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멕시코산 디스토피아 SF, '슬립 딜러' 잡담입니다

 - 2008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90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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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속 모든 사물들이 영화 내용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총체적으론 사기 포스터... 되겠습니다. 이런 폼나는(?) 영화 아니에요. 하하.)



 - 때는 근미래. 인간의 몸에 접속 단자를 만들어 컴퓨터와 이어서 멀리 있는 드론 조종도 하고 머릿 속 기억을 정리해다 오픈 마켓에서 팔기도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핸드폰 조차 안 쓰고 사는 멕시코 어딘가의 농촌 마을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영농 후계자 '메모'군은 성실 정직 열정 농사꾼 아빠의 일을 이어 받을 맘은 없고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가고 싶다고 불평하지만 유약한 성품 탓에 집을 떠나지도 못하구요. 그저 직접 만든 수제 전파 수신기로 도시 사람들 대화를 훔쳐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삽니다. 그런데요.


 이 시기엔 물이 또 전략 자원인가 봐요. 그래서 댐마다 미국 경비 회사들이 버티고서 무인 드론으로 침입자들을 사살하고 이걸 심지어 티비 라이브로 보여주며 다 함께 즐거워하는 디스토피아인데... 메모의 전파 수신기 때문에 이 집이 테러범 소굴로 오인을 받아 드론 공격을 받고 아빠가 폭사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 복수!!! 같은 건 꿈도 못 꿀 평범한 농촌 총각 메모는 가족의 비난하는 눈초리도 피할 겸 드디어 대도시로 떠나요. 가서 첨단으로 돈 벌어 부쳐드릴게!! 라는 메모지만 디스토피아 sf에서 과연 이게 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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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이런 멋진 폼을 잡으면서 주인공이 활약하는 장면... 같은 거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로요. ㅋㅋㅋ)



 - 그냥 국적과 장르만 보고 골랐습니다. 멕시코산 디스토피아 & 사이버펑크 sf라니 이건 귀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


그런데 또 예상대로의 문제들이 딱 그대로 보입니다. 일단 돈이 없어요. 근데 장르가 sf이다 보니 스케일만 작아지는 게 아니라 세계관의 설득력이 심대히 떨어지는 결과를 낳구요. 그리고 설정도 구멍 투성이입니다. 특정 기술만 과하게 발전하고 나머진 오히려 퇴보해 보이는 생활 모습들이야 돈 들인 sf들도 자주 그러니 대충 넘어가더라도 그냥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대충 전개가 너무 많습니다. 클라이막스의 전개 같은 건 특히나 아예 말이 안 되는 걸 그냥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여서 보는 사람을 난감하게 만듭니다. 아마 백년 전에도 그렇게 세상이 허술하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SF를 보며 하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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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혀 안 SF적인 평소 멕시코 배경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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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아주 조금은 SF 느낌 나는 무언가를 얹어 놓고 찍어내는 정도. 그나마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평소의 멕시코인 장면이 반이 넘고...)



 - 다만 또 분명히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그냥 현대 멕시코가 처한 문제, 특히 미국과의 문제를 두고 은유도 아니고 아주 직설적으로 비판을 하는 이야기에요. 근데 이 쪽으로는 아이디어나 설정이 꽤 좋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기껏 대도시로 나가서 얻은 일자리라는 게 신경망 접속으로 la의 공사현장 로봇 조종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기술의 발전으로 멕시코인들을 굳이 본토에 받아주지 않고도 맘껏 착취하는 미래라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간 비슷한 무언가라도 나옴 직한 그럴싸한 상상력이죠. 그리고 이게 2008년 영화인데요. 무인 드론 조종사의 ptsd문제를 핵심 테마 중 하나로 다뤄요. 이 정도면 돈이 없을 뿐이지 만든 사람들의 상상력이나 노오력을 폄하할 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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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있는 멋진 사이버 펑크 아이템은 거의 이런 장면으로만 나옵니다. 원격으로 미국인들의 허드렛일을 맡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ㅠㅜ)



 -그래서 이야기의 90%는 그냥 드라마입니다. 액션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란 말이죠. 시골 청년 메모가 도시에서 여러가지로 험한 꼴을 당하고. 기술의 발전이란 건 그저 더욱 저렴하고 편리하게 없는 사람들 착취하는 도구일 뿐이고. 미국에 종속되어 삥 뜯기는 나라 꼴은 더욱 더 심화되었고. 이런 현실적 디스토피아를 차분하게 보여줘요.

