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국내영화 추천작 - 아침바다 갈매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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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진작에 거의 다 떠났고 노인들만 남아서 어업에 종사하는 한 시골 어촌이 배경입니다. 주인공 영국(윤주상)은 낡은 배 하나로 평생 먹고살아온 선장이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혼자사는 독거노인인데 그나마 이 마을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젊은 어부 용수를 데리고 일하고 있고 용수의 어머니 판례(양희경), 용수의 베트남 출신 아내 영란과 그나마 유사가족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굉장히 이른 새벽시간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대충 낚시하는 시늉만 하다가 들어온 뒤 용수가 비장한 얼굴로 영국에게 큰절을 하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잠자코 바라보던 영국은 니 엄마한텐 얘기했냐고 물어보는데 용수는 차마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X'하고 욕을 내뱉는 영국... 그리고 경찰서에 가더니 용수가 바다에 빠졌다고 허위신고를 합니다. 온 마을이 뒤집히고 해경들은 물론 마을 어부들까지 죄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실종자를 수색하러 나서게 됩니다.


거의 초반에 밝혀지는 내용이고 포스터에도 '거짓말', '계획이 어긋났다'라고 대놓고 써놨으니 중요한 스포일러는 아니고 결국 진상은 꿈도 희망도 없는 이곳에서 평생 어부로 살 수는 없다고 결심한 용수가 영국의 도움을 받아 사망보험금을 타내려는 사기극이었습니다. 1시간 50여분의 러닝타임을 채워야하니 당연히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될리는 없고 이런저런 변수들, 상식적으로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차마 수색을 포기하지 못하는 판례와 영란 사이에서 혼자 비밀을 지키고 있는 영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죠.



과연 이 사기극이 성공해서 무사히 돈을 타낼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범죄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영화는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이런 시골마을의 현실과 남겨진 사람들의 사정 등을 다룬 일종의 사회물, 군상극입니다. 화끈하게 지르는 인상적이었던 헬조선 사회비판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와는 달리 분명한 악인에 해당하는 캐릭터는 없다고 볼 수 있거나 존재감이 약하고 그냥 이런 곳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레 이렇게 되겠구나 싶은 굉장히 리얼하게 다가오는 캐릭터들의 상호작용, 출연진의 연기가 최고장점입니다. 


윤주상, 양희경 두 베테랑 배우의 공동주연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과연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십니다. 비중상으로는 사실 영국 캐릭터가 원톱 주인공에 가까운데 그냥 겉으로 보이는 언행들만 봐도 그렇고 정말 정주기 어려운 비호감 캐릭터인데도 결국은 이 사람이 계획한대로 잘 되도록 관객이 응원하게 만들도록 설득을 해냅니다. 판례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인데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사가 많이 없고 그냥 표정연기로 보여줘야하는 역할인데 화면에 얼굴만 잡혀도 강렬한 비통한 어머니의 감정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양희경의 존재감도 윤주상에 못지 않습니다. 두분 다 영화출연은 거의 10여년만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뷰를 보니 그동안 제의가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 TV 드라마, 연극무대가 여러가지 여건상 편하고 역할 퀄리티가 더 나아서 그랬다던데 감독이 열심히 설득해서 캐스팅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는 걸 증명해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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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연배우님 위주로 홍보가 됐지만 막상 본편을 보면 이 영란 캐릭터가 단순 조연이 아니라 거의 제 3의 주인공 격입니다. 듀나님 리뷰에서 표현을 빌리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동기, 욕망, 서스펜스 대부분이 영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 영화, 드라마에서 외국인 아내, 다문화 가정이 나름 다뤄져왔지만 아마 제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비중있고 진지하게 메인 서사와 밀접하게 다뤄졌습니다. 사실 이 영란은 한국에 팔려온 외국인 신부들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도 현실이 이렇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배우 Khazsak의 연기도 정말 훌륭했고 국내작품에서 또 봤으면 좋겠지만 이 작품만한 배역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처자처럼 차려입은 와중에도 미모가 빛이 나는데 인스타에 가보니 그냥 스타같은 비주얼이시더군요. 



작년 국내영화들 중에서 상업, 독립 구분없이 확실하게 전달되는 주제의식과 메시지,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 장르물로써의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완성도였습니다. 일반 VOD 외에 왓챠, 티빙, 웨이브 등에도 올라와있으니 어지간하면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이 영화 정말 좋죠... 거의 마지막에 두 사람이 만나 짤막한 대사를 서로 나누는 장면은 정말 강렬하더라고요. 한 한달간 성대모사하고 놀았네요 ㅋㅋ
      • 약간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언급인 것 같은데 어쨌든 강렬하면서도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장면이었죠. 하하;;

    • 볼 기회가 마침 있었고, 저도 '불도저를 탄 소녀'를 좋게 보기도 해서 극장에서 봤던 영화입니다. 너무 답답할까 걱정했는데 답답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꺽이지 않으면서 방법을 찾는 사람 모습이 담겨 있어서 무겁지 않게 극장을 나왔던 거 같습니다. 이 감독님 전작도 그렇고 목조르는 현실 속에서도 꺽이지 않으려는 인간상을 주로 표현하시는 듯하네요.


      이 영화의 어촌 여러 인물들은 말씀대로 '이런 곳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레 이렇게 되겠구나 싶은 굉장히 리얼하게 다가오는 캐릭터들의 상호작용' 이라서 이야기 진행 상으로 척결할 대상이 뚜렷하지 않았죠. 외곽에 있는 농어촌 지역은 고인 물처럼 머물면서 서로 이해관계 엮여서 사는 답답함이 있고, 경제적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개인이 정상적으로는 뭘 해 볼 수 있는 게 없는 실상이네요.    

      •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쉽게 마음을 주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아요.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아이러니도 있고 박원상 배우가 연기한 또 하나의 마을 젊은이를 통해 정말 뭘 해 볼 수 있는 게 없는 실상을 보여주더군요.

    • 어느 분의 글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후기가 좋았어서 기억하고 있는 영화에요. 일단 찜을 해두었습니다.

      한동안 시리즈 달렸으니 다시 영화 좀 볼까봐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아마 조성용님 영화 잡담글에 있었던 것 같아요. 듀나님 리뷰도 따로 올라왔었고




        시리즈, 영화 골고루 섞어서 보는 게 좋죠. ㅋㅋ 이 감독 전작인 '불도저에 탄 소녀'도 같이 추천합니다.

    • 듀나님 리뷰를 읽고 '아 이건 봐야해!' 했던 영화인데 제목을 까먹어서 OTT들에 올라와 있는 것도 몰랐네요. 허허. 조만간 봐야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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