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토요일 오후 2시 집회 다녀왔습니다

오후 5시쯤에 약속이 있어서 퀴어 및 다른 분들이 주도하는 보신각 집회를 먼저 다녀왔습니다. 이렇게라도 참여할 집회가 따로 열리는 게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3주 연속으로 주말 집회에는 계속 못나가고 있었거든요. 한번은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어떤 가수의 콘서트에, 또 한번은 이미 한 주를 늦춰놨던 지인과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듀게에조차도 어쩌면 마지막 주말 집회일 수 있다고 글을 썼는데, 그 상식적 예측이 무색할 정도로 헌재는 재판을 질질 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3월 한달은 계속해서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왜 그렇게 지독한 숙청을 했는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집회에 로리타 패션을 입은 분도 있었고, 무협지 스타일의 도포를 입은 분도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재미난 깃발은 덤입니다. 그런 걸 보면서 이런 민주주의 투쟁 집회와 퀴어퍼레이드와 코스프레 행사가 이제 크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주장이 확고한 스타일은 단지 외양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주류로서의 자신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저항적 움직임이기도 한 것일테니까요. 비상행동 집회에는 아주 정석적인 선비 스타일, 하늘색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고 다니는 분들도 계십니다. 삼일절 근처 집회에서는 어떤 분들이 일부러 개화기 차림을 하고 다녀서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그랬었네요. 이런 복식들은 시민 저항의 진화 같아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촛불로, 그 다음에는 개인적 깃발들이, 이 다음에는 응원봉이, 그 다음에는 압도적인 숫자의 다양한 깃발들이... 이제 그 가시적 주장들은 의복까지 뻗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좀 후줄근하게 일상복을 입고 나간 제가 괜히 머쓱했습니다. 


이 날 집회에는 정의당, 녹색당, 진보당의 노녹진 야당들의 깃발이 많았습니다. 사실 많은 집회에서 제일 먼저, 자주 보게 되는 건 이 신호등 야당 3인방입니다. 지난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 민주당을 가장 자주 봤다면,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는 남태령과 한강진을 비롯해 이 정당들을 가장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100만이 모인 경복궁 앞에서 장혜영씨가 여성의 날을 맞아 윤석열 심판 연설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했고,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키세스 사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서 죽어가는 보좌관이 더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만ㅋㅋ) 녹색당 이상현 대표는 이 날 보신각 집회 무대에 올라와서 노녹진 정당에 많은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정치인을 따질 때 광장에서 누구와 가장 많이 마주치는지를 제 개인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 노녹진 의원님들에게 가장 친밀감을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공중파 미디어가 현장까지는 파고들지 못하고, 이준ㅅ 따위나 좀 공허한 다른 의원들에게 마이크를 지나치게 많이 준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집회에 나간다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를 좀 생각했습니다. 좀 춥긴했는데 그걸 빼면 제가 뭘 해야되거나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하는 게 없으니까요. 심지어 집회 나가서 1시간 내내 핸드폰만 하고 있어도 누가 뭐라고 안합니다. 이어폰 끼고 노래 들어도 됩니다. 팔짱끼고 멍때려도 되고 책을 읽어도 됩니다. 오로지 몸뚱이 하나 갖다 놓고 자리를 채우는 것만 하면 됩니다. 요새 집중력이 떨어진 저도 이렇게 집회에 나가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좀 웃기기도 하더군요. 전장연 집회 같은 곳에서 경찰 무리와 대치하고 소리지르고 몸싸움 하고 이러는 걸 생각하면 지금 이런 집회는 정말 편하디 편한 집회입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집회에 아예 노트북 들고 가서 서류 작성하고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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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을지로 3가 쪽으로 행진을 했습니다. 서울고용노동청 근처의 철탑 위에 올라가있는 김형수 동지와 다들 인사를 나눴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크레인이 철탑을 고정시켜놓고 있었습니다. 깃발이 펄럭거릴 때마다 위태로웠습니다. 어떤 노동자는 하늘에 붙들립니다. 누군가에는 이 땅이 발을 붙일 수도 없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감상주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지요. 오늘 일이 너무 바빠 이제야 올립니다.


    • 사진이 넘 멋집니다. 시사사진전 같은데 걸어도 되겠어요. 


      집회에 나가면 여러 입장이 확 와닿을 거 같아요. 영상을 봐도 기사만 볼 때와는 느낌이 다르던데요. 


      지금 집권 세력은 정말 상식을 뛰어넘고 상상 그 이상이라 뭐 할말이 없지요. 너무 많은 사람 지치게 합니다. 오늘도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찍을 때 무척 죄송스럽긴 했습니다. 나중에 저 곳에 따로 선전전에 잠깐이라도 합류하고 그렇게 값을 치뤄야할 것 같습니다.

        • 사진 내용은 생각 않고 형식만 보고 멋지다 해서 지금 보니 적절치 않은 표현이네요. 그래도 볼 수 있어서 저런 상황에서 고생중인 걸 알았습니다.

          • 한 분이라도 더 알아주시면 좋은 일이죠...!

    • Screenshot-2025-04-01-at-16-11-2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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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29일 8시 좌측 전방 헌재 앞입니다.


      행진후 남은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아. 너무 추웠어요.ㅎㅎㅎ


      깃발.. "사랑?"




      3월 29일 토요일

      • 아니?? 이 댓글을 이제야 봅니다 ㅎㅎ 저 떄 저렇게 사람이 많았군요. 사진 정말 멋지네요.


        그동안 셜록K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올리신 사진은 뭐라 말을 할수 없을정도로 마음이 무겁네요.


      늘 사진과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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