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시위 다녀왔습니다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정성일 평론가는 GV에서 입버릇처럼 말했다. 본인이 영화'만' 보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고. 이 영화는 어쩌고 저쩌고 미쟝센이 어쩌고 무슨 카메라 장비를 썼고 저기서 점프컷은 어떤 효과를 일으키고... 나는 이제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그런 사람들은 영화커뮤니티에 널려있다. '영화'라는 매체가 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빌려 뭔가 대단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매번 떠들기만 하는 사람들이 나는 좀 지겹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화소비를 이상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한다.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보고 난 이후의 처절함은 내가 영화로부터 받은 숙제같은 것이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너무너무 슬퍼, 잔혹해, 전장연 사람들이 정말 안됐어, 하고 감상을 나누면 끝인가? 그 이후 나는 1호선을 타고 가다가 전장연의 이현숙 공동상임대표를 지하철에서 우연히 봤고 그 분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 분은 흔쾌히 인사를 받아주시며 내게 언제 한번 전장연 시위에 와주라고 말을 건넸다. 내 일상의 스케쥴을 봤을 때 아침 8시라는 집회 시간은 참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감히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좀 어려운데, 노력해보겠다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후 어쩌다보니 기회가 생겼다. 연차를 쓰고 쉬는 겸사겸사 전장연 집회에 가기로 했다. 연혜원씨가 쓴 여성신문의 칼럼이 나를 재촉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다들 고생하고 있었지만 나는 윤석열 탄핵 집회의 '위대함'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고 있었다. 아마 사람이 훨씬 적고 다른 사람들이 본체 만체 하는 집회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일 것이다. 비록 단체는 다를지언정 내가 다녔던 촛불집회에는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주변의 인파는 우리를 늘 본체만체 하고 있었다. 특히나 홍대 거리를 행진할 때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진지병 걸린 정치광인'들이 거리를 헤매는 것 같은 소외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젠더노소 가리지 않고 모여서 함께 노래하고 같은 뜻을 크게 이야기한다. 드디어 꿈이 이뤄진 것 같으면서도 왜 그 전에는 진작 그렇게 모이지 못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는 시민으로서 난이도가 너무 낮은 일이었다. 그냥 가려고 마음 먹으면 아무나 갈 수 있다. 옆에서는 피켓을 나눠주고 수많은 사람이 서로 으쌰으쌰해주며 경찰도 안전하게 집회를 지켜준다. 이렇게 쉽고 즐거운 집회가 또 어디있나.
마음만 먹으면 그냥 다녀올 수 있는 집회를 다니면서 대단한 민주시민 행세를 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고 서로 환호하는 집회만 집회라 할 수 있는가. 그럼 내가 영화에서 본 전장연의 그 서러운 시위는 다 무엇이며 나는 그 부르짖음으로부터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집회에 가기 전에 안경집을 하나 챙겨서 갔다. 안경을 그 안에 넣어두어야 격한 몸싸움일 벌어질 때 안경이 안부숴질 것 같아서. 그렇게 긴장하면서 전장연 집회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혜화역 5-3 승강장 앞에는 전장연 사람들이 몇명 있었다. 어색하게 다가가 집회에 참여하러 왔는데요, 라고 했더니 활동가분이 반갑게 주황색 조끼를 건네줬다. 침묵시위를 하며 몇분간 있다가 경찰이 퇴거를 명하자 활동가 분의 안내에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서울대 병원으로 향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서울대 병원 앞에서는 큰 피켓을 몸에 걸고 장애인 고용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별 수 없이 나도 시민발언을 했다. 트위터 밈을 그대로 말하기에는 좀 상스러워서 "씹X끼"라는 말은 빼고 "서울은 차가운 개자식들의 도시라는 말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대충 나도 그 개자식들 중 하나지만 너무 차갑게만 살고 싶지는 않고 다음에도 또 올 수 있으면 꼭 오겠다는 말이었다. 그런 식으로 어찌저찌 첫 전장연 집회는 끝났다. 나는 아무데도 안다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투명인간 흉내만 내다가 돌아왔다.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맡다가 갑자기 엑스트라로 전락한 느낌에 현실을 실감했다. 원래 집회란 이런 것이고 윤석열 탄핵 집회는 그 규모나 성취 면에서 너무 '대단한' 것이라고.
이후 전장연 집회에 두번째 참여했을 때는 상황이 조금 바뀌어있었다. 남태령 집회 이후 연대를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말벌동지'시민들이 생겨났다. 두번째 시위 때는 더 젊고 빠릿빠릿한 사람들이 많았다. 거의 다 여자들이었고 그들은 경찰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활동가의 휠체어에 손만 대면 뭐하는거에요 하지 마세요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오히려 뻣뻣하게 있었다. 자리는 채울 수 있어도 그렇게 공권력에 대들 용기까지는 없었다. 서울대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한명 한명이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도보에서 시위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병원에서는 잘 걷지 못해 보조기구에 의지해 걷는 사람들과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 시민발언을 했다. 자신도 병이 있다고 고백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히키코모리라서 집밖에 계속 못나오고 가족들한테도 눈총만 받았는데 전장연 집회에 참여하려고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고 했다. 일반적 시선으로 "멀쩡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돕겠다며 다들 모여들었다. 그 날 박경석씨는 처음으로 강제퇴거를 당하지 않았다며 트위터에 기쁨을 표했다.
이게 하나의 픽션이라면 이제 모든 것이 훨씬 더 순조로워졌어야 했을 것이다. 말벌동지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지키고 소리를 질러도 서울교통공사와 경찰들은 무자비하게 활동가들을 이끌어냈다. 어떤 시민은 다쳤고 어떤 시민은 채증당하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누군가는 경찰에 출두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마침 설 연휴 전날에 연차를 쓰고 고향에 내려가기 전 전장연 집회에 다시 나갔다. 나만 너무 편하게 시위를 한다는 게 좀 싫었고 어차피 쓸 연차인데 고향에 바로 내려가는 게 얌체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 날도 천만다행으로 과격한 연행은 없었고 나는 또 무사히 시위를 마쳤다. 다만 이제는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 옆에서 스피커를 두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박경석씨의 설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헤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전장연 집회에 간다. 꿀도 없고 고기도 없지만 그 말벌들은 붕 하고 전장연 집회에 날아간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자유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경외와 자괴를 동시에 느낀다. 간헐적 실천이라도 하고 사는 것이 최대치라면 그렇게라도 살아야할 것이다. 소박한 시위는 현재진행형이다.
출퇴근길이 4호선이라서 23년 지하철 시위 때 다양한 장면을 목격했었습니다. 저는 도움이 못되서 미안하니까 홍보물이라도 잘 받고 그랬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충격먹었습니다. 돕지 못하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는 저와 달리, 왜 바쁜 사람 발목 잡냐는 반응이 일반적이어서요. 사회가 변한 것 같다가도 아닌게 밝혀지는 순간이 있는데 전장연 시위가 저에게는 그런 장면 중 하나였어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현장에서 보셨을테니 제가 영화에서 봤던 것들보다 더 재미없고 더 끔찍한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낯설어하면서도 돕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시민들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온라인에서 염치없이 전장연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더 쉽게 가시화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남태령 이후로 전장연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사회가 퇴보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보 후퇴 이보 전진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