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개를 좋아하십니까. '환상의 마로나' 짧은 잡담입니다

 - 2019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32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간단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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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참으로 패기 넘치는 포스터가 아닐 수 없겠구요. ㅋㅋ 원제는 보시다시피 이렇습니다. 근데 번역제도 괜찮은 것 같아요.)



 - 시작부터 개 러버들에게 큰 장벽을 던져주는 이야깁니다. 주인공 '마로나'가 차에 치어 죽어가고 있거든요. 그리고 인간 여성의 목소리로 마로나의 나레이션이 나오죠. 죽음이 다가오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기 인생을 다시 보게 된다는데... 그러합니다. 이렇게 마로나라는 개의 견생을 탄생부터 훑어가다가 시작점으로 돌아오며 끝나는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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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비슷하지 않은 커다란 덩치 아빠와 작은 믹스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라는 설정이라 특별한 품종은 없습니다. 그런 핑계로 걍 맘대로 디자인 한 듯 하구요. ㅋㅋ)



 - 일단 매우 인본주의적(?)인 개 이야기입니다. 위에다 적었듯이 계속해서 인간 여성의 목소리로 마로나의 독백을 들려주며 전개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그 독백의 내용을 보면 개들은 인간의 언어를 싹 다 이해하고 그만큼의 사고도 할 수 있는 존재에요. 그야말로 '환타스틱'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좀 오묘한 부분이, 영화 속 마로나의 인생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랑스런 개님께선 어쨌든 현실의 개들이 함직한 행동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현실 개들의 행동을 인간 입장에서 인간적으로 해석해서 보여준달까요. 그러니 또 아주 비현실적인 개 이야기는 아니기도 합니다. 그냥 개에게 아주 많이 감정 이입한 사람이 쓴 개에 대한 이야기... 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생각해보면 어차피 개를 사랑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는 다 개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하며 살잖아요? ㅋㅋ 일단 제가 늘 그랬거든요. 그러니 이걸 단점이라고 얘기할 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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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1번 가난한 곡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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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2번 힘센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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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3번 동네 소녀... 를 '나의 인간'으로 거쳐가는 파란만장 강아지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입니다만. 이렇게 인생 스테이지가 바뀔 때마다 그림체나 장면 연출 같은 게 계속 바뀌어요.)



 -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쯤 지나자마자 마로나는 유기견이 됩니다. 그것도 조그만 아가 시절부터... 인데요. 그러고나서 이런저런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세 명의 주인을 ('주인'이란 표현은 안 나옵니다. 그냥 '나의 인간'이라고 불러요.) 만나고, 헤어지고하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그러니 맘 편히 흐뭇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다만 여기에서 마로나는 누구에게도 원한은 품지 않아요. 새로운 인간이 자길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 사랑에 빠지고, 그 인간이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혹은 그냥 마음이 변해서 자신을 버리면 홀로 슬퍼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을 만나서 다시 사랑받게 되면 그 행복에 완전히 빠져들구요.


 이렇게 마로나의 행복이란 언제나 자신을 선택한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렇게 사랑 받는 동안엔 언제나 있는 힘을 다해 그에게 헌신합니다. 기본적으로 개라는 동물의 습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긴 하겠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건 슬픈 이야기가 돼요. 개가 '나의 인간'에게 바치는 사랑과 헌신이란 걸 인간이 동급으로 돌려주는 건 이 영화 속 박복한 인간들 같은 사연 전혀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넉넉한 인간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슬프면서도 이야기가 막 우울하진 않다는 게 나름 절묘한 부분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로나는 늘 '나의 인간'에게서 받는 사랑에 만족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전혀 불행하지 않아요. 영화가 상냥하게도 죽어가는 마로나의 곁에 '나의 인간'이 함께하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우울하진 않은데, 어쨌든 슬픈 건 슬픈 거라서 그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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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장면이 맞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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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스타일로든 퀄리티는 아주 높은 편이구요.)



 - 계속 개 이야기만 했는데요.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포인트는 미술입니다. 루마니아인이라는 감독님께서 아주 패기 넘치게 영화 전체를 흔히 말하는 '대중적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그러니까 고독한 작가주의 느낌 가득한 그림체로 가득 채워주시구요. 그게 또 상황에 따라, 이야기의 챕터 변화에 따라 스타일이 계속해서 달라지는데 그게 싹 다 고퀄입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좀 정신 사납다고 느낄 수도 있겠고. 그냥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림 예쁘다'라고 느낄만한 스타일은 거의 없지만 이러나 저러나 꽤 훌륭한 볼거리라는 건 분명하구요.

 더불어서 음악도 참 좋습니다. 대체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슬쩍슬쩍 감정을 건드리는 식의 음악이 주를 이루는데 이 또한 참 듣기 좋고 눈으로 보이는 장면들과도 잘 어울려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에 톡톡하게 일조를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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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움짤만 봐도 막 추억 같은 게 떠오르면서 마음이 심란해지는 분들을 위한(?) 영화 되겠습니다...)



 - 그래서 뭐...

 개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수작... 이긴 한데 개인적 사정에 따라 좀 많이 슬퍼지실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구요(...)

