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광동어 잡담

제가 홍콩에는 일반적인 중국어와는 다른 홍콩말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된 건 어렸을 때 봤던 스크린 잡지 기사에서였습니다. 그당시 일본에서 원표의 인기가 엄청났었는데, 일본팬들이 원표를 보러 가기 위해 표준중국어도 아닌 홍콩말을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원표가 듣고는 감동먹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홍콩말이 있다는 걸 알고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죠. 그시기 한국에선 그 홍콩말을 접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나중에 동네 유선방송이 들어오고 거기서 온갖 영화를 틀어주는걸 보다 보니, 분명히 그림을 봐선 중국영화인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말이 나오는 게 있었습니다. 좀 당황스러우면서도 '아 저게 그 홍콩말이라는 건가 보다....'라고 생각했죠. 진짜로 홍콩말이 맞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국어는 참으로 다양하니까요.(어쩜 아예 중국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광동어라는 언어를 제대로 인식하고 듣게된 건 NHK 위성방송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까지 국내에 들어오는 홍콩 컨텐츠는 절대다수가 대만 거쳐 들어온 북경어 더빙판이었어서 한국에선 광동어를 들을 일이 없었더랬는데 NHK 위성방송은 원어 위주의 정책이라 홍콩영화는 거진 광동어로 나왔더랬습니다.
이미 국내판으로 북경어로 본 영화들을 광동어로 다시 보는 거라서 그때 처음 광동어와 북경어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죠.

본격적으로 광동어 영화들을 접하게된 건 아무래도 디비디 시대 이후네요. 디비디는 다중음성수록이 가능해 북경어 광동어 둘 다 집어넣고 나왔으니까요.


살짝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언어. 그 조금 있는 공통점을 찾아내는게 좀 재미있긴 했는데... 제 귀에 광동어는 너무 경박하게 들렸습니다. 아마 저뿐 아니라 한국사람은 대체로 그렇게 느낄 겁니다.

광동어는 중국표준어 보다는 베트남이나 태국같은 남방 아시아쪽 언어에 더 가깝게 들리지 않나 싶은데... 광동어쪽이 중세 중국어의 형태를 더 잘 보존하고 있는 거라나봐요. 북경어는 청나라 지배기간 동안 만주어와 간섭을 일으켜서 많이 변형된 거라네요. 광동어는 성조가 6성인데 북경어는 4성이라든가... 그만큼 고저차가 덜해서인지ㅎㅎ 좀 더 점잖게 들리는 면이 있는것 같아요.
뭐 중국어 보다는 만주어가 한국어에 훨씬 더 가까운 언어이니까 북경어쪽이 한국 사람 듣기에 좀 더 편안하게 들리는 건 이상할 게 없겠죠.

그래서 문제가... 광동어로는 뭘 들어도 코미디같더라는 겁니다. 원래 코미디인 영화야 좀 상관없겠지만, 영웅본색에서 적룡과 주윤발이 폼잡고 거창한 대사를 해도 코미디로 들렸고 무협영화같은 건 도통 광동어로는 집중이 안되는 거였습니다. 도무지 진지하게 들리질 않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일부러 북경어로 듣기도 하고 그랬었죠.

뭐든지 익숙함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 낯설고 어색하던 광동어 영화도 10여년쯤 계속 보다 보니 적응이 되어서 이제는 광동어로 진지한 분위기를 잡는걸 봐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그렇게 광동어에 적응하고 보니 대만어라는 복병이....ㅎㅎ)

광동어에 나름 익숙하지긴 했어도... 광동어가 불편한 점들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자막문제. 전 중국말 못하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중국어 자막을 켜놓고 보는 걸 선호하는데, 북경어는 대사와 1대1 대응되는 받아쓰기 자막이 거의다 제공되는 편인데, 광동어 자막은 그런게 그냥 없다시피 합니다. 광동어에 싱크가 맞춰진 자막이라고 해도 대사는 딴소리가 적혀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게 입말과 글말의 차이라나 보더군요. 광동어는 공식적으로는 사투리라서 홍콩사람들도 글로 쓸 때는 북경어 문법따라서 쓴다나봐요. 한국어에서도 사투리를 한글로 정확하게 표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홍콩말도 글로는 정확하게 표기가 안된다나 뭐라나... 아니 그래도 대충 비슷하게는 쓸 수 있잖아요. 영화 디비디 같은데 제공되는 광동어 자막은 실제 들리는 대사와는 너무 다른 (그니까 광동어와 북경어 표현이 적당히 섞여서 나오는)경우가 대부분이라..

이게 제 생각엔 입말 글말 보다는 시장 크기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광동어 대사로 나오는 영화에 자막이 필요한 사람들은 광동어를 못하는 사람들일 테니까... 광동어에 정확하게 대응되는 자막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서가 아닌가싶은...
아마도 지금의 중국 정부는 홍콩에 독자언어와 독자문화가 있는 걸 그리 달가와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 이대로라면 광동어도 다른 언어들 비슷한 처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대만에는 또 대만어가 있다는 걸 [빅타임]을 보고 알았네요.(그 영화엔 북경어 광동어 대만어 다 나옵니다)

    • 제가 광동어에는 무지해서 말을 얹기가 조심스러운데 보통화(표준북경어)는 고등학교에서 배웠거든요. 그런데 홍콩 갔을 때 확실히 느낀 게 각종 안내문(예: 호텔 엘리베이터) 보니까 간체자 번체자 문제가 아니라 보통화랑 문법이 좀 다르다는 건 알겠더라고요. 그런데도 입말이랑은 또 다르다니 쉽지 않네요.
    •  복성 고조, 미스터 부 같은 코미디류에는 좀 어울렸던것 같습니다. 당시 그냥 '중국말' 인줄 알고 '진 땅에 장~화, 마른 땅에 운동화~'이런 시절 이었죠.  취권, 사제 출마 등 이런 코믹 무술류에도 잘 어울렸죠.  소림 18동인, 소림 36방, 유성호접검 이런데에는 북경어가 쓰였나요? 잘 모르겠네요. 보통화가 어울릴것 같은데요. (북경어 더빙?)  북경어를 배우다 보니, 나름대로 진지하고 멋있는 표현과 소리가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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