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똔 체홉의 [세자매]를 보고 왔습니다
이것이 아마 2024년 체홉 극장에서 제가 보는 마지막 작품이 되겠네요. 총 2회차를 감상했고 각기 다른 배우들의 연기로 미묘하게 다른 작품을 감상한 듯 해서 좋았습니다. [바냐 삼촌]을 보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나중에 갈 수록 거의 모든 작품들을 두번씩 봤으니 그래도 본전은 뽑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체홉의 극들은 보기 편하고 쉬운 느낌의 극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숲귀신]이 좀 유쾌한 쪽이랄까요. 그 작품조차도 누군가는 뒤에 가서 스스로 삶을 끊어버리니 절대 즐거운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체홉의 세계관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있었는데도 보는 동안 [세자매]는 더 힘들었습니다. 인물들은 점점 추락해가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립니다. 그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자연과 인간의 재해가 나란히 덮칩니다. 세자매는 딱히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들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그냥 애를 쓰고 있었는데 주변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들을 괴롭힐 뿐입니다.
체홉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이 작품에도 파티가 등장합니다. 인물들은 오랜만에 모여서 인사를 건네고 서로 소개를 하고 낯을 익히고 함께 노래와 춤을 즐깁니다. 그렇게 열어젖힌 이 세계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듯 하지만 2막부터는 점점 차가워집니다. 세 자매의 형제이자 일가의 장남인 안드레이는 결혼생활에 벌써 진력이 나버렸고 그의 아내 나타샤는 집안을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점점 속물스러운 통제욕을 드러냅니다. 올가는 1막과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이리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노동에 이미 의미를 잃은 상태이고 마샤는 베르쉬닌 중령과 점점 불륜에 빠져듭니다. 솔료늬 중령은 이리나에게 폭력적인 사랑고백을 한 뒤 앙심을 품습니다. 대화재가 일어난 3막으로 가면 이 갈등은 완전히 최악의 상태로 다다르게 됩니다. 안드레이는 도박에 빠졌다가 빚으로 집을 저당잡혔다는 것을 고백하고 나타샤는 유모를 학대하며 안주인 행세에 완전히 빠집니다. 마샤는 불륜을 고백하고 이리나는 투젠바흐 남작에게 고백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올가는 이 난리 속에서 맏언니로 평정을 유지하느라 온 심력을 쏟습니다.
이 작품은 3막에서 절정에 이르렀다가 4막에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은 이별하고, 사랑은 떠나가고, 혹은 죽어버리고, 재산은 날아가고,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의 공간도 없어집니다. 세자매에게는 총체적 난국이 펼쳐집니다. 끝의 끝을 갈 수록 비극은 계속 휘몰아칩니다. 언니를 제외한 두 자매, 마샤와 이리나는 주저앉아 오열을 합니다.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자매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버지의 빈 자리를 기리며 시작했던 작품은 가족의 와해, 각 자매의 상실로 이어지며 더 큰 고통을 안깁니다. 이들을 누가 어떻게 위로하고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단 말인지요. 4막에서 군대가 도시를 떠나면서 세 자매의 곁을 지키던 군인들은 차례차례 인사합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면서요. 계속 울려퍼지는 군악대 소리와 우렁찬 구호는 그 이별이 세자매의 삶에서 얼마나 큰 공허를 남길지만을 상기시킵니다.
그렇기에 이 극의 결말은 더 의미심장합니다. 울고 있으면서도 이리나는 일어나서 말합니다. 나는 그래도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칠거야, 일을 할 거야. 맏언니 올가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했는지 그걸 알게 되겠지. 그걸 알 수 만 있다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극장이 어두워지고 극이 막을 내릴때까지도 올가는 그 커다란 군대의 고별 행진 소리사이에서 계속 말합니다.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체홉은 이 세자매가 비극에 주저앉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고 의지가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자매는 절망에 무너졌지만 그래도 일어섭니다. 집도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다 떠나갔지만 그 마음의 폐허에서 이들은 다짐을 계속합니다. 그들은 눈물을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계속 외칩니다. 절대로 슬픔에 빠지지 않겠다는 듯이. 이걸 만일 텍스트로만 읽었다면 이해가 잘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실존하는 이 분연한 마음을 분명히 목격하면서, 이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절망이 가혹할수록 희망도 치열합니다. [세자매]는 제게 이상한 감흥을 남깁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사는 사람은 씩씩하게 살아간다고요. 어쩌면 이런 것이야말로 야생동물의 담대함일지도 모릅니다. 신체 일부를 잃어도 동물들은 우울증에 걸리는 대신 그냥 그 삶을 받아들이고 적응한다고 하듯이요. 괴로운 일이 계속 일어나도, 그것을 도저히 되돌릴 수 없어도, 한없이 무력하고 부숴진 것만 같아도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측가능한 인과가 아니라 불현듯 이대로는 안된다는 감각기관의 본능적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이 고통의 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세자매의 태도를 우리의 지금 이 현재에도 끌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누군가는 죽고 세상의 변화는 이리 더딘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세상은 나아진다는 여러 캐릭터들의 그 말처럼.
아니, 쏘니님 반갑습니다. 저는 <세 자매>의 출연자였습니다. 거의 전체가 더블캐스트여서 제 출연회차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요^^ 뉴진스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고 다른 글들도 종종 읽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들어온 듀게에서 세 자매 리뷰를 보다니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