 마로나의 헌신과 사랑에 중점을 두고 쓴 이야기이고 그 쪽에 집중을 하다 보니 실제로 개와 함께 살면서 생기는 일들에 대한 현실적 디테일 같은 건 좀 부실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걸 조금 더 넣어 줬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구요. 또 가끔은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마로나의 모습이 좀 애매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만, 앞서 말했 듯이 개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ㅋㅋ 

 뭣보다 이 정도 독특한 스타일로 애정과 정성을 듬뿍 담아 만든 '개의 인생' 애니메이션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죠. 그래서 '이 정도면 매우 훌륭!'이라 생각하며 잘 봤습니다. 끝이에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마로나가 태어났을 때 이름은 '9'에요. 아홉 마리 중 막내로 태어났거든요. 그런데 이걸 다 감당할 수 없으니 엄마의 인간이 아빠의 인간에게 한 마리 데려가라 해서 선택되었는데, 이 인간은 딱히 개를 사랑하는 인간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 날 바로 길거리에다 내다 버려요.


 그래서 마로나 입장에서 첫 번째 '나의 인간'은 그런 마로나를 줍줍해서 데려가 키운 길거리 공연 곡예사입니다. 마로나를 애지중지 예뻐하며 극진히 키워주고 마로나는 그런 주인에게 보답하려 길거리 공연도 도와주고... 그렇게 잘 삽니다만. 그러다 이 양반이 나름 유명해져 버리고, 큰 서커스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는데 '우린 개는 안 키움'이란 조건을 거는 바람에 번뇌하던 주인이 결국... 서커스를 포기합니다! 까진 좋았는데 그렇게 놓친 기회 때문에 혼자 힘들어하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마로나는 주인이 잠든 사이에 집을 나와 버려요.


 다음은 특정한 직업 없이 쓰레기 수거 일도 하고 공사 현장 일도 하는 힘 센 남자가 마로나의 주인이 됩니다. 역시 첫 번째 인간만큼 마로나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해주고 마로나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개'라면서 극한의 행복을 느낍니다만. 이 남자가 모시고 살던 건강 안 좋은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해서 병원에 실려 가구요. 이 일 때문에 상심한 남자에게 그동안 별거 중이었던 아내가 '어머니는 입원 시키고 나와 함께 개를 키우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셋이 살게 됩니다만. 여자는 애초에 남편이랑 다시 합치고 싶었을 뿐 개는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며칠 되지도 않아서 마로나를 창고에 가두고, 계단으로 내보내고, 결국 마당까지 내보내고도 계속 바가지를 긁고 남자를 얼르고 달래서 마로나를 내보내게 만들어요. 이때 남자가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공을 던져 줄게.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는데 남자 예상과 다르게 그 말을 다 이해하고 순순히 작별하는 마로나님이십니다.


 마지막은 그렇게 길거리를 헤매던 마로나를 발견한 동네 소녀에요. 함께 사는 엄마, 외할아버지에게 혼이 나면서도 끝까지 조르고 싸워서 마로나와 함께 살게 되지만... 애들이 다 그렇잖습니까. 크면서 길에서 주운 강아지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아지고, 점점 소원해지고 나중엔 결국 귀찮아하게 되죠.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데리고 나가서 산책 시키고 오라는 걸 오케이 해놓고선 산책로 나무에다 묶어 놓고 데이트하러 가 버리는 '나의 인간'님을 묶인 줄을 풀고 쫓아가는 마로나인데요. 이 인간이 이미 버스를 타 버려서 위험천만하게 도로를 달리며 계속해서 버스를 쫓습니다. 그러다 결국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는 소녀와 마주치는데, 이때 소녀를 향해 달려가던 트럭 앞으로 뛰어 들어 소녀를 구하고. 자신은 뒤이어 달려온 차에 치여 버립니다.


 그렇게 마로나는 도로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그런 마로나를 보며 뒤늦게 후회한 소녀 마로나 곁에 누워서 마로나의 마지막을 지켜봐요. 그렇게 엔딩입니다.

    • 개의 죽음은 언제나 슬픕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 깊어집니다. 철이 드나봐요. 어릴 땐 약한 존재 놀리고 괴롭히고 좋아했었는데.... 영화의 미술이 대단해 보이네요.  

      • 이런 그림체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애니메이터들도 이런 그림체에 익숙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건데... 참 세상은 넓구나 싶기도 하구요. ㅋㅋ


        그렇죠. 개는 참으로 사랑스러우면서 그렇게 사랑스러운 만큼 참 짠한 존재입니다. 저한테는 그래요.

    • 영화관에서 눈물콧물을 쏟으며 본 영화인데 다 잊고 있었네요. 실사와 다른, 애니메이션으로만 표현 가능한 부분을 찾아내서 만든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 아 극장에서 보셨군요! 이런 그림이 극장 화면 가득 펼쳐지는 걸 보는 건 참 인상적인 경험일 것 같아요. 말씀대로 그게 '애니메이션으로만 표현 가능한 부분'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구요. 눈물콧물이라니... 정말 슬프죠. ㅠㅜ

    •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뭔가 정신 사나운 느낌이고 제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호평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가지 않았었는데 글을 읽어보니 조금 적응만 되면 저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눈물 콧물 쏟을 준비를 해야할지 ㅎㅎ

      • 그림만 뚝 떼어 놓고 본다면 좀 정신 사나울 수도 있는데 이게 다 마로나의 심리 상태 반영 같은 거라서 진짜로 보면 정신 사납단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어차피 왓챠에 있으니 대략 5분만 시도해 보세요. 제 생각엔 아마 흡족하게 보시게 될 것 같구요... 물론 책임은 안 집니다
    • 회사에서 글 읽다가 화장실로 도망쳐서 울고 왔습니다. 로이님 나빠요…
      • 안 그래도 근래에 개님과 이별하신 두 분 때문에 영화 보고 나서 아 이건 글을 적지 말아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죄송해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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