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타

spiritualboxer5.jpg


1975년 유가량 감독작품.
셀레스철 복원판 기준 101분.



1949년에 최초의 황비홍영화인 [황비홍전]이 나왔습니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황비홍 문파 사람들한테 자문을 구했고 그렇게해서 황비홍계 인사들이 영화계와 인연을 맺습니다. 그중에 가장 크게 성공한게 유가량이죠.

유가량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당가를 만나 의기투합하고 두사람은 무술지도 팀을 결성합니다.
한사람은 무려 황비홍 직계라는 정종 무술 집안 출신이고, 한사람은 경극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무술 전문가와 무술을 포장해서 보여주는 전문가의 만남. 이 둘이 만나면서 현대의 영화 무술지도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두사람은 (양우생 소설을 영화화한 장흠염 감독 영화) [운해옥궁연]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영화로 소일부 사장님의 눈길도 끌게되어 소씨형제공사에 스카웃됩니다. 거기서 장철과 만나고, 유가량-당가 컴비는 그후 약 10년간 장철의 사실상의 전속 무술지도팀이 됩니다. 실제로 전속제는 아니었을 것 같지만 장철이 워낙에 다작을 했으니 다른 사람들 일을 맡을 여유가 없었을듯...
승승장구하며 수많은 히트작을 연발하던 세사람은 70년대 중반쯤 결별합니다.

장철이 대만으로 기반을 옮기면서입니다. 당시 홍콩 영화계에서 대만으로 간다는 건 거의 좌천이나 다름 없는 거였다는 모양이고, 처음엔 유가량과 함께 장철을 따라갔던 당가는 얼마후 홍콩으로 복귀합니다. 그러고는 초원감독과 손잡고 무협영화에서 독보적인 와이어액션의 선구자가 되죠.

유가량은 장철 옆에 계속 남았습니다. 무술지도 역할에만 집중했던 당가와는 달리 유가량의 목표는 감독이 되는 것이었고, 장철 옆에 꾸준히 붙어있으면 언젠가 자기도 감독이 될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장철은 유가량이 감독으로 독립하는 걸 꺼려했다고 합니다. 장철은 제작자로서 강대위, 적룡한테까지도 감독을 한번씩 시켜줬지만 유가량이 감독이 되는 건은 계속 생까버립니다. 결국 장철한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달은 유가량은 대판 싸우고는 뛰쳐나가 버립니다.

유가량이 상심해서 회사를 나가버리면 큰 문제라고 생각한 쇼부라다스가 미끼를 던집니다. '감독시켜 줄께.'

쇼부라다스 경영진들이 물렁한 사람들은 아니죠. 수많은 히트작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가량이지만 '감독이었던 건 아니니까' 아직 단독연출력이 검증되지 않은 유가량에게 회사가 제공한 건 저예산과 무명배우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최고예산의 대작에서 탑스타들을 마구 굴리던 유가량 입장에선 서운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유가량은 수락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영화 [신타]는 홍콩 영화 박스오피스 5위를 기록합니다. 이소룡 사후에 나온 홍콩산 쿵후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성적이었다던가 뭐 그렇다고 하네요.
이 영화로 주연 데뷰를 한 신인 왕우(汪禹, 외팔이 王羽와는 다른 사람)는 바로 스타가 되었고. 유가량은 장철 이후 최고의 히트메이커(중 하나)가 됩니다.


'신타'는 글자 그대로 하면 귀신이 싸운다...인데 영화속 묘사로 보면 접신해서 순식간에 무술고수가 되는 걸 말합니다.([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무술을 다운받아 순식간에 고수가 되는 것의 아주 옛날 버전이라 보심 될듯...ㅎㅎ) 어떤 신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용하는 무술의 종류가 달라지고(손오공이면 원숭이권법이라든가 관우의 혼이 들어오면 청룡도를 쓴다든가) 부수적으로 금강불괴 효과도 있습니다.
이게 의화단이 주장했던 거라고 해요. 물론 사기죠. 그딴 거 없다는 걸 의화단 본인들이 직접 증명했으니까요. 영화에서도 신타가 사기라는 걸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도 의화단이 서태후 앞에서 신타 시범을 보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이 장면이 다분히 장철영화 [팔국련군]에서 인용한 것 아닌가 싶어요. [팔국련군]에 똑같은 장면이 나오거든요.([팔국련군] 제작에 유가량이 관여하고 있다가 중간에 뛰쳐나갔다고 하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신타 시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룡, 진관태, 당위성입니다. 근데 이게 좀 괴한게, 영화 스토리와는 1도 관계가 없고, 여기 나온 사람들 본편에 안나옵니다. 영화 본편과는 분위기도 판이하게 달라서 쌩뚱맞다 싶은 부분인데... 아마도 쇼부라다스 입장에서는 유가량이 못미더워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게는 했는데 막상 영화가 나오고 보니 팔아먹을 만한 스타가 한명도 안나와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나중에 탑스타인 적룡, 진관태가 나오는 장면을 만들어서 붙인게 아닌가 싶어요.ㅎㅎ 도입부에 겨우 몇십초정도 나오는 두사람의 이름이 포스터에도 당당하게 나옵니다.

