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검소함)

 

 1.아는 사람이 코로나 시기에 알맞게 주식을 시작해서 엄청 돈을 늘렸어요. 2천만원에서 이제 7억까지 왔으니 수많은 사람이 뚫지 못한 바늘구멍을 뚫었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바늘구멍을 뚫은 사람들은 그 사실에 기뻐할 수 없어요. 그 다음에 있는 더 작은 바늘구멍, 그리고 그 다음에 있는 더 작은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을지 근심하는 상태가 되어버리죠. 1억을 뚫은 사람은 앞자리가 2가 되는 걸 보고 싶어하고, 2억 찍은 사람은 3억을 목표로 하고 3억이 되면 5억을, 5억이 되면 10억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으려 하거든요.


 한데 실제로 10억~15억원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실제로 유용성이 있는지...큰 감동이나 인생의 전환이 과연 있을지 말이예요. 



 2.물론 10억대의 현금이란 건 엄청 큰 돈이예요. 10억이라는 현금이 계좌에 고스란히 있다면 지그시 바라보기만 해도 감동이 밀려오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애소득인 돈...평생 일한 대가일 수도 있는 돈이니까요. 


 그리고 소득세와, 돈을 벌며 그달마다 써야 하는 생활비까지 감안한다면 10억이란 돈은 대기업에 다녔던 사람 기준으로도 생애소득일 수 있죠. 누군가의 평생의 결실에 해당하는 돈이 당장 오늘, 고스란히 내 계좌에 있다는 사실은 감동적인 거예요.



 3.한데 세상엔 두 종류의 직업이 있어요. 로또가 되면 그만둘 직업과, 로또가 되어도 그만두지 않을 직업이죠. 로또가 되면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는 사람에겐 10억은 큰 의미가 있죠.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는 걸 그만둘 수 있는 선택권이니까요. 


 그런데 로또가 되어도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사람들에겐 어떨까? 그런 입장에서는 10억이든 15억이든...심지어는 20억까지 도달해도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수가 없어요. 왜냐면 몇십억원 정도로 나아질 구석이 있는 인생은 아니니까요. 아니 그야 나아지긴 하겠지만, 지금의 삶과 직업을 변화시킬 선택권을 주는 정도의 금액은 절대 아니란 거죠. 



 4.휴.



 5.10억을 쓰는 방식이 '하기 싫은 것을 그만두는'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삶에 녹인다고 생각하면 너무 적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확실하게 좋은 곳으로 이사를 떠나고,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을 유지하더라도 '일'이 아니라 '경영'의 수준으로 확장시키는 건 불가능한 돈이니까요.


 그럼 한 50억정도 찍으면 그때는 실생활에서 느껴볼 수 있는 감동이 될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현금 50억까지 가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한데 50억원을 쓴다고 해봤자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확실하게 좋은 곳으로 이사가는 순간 그 돈은 다 털리고 말아요. 지금 살고있는 곳이랑 비슷한 클래스인 부동산으로 이사갈거면 이사 자체를 갈 필요가 없고요. 


 결국 50억원이라고 해봐야 삶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사 비용'에 불과한 돈인 거죠. 이렇듯 돈이란 건 많아봤자, 실제 삶에 적용시키려 하면 의외로 적은 법이예요.


 

 6.그래서 주택과 그만두지 않을 직업이 있는 사람에겐 투자로 어지간히 벌어도 쓰는 재미란 게 없어요. 더 나은 삶으로 점프하는 것...확실하게 더 좋은 거주지로 떠나고 자신의 직업의 속성을 유지하며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 드는 돈이 너무 큰돈이거든요.


 그리고 직업을 계속 그만두지 않는 한, 자신이 그 직업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점점 바빠져요. 하루에 8시간 일하던 게 12시간으로 바뀌고, 일주일에 5일 일하던 게 6일로 바뀌니까요. 그러니까 여가활동에 돈을 쓸 시간은 없고, 사회적 등급을 업그레이드하기엔 쓸 돈이 없는 거죠.   



 7.그렇다면 투자하는 사람은 어디서 기쁨을 느껴야 할까? 아무래도 투자에서 느끼는 감동이란 건 쓰지 않을 돈이라고 마음먹었을 때 더 큰 법이예요. 2천만원으로 주식하다가 처음으로 5천만원을 달성했을 때의 감동, 처음으로 1억이 되는 날 주식계좌를 뚫어져라 보던 날의 감동, 드디어 앞자리가 5자를 찍던 날 친구들에게 슬쩍 자랑하던 순간...그리고 10억을 달성하던 순간 스크린샷으로 캡처해서 저장하던 날의 감동. 캡처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할까 하다가 더이상 인증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자제하는 마음을 먹던 순간들 등등 말이죠. 


 어쨌든 10억정도의 현금은 아무나 현금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는 돈이니까요. 실생활에 적용시키려 하면 유의미하게 쓸 수는 없는 돈이지만, 그냥 계좌에서 숫자로만 존재하면서 불어나는 걸 볼 때엔 엄청난 기쁨을 주는 돈인거죠.



 8.물론 위에 이사 어쩌고 한건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현금 100억이 되더라도 한강뷰 아파트에 70억 태우고 컨텐츠 회사 차려서 대표 명함 파진 않을 거니까요. 그냥 사는 곳에 계속 살면서 일하는 거 그대로 일하겠죠.


 

 9.전에도 썼지만 나처럼 검소한 사람은 돈이 많이 필요 없어요. 극단적으로 줄이면 한달에 60만원만 쓰면서 살 수도 있죠. 이번달만 해도 하루 쓰는돈이 2만원 넘지 않은 날이 꽤 많거든요. 이렇게 쓰면 월급을 받으면서 오히려 돈이 계속 모일 지경이죠.


 그래도 현금 10억~20억~30억이 있는 건 좋은 거란 말이죠. 라캉이 말했듯이 타인들이 욕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게 행복이니까요. 현금 100억이 있으면 더 좋을 거고요. 


 내가 보기에 사람은,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충분히 충족시킨 채로 살면 한없이 검소하게 살 수 있어요. 오히려 점점 더 검소해지죠. 한끼에 15000원짜리 먹던 식대를 만원짜리로 줄이고, 거기서 돈이 더 많아지면 한끼 8000원짜리 먹으면서 살게 돼요. 



 10.요즘 어린 놈들이 노는 사이트를 보면 꼭 이런 소리를 해요. '우리 할아버지는 돈이 많았는데 평생 아끼다가 써보지도 못하고 갔다. 난 그렇게 안살란다. 펑펑 쓸란다.' 라는 소리들 말이죠.


 한데 많은 돈을 펑펑 쓰다가 갔다면 그 사람은 행복했을까? 글쎄요. 돈을 대하는 재미엔 돈을 버는 재미, 쓰는 재미, 불리는 재미, 모으는 재미, 지키는 재미...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키는 재미'또한 분명한 돈의 재미예요. 평생 돈을 아끼면서 안 쓴 사람도 분명히 거기서 재미를 느꼈을걸요.


 이게 그렇거든요. 돈이 없을 나이에는 한푼 두푼 아끼는 게 스스로 짜증나서 확 써버릴 때가 있는데 돈이 좀 많아지면 그때는 커피도 8천원 짜리 먹던거 3천원짜리 먹고, 밥도 2만원짜리 먹던 거 8천원짜리 먹으면서 한푼 두푼 아끼는 것도 재미가 돼요. 택시도 쉽게 타던 거 오히려 더 안타게 되고요. 타인들이 욕망하는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데, 그걸 줄여버리는 것에서 재미를 얻는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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