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도 집회 다녀왔습니다

100만이나 모인 날 직후라 집회를 안할 줄 알았는데 하더군요. 일요일날 동지들이 너무 외롭지 않길 바라면서 갔습니다. 토요일날 사람이 정말 많이 모였다고 하던데, 그렇더라도 빠진 게 개인적으로 좀 아깝기도 하고 죄책감도 느껴지더군요. 생각보다 집회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파면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이 이렇게 뜨겁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박근혜 탄핵 집회 때도 한번도 안빠지고 나갔었는데(한번 꾸물대다가 집회가 끝나고 도착한 적은 있습니다) 그 때보다 집회의 생명력이 훨씬 더 강하다고 느낍니다. 박근혜 탄핵 집회 때는 점점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서 인원수가 정말 팍 줄어있던 게 눈에 보였거든요. 지금은 정말 지치지도 않고 매일 이렇게 모이고 있는데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윤석열 탄핵 집회는 게엄이 터졌을 때부터 매일매일 집회가 열렸었고 나중에 주말 집회로 변경되다가 지금 파면 인용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연속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이 힘든 일정에도 시민들이 많이들 모이고 있다는 건 기록될만한 일입니다.
다만 집회에서 불편한 기류에 부딪혔습니다. 현재 집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분명히 구분되는 게 '민주여성'으로 불리는 민주당 여성 지지자들입니다. 이 분들은 외계인이 그려진 담요를 두르고 있으면서 머리에는 파란색 끈을 메고 있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냅니다. 이 자체야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평화로운 집회 분위기를 자꾸 깨트릴려고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본래 집회에서는 마지막 구호를 세번 외치는 게 통상적인 관례입니다. 예를 들어 '윤석열을 파면하라!'고 연단의 누군가 외치면 파면하라! 파면하라! 파면하라! 고 마지막 구호를 세번 반복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마지막에 투쟁! 이라고 덧붙일 때도 있습니다. 파면하라! 파면하라! 파면하라! 투쟁! 이라고 외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에 투쟁을 붙이거나 안붙이는 건 자유입니다. 그리고 제가 있던 집회나 행진에서는 주로 투쟁! 을 붙였습니다. 끝부분이 좀 심심하기도 하고, 끝에다가 화이팅! 이나 아자! 를 외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연단에 서는 많은 사람들이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투쟁!" 하고 발언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 민주여성 분들은 구호를 바꿔서 외칩니다. 파면하라, 파면하라, 파면하라아아아아아아! 라고 끝부분을 일부러 늘어트립니다. 이렇게 외치면 투쟁! 이라는 구호가 자연히 안들리게 됩니다. 이 분들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광장에서 투쟁 소리를 안들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서 각종 사회 단체들이 투쟁적으로 외치는 그 성격을 흐트러트리겠다는 것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누가 악에 받쳐서 그런 건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있던 옆쪽의 민주여성 분들에게서만 파면하라아아아아아 하고 끝부분을 늘어트리는 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이분들이 의식적으로, 집단적으로 이렇게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순간 경계심이 빡 올라오더군요. 그 투쟁 구호가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쁘다고 그걸 안듣고 싶어하는건가? 왜 민주노총 및 여러 사회단체들과 함께 투쟁하는 분위기를, 기어이 어지럽히려고 하는건가?
그 전에 트위터에서 민주여성 분들의 패악질이 한번 공론화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 참 못됐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걸 현장에서 느끼니까 정말 위협적이더군요. 무엇보다도, 다같이 모여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시위하자고 조성해놓은 공간을 아무 생각없이 다 깨트려버리는 그 자신감에 놀랐습니다.



저 날 행진을 하면서 이질적인 분위기를 계속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행진을 하면 꼭 투쟁!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는데 저날은 정말 투쟁 소리를 듣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투쟁이라는 구호를 더 세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광장은 우리 민주당 (지지자들) 것이라는 그 삐뚤어진 주인공마인드에 태클을 걸고 싶었달까요. 광장에서 투쟁하는 게 어떤 사람들한테는 윤석열뿐만 아니라, 광장에 모인 또 다른 사람들을 향한 투쟁이 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만약 어떤 기수들이 퀴어나 다른 의제가 강조된 깃발을 들고 다니다가 이 민주여성이라는 분들한테 해코지를 당하면 어떡할지 정말 걱정스럽더군요. 이미 증언이 여럿 올라와있는 상태이고...
sns나 커뮤니티를 보면 종종 본인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의제나 활동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주진영이 국힘세력, 혹은 검찰 및 재벌 세력과 맞서 싸우고 나머지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은 다 엑스트라 혹은 지원군이라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봐서 지겨운데, 이렇게 오프라인 광장에서도 보게 되니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이 탄핵 집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 공은 누구에게로 다 갈 것이며 어떤 시민들은 어떻게 지워질 건지요. 저는 그런 민주당 주인공 세계관에 정말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건 단지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영상자료든 뭐든 간단하게 확인 가능한 팩트체크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탄핵 집회에서 커밍아웃을 하도 많이 봐서 퀴어퍼레이드에 온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런 시민들을 동지로 존중하지 못하고 저렇게 행패를 부리면서 '나중에' 지워버리는 건 그냥 메이저리티의 폭력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또 나갑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행진은 패스했습니다. 오늘은 늦게 가서 행진은 조금만 하고 집에 갈 생각입니다. 집회를 연짱 나가려니 좀 피곤한데, 단식을 하면서 이 추위에 떨고 있을 집회측 사람들을 생각하면 집에 그냥 가기가 너무 미안합니다. 그래도 제발 좀 파면 인용에 대해 헌재가 빨리 소식을 냈으면 좋겠군요. 벌써 좋은 타이밍은 다 지나갔고 이제 이 사람들이 시간끌기한다는 생각밖에는 안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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