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님의 '물건에 대한 관심에 대한 잡생각'에 대한 생각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 있는가. 혹은 아름다움을 소유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지불할 수 있는가. 현대사회에서 목숨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비용은 이 아름다움에 꽤나 많이 투자되고 있을 것입니다. 일례로 아이폰이 있겠죠. 아이폰을 4s때 딱 한번 써보고 적응에 실패한 저로서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좀 신기해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 독자적인 생태계에 성공적으로적응한 게 저같은 디지털 노마드에게는 인류의 디지털 진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ㅎ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됐던 기능들이 십몇년간 아예 안되다가 이제서야 업데이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계산기 중간 과정 표시 / 동영상 촬영 중 일시정지 등) 아이폰야말로 감성의 결정체같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름다움은 현대사회에서 자본을 움직이는 가장 큰 실체이며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른 데 물욕이 거의 없습니다. 자동차, 시계, 특히 전자기기에는 흥미가 아예 없습니다. 핸드폰도 다른 기능을 다 못쓰고 사는 저에게 아이패드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저 멀리 떠있는 별을 궁금해하고 가까이하고 싶어하는 천문학자들, 별세계 사람들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무엇을 살 것인지보다는 이 경제적 능력을 어디에 알맞게 분배할 것인지가 때론 더 중요한 문제처럼 다가옵니다. 저는 무조건 '우리동네소상공인상생우선'주의거든요 ㅎㅎ

저에게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거리는 옷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옷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는 중1 때 어머니랑 같이 쇼핑을 했을 때 같은데 그 때 이후로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망의 구덩이가 제 안에 파진 것 같습니다. 이삿짐 기사님도 혼자 사는 남자 집에 옷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본다도 탄식할 정도였으니까요 ㅎㅎㅎ 얼마전 사고 싶었던 옷이 품절되었다는 소식을 보고는 며칠 내내 저기압으로 살았습니다. 탄식을 하면서 깨달은게 이건 제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제 천성 같은 거더군요.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떨쳐낼 수 없는 것은 이제 캐릭터라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이 행성을 소진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란 표현은 늘 저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패션 비즈니스가 지구에 버려대는 수많은 오염물질과 다 팔지 못한 잔여재고들은 이제 지구에 산을 쌓을 정도가 되어서 인공위성으로도 관측이 될 정도니까요. 그래서 오년전부터는 한번 사면 10년은 무조건 입는다는 걸로 좀 마인드를 바꿨는데 이러면 금전지출은 더 커집니다. 오래 입을 수 있는 클래식함에 독특함이 더해져있는 그런 옷들은 무조건 비싸거든요.

꼭 환경 때문이 아니더라도 thoma님이 인용한 그 문구 때문에 옷에 대한 제 집착의 형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아름다움은 지혜의 시종일 뿐이고 그 자체로 촉매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예전에 어렴풋이 느꼈달까요. 아름다운 옷을 사서 장만해놓으면 그것은 그냥 끝입니다. 제가 그 옷을 입을 때 그 옷의 아름다움을 대여할 수는 있고 어떤 분위기까지 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본체인 제가 만들어내는 인상의 부분인 거겠죠. 좀 더 어렸을 때는 갖고 싶은 옷 때문에 택배 야간 알바를 한달간 뛰어서 옷을 사기도 했는데 그게 제 경제적 상황이나 저라는 사람의 인격 혹은 품격을 크게 바꾸지는 못하더군요. 모든 소유는 아무리 성공해도 '뭘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 그치지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달까... 예쁜 옷의 소유는 그런 허무가 있습니다. 아마 thoma님이 원하시는 고가의 소파를 제가 갖는다면 천만원어치의 충격은 며칠 가지 못할 것이고 그 감흥은 금새 무뎌지지고 말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익숙해지는 순간 이내 일상에 편입되고 마니까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소비는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종종 선택과 절제가 가능한 욕망처럼 폄하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인 모두에게 어떤 방면으로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하나의 법칙이지 않을까요. Thoma님은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이끌림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서술에 반발감이 드셨다고 했지만, 저는 그 문장에 많이 공감하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과 자본주의적 집착은 너무 당연한 전제여서, 그걸 소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자본주의적 탐욕은 일종의 구조적인 문제이고 그 안에서 개인이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절제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요. 최근 저속노화 선생님이 라이징 스타가 되었듯이, 이 아름다움의 시장 속에 던져진 저희들에게도 절제의 법칙은 이제 필수적인 저항의 법칙이 된 것처럼도 느껴집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심적으로도, 존재의 측면에서도 파산하고 말 것이니...

제가 thoma님과 다르게, 한쪽으로 치우쳐있긴 해도 물욕에 사로잡힌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물욕이란 단지 정교해질 뿐인 것 같다는 호기심도 듳고요. 저는 현대사회의 모든 인간은 과한 욕망에 haunted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ㅎㅎ 좋은 글 써주셔서 짤막하게 감상남겨봅니다.
    • 제가 쓴 부분을 옮기면서 덧붙이면


      '좋고 아름다운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이끌림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에 집착하는 탐욕은 경계하라는, 이도저도 아닌 중립적인 서술에 대한 반발이 은근히 생기기도 하였어요.' 제가 이렇게 쓰고 이 책이 재미있지만 가벼움이 있다,라고 느낀 것은 우리가 정서적, 정신적 문제들의 해결을 물건들에 의탁하게 하는 물질주의(자본주의) 자체에 이 책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아울러 저자의 글 중 


      '우리 자신과 이 행성의 기력을 소진해 만들어낸 물건들이 우리의 고귀하고 훌륭한 자질을 북돋는 데 최선의 기회를 제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부분은 Sonny 님께선 개인의 절제 필요로 이해하셨네요. 현실적인 이해인 것은 맞아요. 저는 저자가 우리에게 '고귀하고 훌륭한 자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로 쓰고 있어서 그런 확신이 우리에겐 없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건들에 의지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자도 이런 부분을 앞에서 언급 안 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돌고돌아 마무리가 아주 무난하달까, 쉽게 간달까, 그런 감이 들었습니다. 깊이 있게 파고 드는 책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할 것 같은데. 사실 깊이 있게 파고 들면 저는 어려워서 잘 못 읽으면서도 이런 말을 하니 우습긴 합니다.ㅎㅎ


      아름다움이 소비를 통하지 않는, 소비자로 존재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기를 생각해 봅니다.    

      • 아하 그렇군요. 제가 책을 읽지 못해 잘못 이해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내면의 물질주의와 상당부분 타협하고 있기에 책의 내용을 가지고 자본주의의 본질에 급진적인 질문을 차마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훌륭하고 고귀한 자질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좀 슬프고 무섭군요. 그럼에도 저는 그 자질이 유/무의 속성이 아니라 순수함 같은 인간의 본성이 물질에 오염된 상태라서 회귀나 회복이 가능한 무엇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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