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화이트 버드]
마크 포스터의 [화이트 버드]의 원작은 R.J. 팔라시오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은 팔라시오의 전작 [원더]와 연결되었는데, 이 책도 2017년에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었지요. 이야기는 [원더]의 주인공을 괴롭혔다가 퇴학당해서 다른 학교로 전학간 소년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사실 진짜 이야기는 그의 유대인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형적인 홀로코스트 성장담인데, 이는 여러모로 식상해서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부하다는 인상이 드니 영화는 곧 제 기억에서 스러져만 갔습니다. (**)

[하드 트루스]
마이크 리의 신작 [하드 트루스]의 주인공은 아마 [네이키드] (이 명작은 현재 [비밀과 거짓말]과 함께 왓챠에 있습니다) 이후 그가 보여준 가장 비호감적인 주인공일 것입니다. [비밀과 거짓말]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올랐던 마리애나 장-바티스트가 살 떨리게 연기하는 팬지는 가히 [해피 고 럭키]의 포피의 정반대라고 과언이 아닌데, 영화는 그녀가 주변 사람들 대부분을 걸핏하면 막 쪼아대는 걸 지켜보면서 캐릭터 구축을 담담하게 해가지요. 그러면서도 이 비호감 주인공을 점차 어느 정도 이해하게 만드는 게 참 대단한데, 당연히 리와 장-바티스트의 공이 큽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그렇게 평론가들로부터 상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게 아쉽지요. (***1/2)
P.S. 마이크 리의 전작들에 비해 주인공뿐만 아니라 여러 많은 조연 캐릭터들이 흑인인 게 특히 눈을 끕니다. 리 본인에겐 상대적으로 낯선 영역이겠지만, 시작부터 배우들과 같이 캐릭터와 이야기를 꼼꼼히 구축하고 연구하고 준비하는 그의 작업방식을 고려하면 그리 어렵진 않았겠지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작년 깐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상을 수상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전반부는 인도 뭄바이 시를 배경으로 세 명의 다른 여성들의 일상을 관조합니다. 영화는 이들 각각의 고민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가면서 도시와 그 곳 사람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그러다가 후반부에 배경 전환을 하면서 영화는 더더욱 시적 분위기에 빠져가지요. 그 결과물은 소박하지만 상당한 여운과 감동이 있고, 그러니 작년의 하이라이트들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2)
P.S. 인도에서 이 영화 대신 [뒤바뀐 신부들]이 오스카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되었지요. 그 영화도 꽤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더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 좀 쪼잔한 이유로 인해 선택 못 받은 전자가 대신 선정되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메갈로폴리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는 절 당황하고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야심찬 티가 나지만, 정작 결과물은 혼란스럽고 어설프거든요. 하여튼 간에 코폴라 옹께서는 그 많은 돈을 직접 쏟아부어 만드셨으니 별 후회는 없으실 것이고, 그 옛날에 적어도 네 편의 걸작을 우리에게 선사한 이 거장께서 적어도 한 번 큰 실수를 할 여유는 있다고 전 봅니다. (*1/2)

[백설공주]
모 블로거 평
““Snow White”, which is another re-packaged live action product from Walt Disney Pictures, does not have much reason for its existence in my trivial opinion. Probably because I have seen numerous movie adaptations of that famous fairy tale by the Brothers Grimm since I was very young, I saw nothing particularly new here during my viewing while observing how spiritless and insipid it mostly is, and that made me crave more for the greatness of animation film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1937).” (**)

[언젠틀 오퍼레이션]
가이 리치의 신작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2차 세계 대전 실화들 중 하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짝퉁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 영화처럼 한 망나니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가운데 나찌 악당들 막 죽여대긴 하지만, 정작 캐릭터와 이야기는 여러모로 심심하더군요. 지루하지 않았지만,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1/2)

[컴패니언]
[컴패니언]에 대해서는 좀만 말씀드려도 스포일러가 되니 별말 하지 않겠습니다. 시작부터 결말을 알려주긴 하지만, 가능한 한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게 재미있거든요. 참고로, 곧 국내 개봉될 [헤레틱]의 주연 배우들 중 한 명인 소피 대처가 여기서 마음껏 실력 발휘하는 모습도 좋지만, 그 반대편에서 참으로 찌질한 이성애자 백인 남성 연기를 하는 잭 퀘이드도 든든하지요. (***)

[블랙 백]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 [블랙 백]은 여느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날렵하고 효율적입니다. 영화 자체는 은근히 배배 꼬인 첩보 스릴러물인데, 데이빗 코엡의 각본이 이야기와 캐릭터를 노련하게 굴려 가는 동안 출연 배우들은 한껏 재미 보고 있으니 90여분의 상영 시간은 금세 흘러갔습니다. 끝나고 나서 머릿속에서 이야기 정리를 좀 해야 했지만, 여전히 멋진 수작인 건 변함없습니다. (***1/2)

[All Dirt Roads Taste Salt]
[All Dirt Roads Taste Salt]는 처음엔 꽤 혼란스웠습니다. 미국 미시시피 주 어느 시골 동네에 사는 한 평범한 흑인 여인의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이리저리 생생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에게 공백을 알아서 채울 것을 요구하니 처음에 좀 벅차긴 하지만, 그러다가 보면 상당한 여운이 남곤 합니다. 좀 어려운 아트하우스 영화이지만, 여러모로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프레젠스]
작년에 만들어져서 올해 초에 미국에서 개봉된 스티븐 소더버그의 또 다른 신작 [프레젠스]는 호러 장르 영역에 도전합니다. [블랙 백]의 각본가 데이빗 코엡의 각본을 바탕으로 영화는 어느 한 중산층 가족이 어느 집에 이사 왔다가 어떤 존재를 서서히 느끼게 되는 과정을 지켜다 보는데, 영화는 그 의문의 존재의 관점에 죽 밀착하면서 이야기를 굴려가지요. 한마디로 장르실험 소품이니까 그 점을 어느 정도 유의하시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오리진]
에바 두버네이의 최근작 [Origin]는 좀 독특한 편입니다. 영화는 국내에서도 출간된 이저벨 윌커슨의 [카스트]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척 보기만 해도 다큐멘터리에 더 어울릴 법한 책을 갖고 영화는 윌커슨의 집필 동기와 그에 따른 과정의 극화를 섞어 가면서 책의 요지를 전달하거든요. 이는 지루할 것 같지만 그 결과물은 생각보다 상당히 흥미진진하면서 찡하기도 하고, 보고 나면 여러 생각할 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1/2)
컴패니언은 듀나님께서도 리뷰 첫머리에 '재밌게 보려면 읽지 마!' 라고 하시길래 안 읽었는데 조성용님께서도... ㅋㅋㅋㅋ
소더버그 호러란 것을 얼른 겪어 보고 싶네요. 적어주신 걸 보면 요즘 그 스타일을 그대로 호러에 접목한 것 같은데 어떤 모양새로 나왔을지 짐작이 안 가요. 하지만 또 재밌겠죠... ㅋㅋㅋ
'하드 트루스'는 마이크 리 감독님 신작이라 무척 궁금한데 '해피 고 럭키' 주인공의 정반대라니 정말 무섭네요;;;
'메갈로폴리스'는 도대체 코폴라 영감님이 자기 돈 쏟아부어서 무슨 짓을 한 건지 궁금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