영화 본편은 서태후도 죽고 청나라도 없어진 한참 뒤, 중화민국이 배경입니다.(물론 공산화되기 한참 전의 대륙)
주인공은 신타 시범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약을 파는 사기꾼...을 사부로 모시고 있는 새끼 사기꾼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사부가 모종의 사건에 말려들어 날라 버리는 바람에 혼자가 되는데, 어찌어찌 홀로서기를 해보려하지만 얘가 머리가 좀 딸려요. 다행이랄까 머리가 잘돌아가는 선머슴같은 여자와 알게되어 한팀이 되면서 먹고 살게는 되었는데... 얘가 사기는 치지만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의협심은 있는 애라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마을을 지배하고 있던 깡패들을 물리치고 마을사람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게 되면서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참 유니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게... 당시는 쿵후영화가 참 살벌하고 진지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이소룡도 (영화가 몇편 안되지만 그중 대부분에서) 아주 진지한 사람이었잖아요.(성룡도 초기엔 이소룡 흉내내느라 진지한 역할만 해야했기도 했고....)
근데 [신타] 주인공은 잔머리만 돌아가는 뺀질이인데다 머리가 썩 좋은 것도 아니예요. 지꾀에 지가 넘어가는 스타일. 기존 쿵후영화였다면 사이드킥이나 감초 조연 정도 했을 친구가 주인공입니다. 쿵후영화에서 이런 주인공은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거기다 주인공 사부는 주정뱅이에 사기꾼. 중국사람들의 전통적인 사부상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영화 스토리도 흔해빠진 복수나 국가민족의 운명같은 거에서 벗어나 있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최초의 쿵후코미디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진짜 최초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영향력 있는 히트작 중에선 처음이 맞을 것 같아요ㅎㅎ

쇼부라다스 영화가 창고에 갇혀있고 70년대 홍콩영화의 정황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안에는 쿵후코미디의 시초 소리를 들었던 영화가 [사형도수]였더랬어요. 그런데 그 [사형도수]가 알고보니 [신타]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영화였더란 겁니다. 우선 뺀질이 주인공과 주정뱅이 사부라는 인물 배치에서부터... ([취권]에도 [신타]의 영향이 보입니다.)

근데 정작 유가량은 쿵후코미디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열어놓고선 그 다음 작품에서는 다시 진지빠는 전통쿵후영화로 돌아갔어요. 대신에 오사원이 그걸 덥석 물어서는 [사형도수]를 만들어 아예 영화계 판도를 완전히 그쪽으로 바꿔버렸죠.
[신타]의 속편인 [모산강시권]은 쿵후/코미디/호러를 조합한 (아마도) 최초의 작품쯤 될 거 같은데(적어도 최초의 강시 코미디 정도는 될듯...), 그것도 유가량은 가능성만 열어놓고 더 파지는 않은 걸 홍금보가 물고 가서 [귀타귀]에서 [강시선생]에 이르는 연작으로 또 영화계 판도를 바꿔버렸죠.
그러니 유가량이 참 대단한 인물이긴 한데, 생각이 좀 더 유연했더라면 훨씬 더 대단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뭐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대단한 분이니까요...ㅎㅎ





-[신타]에선 신타가 그저 사기일 뿐이라고 넘어갔지만, 홍금보가 [귀타귀]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귀타귀'란 말 자체가 '신타'를 살짝 비틀어서 말한 것 같기도...)

-유가량의 쇼부라다스 말년작인 [십팔반무예]에서도 의화단과 신타가 중요소재로 등장합니다. 사기꾼이 악당들을 혼내준다는 이야기는 [소림탑붕대사]에서 재탕한 것도 같고...


-유가량 본인이 극중 왕우에게서 무술을 배우는 제자(마을사람)역으로 출연하는데... 누가 보더라도 제자가 사부보다 훨씬 더 실력이 뛰어나 보입니다ㅎㅎ





셀레스철 예고편

    • 안 그래도 포스터 이미지에서 '적룡' 한자를 발견하고 반가웠는데, 그게 훼이크 캐스팅이었다구요. ㅋㅋㅋ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적룡이 본격적으로 무술 연기하는 걸 본 건 '적각비협' 하나 뿐입니다. 하하; 역시 저한테 적룡은 일단 영웅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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