 처음부터 우리 메모찡은 액션 히어로 같은 건 절대 될 수 없는 양반이란 걸 충분히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망한 세상을 구경하는 마음은 더욱 답답하구요. 또 그런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이 사실 그냥 현재 멕시코 모습에 sf 스킨만 씌운 거라는 게 명백히 보이니 더더욱 답답하고 안타깝죠. 세기말 스타일로 폼을 잔뜩 잡은 포스터 이미지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좀 당황스럽긴 합니다만. 이런 드라마 자체는 충실하게 잘 풀어낸 편이구요. 


 그러다 영화 끝나기 직전에야 뭔가 'SF 영화의 클라이막스' 비슷한 것의 발동이 걸립니다만. 계속 강조했듯이 워낙 가난해서 말이죠. ㅋㅋ 스케일 작고 스릴은 없으며 개연성은 대충 포기한 간소한 액션으로 마무리에요. 다만 이 부분에는 나름 소박한 선언이 있고, 그동안 쭉 갑갑해왔던 것을 제한적으로나마 시원하게 풀어주는 드라마가 있어서 그냥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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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쨌든 사이버-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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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 결론적으로 비추천입니다. ㅋㅋㅋㅋ 특별히 17년 전 멕시코에서 이런 디스토피아 SF를 시도했었다! 라는 걸 직접 작품으로 확인해보고픈 분이 아니라면 안 보시는 게 나을 거에요. 요즘 기준으론 티비용 영화로도 확실하게 저예산인 작품이라 CG를 따지기에 앞서 그냥 촬영 자체가 홈비디오 느낌 물씬 나는, 뭐 그런 경우거든요. 그렇다고해서 이야기가 막 훌륭한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난하고 부족한 와중에 어떻게든 쥐어 짜내서 원하는 이야기를 완성해낸 그 의지라든가. 또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디테일과 진심... 뭐 이런 게 절절하게 느껴져서 저는 즐겁게 봤구요. 이 글 읽으시는 분들은 그냥 이런 영화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기셔도 되겠습니다. ㅋㅋ 그러합니다.




 + 그래서 멕시코의 댐이 미국이랑 무슨 관련이 진짜 있는 건가? 해서 검색해 봤는데 영화의 내용과는 관계 없지만 물부족 문제가 심각하긴 한 거였네요. 그리고...


https://www.yna.co.kr/view/AKR20250416001951087

"물 빚 갚아라" 美 위협 받은 멕시코, 댐 방류량 6.7배↑(종합)


요즘 국제 뉴스들은 트럼프 빠지는 곳이 없어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메모의 아버지는 성실한 농부였을 뿐더러 꽤 큰 꿈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자기 집 주변 땅을 차근차근 사들여서 나중엔 꽤 넓은 땅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이제 커다란 농장을 경영하는 꿈을 이루려... 는 찰나에 그 지역을 흐르는 강 상류에 거대한 댐이 생겨 버린 겁니다. 강물은 끊어졌고 식수 조차 그 곳에 가서 비싼 값에 자루 단위로 사 와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죠. 폭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농사꾼으로서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물을 조금씩 더 사서 집앞 텃밭 사이즈의 땅에 뿌려 주고 그래요. 그렇게 물을 사러 갔다가 철천지 원수 댐을 향해 돌맹이를 집어 던지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날아가서 참으로 하찮게 툭. 하고 부딪히는 돌의 모습이 참 애잔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이웃집에 놀러 가 티비를 보던 메모. 티비에는 마침 드론으로 테러범들(주로 물 도둑입니다) 잡는 리얼리티 프로가 나오고 있었고. 오늘의 드론 파일럿이라며 소개되는 사람은 또 멕시코인이네요. 그러니까 멕시코를 삥 뜯으며 그 반발을 잠재우는 것도 멕시코인들에게 시키는 미국의 100% 클린 외주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인데... 암튼 이 양반이 다짜고짜 메모의 집을 날려 버리고. 부상을 입고 기어 나온 메모 아버지에게 확인 사살까지 날리는 게 이야기의 발단입니다.


 결국 이게 다 메모가 만들어 지붕에 달아 놓았던 전파 수신기 때문이었고. 도저히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던 메모는 일생 살아 온 고향을 떠나 대도시를 향하는데, 이때 버스에서 미모의 작가 지망생 루즈를 만나요. 둘은 별 일 없이 각자의 목적지로 헤어지지만 루즈가 자신의 여행 기억을 인터넷에 올려 판매하면서 인연이 얽히게 됩니다. 어떤 고갱님께서 기억 영상 속의 메모에게 흥미를 보이고 '저 남자를 더 보여주면 내가 구입하겠다'고 제안을 해서 일부러 메모를 찾아가게 되거든요.


