지로 그저 뭉쳐있고 그것들이 통하고 연결되어있을 뿐인데 이 사회 전체가 고장나면서 그 에너지들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폭발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에너지라는 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고 그게 우연히 어떤 때에, 어떤 존재에 집중되어서 폭주해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을 2025년의 한국은 정말 무겁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12.3이라는 계엄을 일으킨 에너지에 맞서 일반 시민들이 응원봉 집회로 또 다른 에너지를 모으고 그것을 부딪히며 지금 네오-코리아를 구축하고 있으니까요)

 

테츠오는 영화 초반 폭주 장면에서 미끄러지면서 아직 미숙한 것처럼 취급되는데 이것은 그가 아직 (질주하는)에너지가 부족한 존재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에너지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단순히 뻗어나가고자 하는 선형적 움직임으로만 퉁쳐지는 게 아니라, 어떤 에너지가 속도를 갖춘 선형의 움직임과 충돌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그 에너지가 또 다른 통제의 에너지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알이 발사되기 위해서는 총알의 마찰과 운동에너지를 통제하는 총렬이라는 도구의 고정에너지가 필요하고 투수가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서는 공을 잡고 있는 손아귀의 통제력, 제구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키라]는 초반부 장면에서부터 역동적 이미지로 묻고 있습니다. 이 질주하는 힘들, 그 힘 사이에서 아직 형形을 갖추지 못한 에너지가 형形이 없이 력力만 커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에너지의 발생과 통제가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떡할 것인가. 

 

가네다 무리가 넘버즈의 타케시를 두고 시키시마 소령의 부대와 대면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질주하는 힘을 가진 존재와 가둬두는 힘을 가진 존재는 필연적으로 조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주하는 힘을 가진 존재가 통제하는 힘을 이겨내며 (마치 딱밤을 날릴 때 때리려는 손가락을 뒤로 더 강하게 붙잡을 수록 후에 세게 때릴 수 있듯이) 더 강한 힘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도 필연으로 보입니다. 이후 테츠오가 폭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계속해서 발산하려는 존재는 마침내 힘을 자기 안에 가둬두지 못하고 발산만을 하는 존재로 변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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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가 흔해빠진 배틀물이었다면 가네다가 같은 초능력자가 되거나, 다른 초능력자를 무력화하는 비장의 무기를 얻거나, 아니면 궁극의 병기를 갖추거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네다는 레이저 총 한 자루와 바이크만 가지고 테츠오를 죽이겠다며 엄포를 놓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승부를 가리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에너지와 에너지가 서로 맞부딪히며 그 파장을 연이어 그리려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영웅적 존재가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습니다. 초능력을 얻었다고 폭주해대며 모든 것을 파괴하려하는 안티 히어로 테츠오와,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반정부 혁명군인 여자애가 이쁘다며 따라다니다 사건에 휘말리는 안티 히어로 가네다만이 있습니다. 세상을 구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대신한다는 개념의 영웅은 아예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신경쓰는 사람은 시키시마 소령 한명 뿐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적 제도의 실패를 감지하면서도 그 속에서 오로지 아키라의 에너지만을 재현하고 통제하는데 미쳐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광의의 의미에서는 구원일지 몰라도 가네다의 개인적 시야에서는 복수를 하려고만 했던 걸 생각하면 타인을 구해내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나마 넘버즈가 폭주하는 에너지를 붙들고 진정시키려고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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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오가 카오리 앞에서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끝없이 팽창하는 세포조직에 삼켜져 “아기”가 되버리는 것은 이 작품의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는 어른의 성숙함과 깊은 뜻으로 만들어지는 삼국지스러운 것이 아니라 원초적이고 태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것이기에 힘이 커질 수록 아기로 변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과장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신경써주던 여자 카오리를 죽여버리는 것은 이제 모성으로도, 사랑과 이해로도 어떤 힘을 막을 수는 없으며 그 감정적 에너지는 물리적인 에너지 앞에서 아무 힘도 될 후 없다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아기의 그 무자비한 힘이란 원래 생명이 모체의 구속을 뚫고 나오는 것이기에 제일 강하고 본능적인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 작품이 계속 만나고자 하는 아키라는? 꼬마입니다. 이제 이 세계는 성숙한 어른의 선택이 아니라 아이의 무자비하고 순수한 힘에 의해 한번 붕괴해야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돈이나 총, 법이나 과학지식같은 것으로는 절대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변화는 일시적이며 세계의 타락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효과정도만 갖고 있을지도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순수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리비도로만 혁명군을 쫓아다니는 가네다와 군부세력에 의해 강제로 시술을 받아 초능력을 쓰는 테츠오에게 이 세상 따위는 전혀 신경쓸 것도 아닙니다. 서로 용서할 수 없는 그 불타는 혈기만이 전부입니다. 이렇게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세계에 무관심한 이들의 사적인 감정다툼을 클라이맥스로 설계한 이 영화는 완전히 멋집니다.


@ 정성일 평론가님은 [아키라]야말로 [블레이드 러너]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평했었는데 완전히 공감합니다. 개개인이 착취당할 뿐인 세계에서 그 부조리를 간신히 깨닫고 신을 죽이며 천사를 이해하며 도망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그런 부조리를 이해할 필요도 없고 아무 것도 깨우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박살내버린다는 이 후대의 이미지들은 전작이 하지 못했던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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