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개인간의 돈거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구와 돈 거래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죠. 어째서일까? 어렸을 때는 내가 돈이 많아지면 돈 꾸러 온 친구에게 시원스럽게 꿔주는 멋진 어른인 나를 상상하곤 했어요. 하지만 글쎄요. 나이를 먹어보니 그게 아니예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같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개인간에 돈을 꿔준다는 건 너무 고마운 일이라, 꾼 돈을 갚을 수 있게 되면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그 돈부터 갚아야 해요. 그게 옳죠.


 하지만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아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자기가 쓰고싶은 곳에 다 쓰거나, 은행에 먼저 돈을 갚죠.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선택을 하는 거예요. 돈을 꿔준 사람에게 오늘도 돈을 안갚겠다는 선택을 내리며 사는 거란 말이죠. 그자들은 마치 돈을 꿔준 사실을, 상대가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살아가죠.



 1.사람들은 왜 '사람'에게 돈을 꾸려 할까요? 돈이란 건 은행에서 꾸면 되는 거고, 신용이 모자라면 좀더 높은 이자율의 대부업도 있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꼭 돈이 나올 것 같은 사람에게 찾아가서 돈을 꿔달라고 한단 말이죠. 



 2.그야 '꿀 수만 있다면'개인간의 돈거래로 돈을 꾸는 게 엄청난 이득이긴 해요. 설령 돈을 칼같이 갚는 사람이더라도 현시점에서 돈을 꾸고 미래에 돈을 갚는다면 그 자체로 이득이니까요. 돈이라는 건 얼마를 땡기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땡기느냐도 중요하거든요. 그 돈이 '개인간의 신용으로 꿀 수 있는 돈'이라면 설령 필요가 없는 돈이더라도 무조건 땡겨두는 게 무조건 이득인거죠. 나 같아도 은행이 1억을 그냥 꿔준다고 하면, 내게 백억원이 있어도 일단 꾸고 볼 거예요.



 3.한데 나는 그놈의 신용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개인간에 '돈을 아예 줘버리는'정도의 인연이나 신용은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친구가 1억 빌려달라고 오면 꿔주길 거부하고 1억을 그냥 줘버릴 수는 있어요. 진정한 친구라면요.


 그런데 돈을 그냥 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빌려는 주는 관계라면, 내가 보기에 그 관계는 너무 어중간해요. 왜냐면 개인간의 돈거래라는 건 빌리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쉬운 대출 창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4.휴.



 5.그리고 무서운 점은, 빌려가는 사람은 본인이 정말 갚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시간이 지나면 아니거든요. 왜냐면 개인이 은행 수준의 구속력과 집행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사실은 돈을 꿔준 상대가 '채무를 회수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걸 인지하게 되면 꿔간 사람 입장에선 '이 돈, 좀더 나중에 갚아도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떼먹지는 않을거지만.'라는 생각이 드는 법이예요.


 사실 개인간의 돈거래가 이렇게 파탄나는 것은 그것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호의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6.내가 보기에 이놈의 '호의'라는 것은 참 무서운 거예요. 호의를 발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호의만으로 수천만원, 억대의 돈을 꿔주는 게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호의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걸 갚고 싶다고 마음먹어도, 막상 갚아야 하는 금액의 숫자를 마주하면 그 호의를 저버리고 싶어진다는 점이 말이죠.


 맛있는 식사를 사주거나 술 한잔을 사준 호의는 쉽게 돌려받을 수 있어요. 그 정도의 호의는 갚기도 쉽고, 그 정도의 호의쯤은 갚는 게 상대방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니까요. 


 하지만 호의로 꿔준 돈은 글쎄요. 그 호의를 돌려주고 싶다가도 '그냥 이거, 돌려주지 않기로 할까.'라는 마음이 들게 만든단 말이죠.



 7.어쨌든 그래요. 개인간의 돈거래라는 건 사실 돈이 아니라 호의의 교환이거든요. 그런데 그놈의 '호의'라는 것은 돌려주지 않아도 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호의라고 부르는 거고요. 그리고 호의라는 것은 너무 크게 받게 되면 괜히 되갚기 싫어지는 법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돈을 꿔줄 정도의 호의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돈을 줘버리는 정도의 호의는 가능하지만요. 개인간의 돈거래는 절대 하면 안된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피말리는 은행 심사를 거치지 않고 너무 쉽게 건네진 돈은 상대 입장에서 왠지 갚기 싫어지는 법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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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그래요. 나는 타인에게 돈을 줄 수는 있어요. 물론 나에게 돈을 꿔달라거나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이죠.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죠. '너한테 힘들다고 말을 안 하는데 니가 어떻게 아냐?'라고요.


 하지만 나와 친하기도 하고, 내가 그냥저냥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돈 꿔달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낭중지추. 보면 알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단한 거거든요. 몇년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옆에 있는 나에게 꿔달라는 말을 한 번도 안하는 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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