 메모는 몸에 접속 단자를 설치하고 인력 파견소에 취업하는데. 여기서 하는 일이란 미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온갖 허드렛 일들을 로봇을 통해 해주는 겁니다. 그 로봇을 멕시코에서 원거리로 접속해서 조종해 일을 하는 거죠. 멀리 떨어져서 하니 편해 보이지만 일단 미국인들보다 일당이 쌀 것이고. 그래서 돈을 모으려면 시간 외 근무를 빡세게 해야 하는데 이 접속 장치란 게 오래 쓰면 쓸 수록 몸에 무리가 옵니다. 그래서 일하다 피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도 있고... 하지만 다른 일을 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 노숙자들 소굴이 된 산동네로 가서 빈 집 하나 찾아다가 숙소로 쓰며 죽어라 일 해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는 청년 가장 메모군이구요. 이런 메모에게 접근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캐내고 하던 루즈는 결국 그러다 정들어서 연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나름 행복해지는 메모군! 하지만 이건 당연히 클라이막스를 위한 빌드업이겠죠!


 어쩌다 루즈의 컴퓨터 속 '기억 상품'들을 봐 버린 메모는 "나를 만나라고 누가 돈을 주더냐!" 며 화를 내고는 배신감에 떠나가 버리고. 시작은 그랬지만 어쨌든 메모를 좋아하게 된 루즈는 사과를 해보려 하지만 이미 열받아 버린 메모에겐 안 들리겠죠. 그렇게 둘은 찢어졌는데... 이렇게 막힌 스토리를 풀기 위해 신 캐릭터가 등장!!!


 그건 바로 메모의 아버지를 날려 버린 신참 드론 조종사 루디였습니다. 자기가 죽인 메모의 아버지가 아무리 봐도 테러리스트로는 안 보였고. 자꾸만 그 기억이 되살아나 괴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히 루즈의 여행기를 보고는 그 아들을 통해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서 루즈에게 메모에게 접근해달라는 주문을 했던 거죠. 그리고 그렇게 루즈가 올리는 영상들을 보다가 결국 모든 게 자기가 일하는 회사의 착오로 인한 비극이었고 자신은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걸 확신하게된 루디. 메모를 찾아가 사죄하며 무엇이든, 어떻게든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어필합니다. 처음엔 저리 가 이 그지야... 로 반응하던 메모는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 루디에게 그걸 부탁하는데요. 그게 뭐냐면...


 니 드론으로 자기 고향의 댐을 박살내 달라는 겁니다. ㅋㅋㅋ 아니 이야기 전개 상으로 적절한 부탁이긴 한데 너무 무리한 요구니까요. 하지만 흔쾌히 승낙한 루디는 원격 접속으로 드론을 날려 댐을 향하고, 그걸 막으려는 보안 드론을 휙휙 따돌리고 댐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이때 날아가는 미사일이 생전에 메모 아빠가 던졌던 돌팔매로 오버랩되면서 댐에 명중. 댐은 무너지고 콸콸 흐르는 물에 아랫 마을 사람들과 특히 메모의 가족들은 환호합니다.


 마지막은 작별이겠죠.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더 이상 미국에서 일하긴 커녕 수배자의 신세가 된 루디는 메모와 악수를 나누고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메모는 씐나고 즐거운 엄마, 동생과 영상 통화를 한 후 역시 도망자의 길을 떠납니다. "이렇게 서로가 연결되어 힘을 모은다면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나레이션을 남기면서요. 이렇게 끝입니다.

    • 포스터 보고 멋지다 생각했는데 바아로 이런 폼 나는 작품 아니라고 하셔서 웃었어요. 포스터라도 폼 나는 게 어딘가요. 미국이랑 딱 붙은 곳에 살고 있으니 멕시코인들 입장에서는 이렇게라도 메시지를 풀어내야지 안 그럼 울화통 터지잖아요.
      • 그런데 정작 돈이 없어서 미국 로케이션 장면은 하나도 없구요... ㅋㅋㅋㅋ 한국도 중국 아래 인접해 있긴 하지만 멕시코와 미국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맨날 미국 영화, 드라마에 자기네 나라가 생지옥으로만 나오는 걸 보면서 얼마나 기분 나쁠까 싶습니다.

    • 멕시코 sf라니 귀하긴 귀하네요. 일단 시도라도 하는게 어딘가요(우리 나라는 왜!!!)

      일하는 장면은 레디 플레이어 원도 생각나고요.
      • 한국도 사실 비슷한 시기에 시도는 열심히 했었죠. 거의 다 말아 먹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 쌓은 경험치가 요즘 국산 장르물들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완전 최고다 싶은 작품 하나쯤은 나와주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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