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엠타운스
80년대 일본 피씨 업계는 엔이씨 샤프 후지츠 이 세 회사가 잡고 있었더랬는데, 실상은 엔이씨 혼자 다해먹고 샤프와 후지츠는 파이조각 하나 차지한 정도였다고 합니다.(거기에도 끼지 못한 쩌리들이 연합해서 엠에스엑스를 만들기도 했지만)
후지츠의 8비트 컴퓨터 FM 시리즈는 8비트 컴퓨터 중에서 그래픽으로는 끝판왕이었습니다. 256색, 4096색, 26만색, 1600만색을 차례로 찍었죠. 8비트 주제예요. 그럼 뭐합니까.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오로지 죽으나사나 엔이씨 PC-8801만 사랑했으니, 그 좋은 그래픽 성능 가지고도 PC-88의 '8색' 그래픽을 고대로 빼박은 이식판만 만날 나왔는 걸요.(PC88이 주도권을 잡기 전의 잠깐 동안은 FM-7이 더 잘나가긴 했었습니다만...)
어차피 8비트는 저물어가는 시장이었고, 후지츠는 안되는 8비트 미련 접고 16비트로 이전...하지 않고, 한단계 건너뛰어서 바로 32비트 컴퓨터를 홈컴퓨터 시장에 내버립니다. FM 타운스.
89년 연초에 처음 나온 에펨타운스는 인텔 386을 CPU로 잡고 SVGA급의 그래픽 기능을 장착한 컴퓨터였습니다. 거기다 CD롬 기본 장착. 아이볨쪽으로는 한참 있어야 나오게되는 멀티미뎌 피씨의 요구조건을 나왔던 당시에 이미 충족하고 있었죠.
이 CD롬 장착이란 게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CD롬을 기본장비로 택한 컴퓨터.
이게 참 희한한게 32비트급에선 필수장비인 하드 디스크는 옵션인데(심지어 키보드도 옵션이었음) CD롬은 기본입니다.부팅도 CD로 하고, 거의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CD로 나왔습니다. 그니까 CD로 부팅해서 마우스든 패드든 뭐 어떤 형태이든 입력 장비만 있으면 키보드, 하드 그까이 거 없어도 쓰는게 가능했던 물건.
먼저 나와있던 샤프의 X68과는 라이벌 관계 비슷한 걸 형성하기도 했지만 가는 길이 살짝 달랐던 것 같고요. 성능으로는 엔이씨의 PC-9801을 가볍게 발라버렸지만, 여전히... 시장 점유율이 높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SVGA급 그래픽과 32비트 시퓨라는 환경덕에 게임회사들에게는 주목을 받아 전용 게임도 꽤 나왔고 지혼자만 너무 튀는 그래픽 해상도였던 X68과 달리 PC-98용 게임을 그대로 옮기는 것도 어렵지 않아 어지간한 98용 게임은 다 이식되어서 나왔습니다. 32비트 파워를 살려 오락실 게임도 종종 이식이 되었고.(적어도 겉보기에는 꽤 그럴듯하게...) 그니까 게임 머신으로는 나쁘지 않았죠.
소프트웨어 공급 매체가 엄청나게 널널한 용량을 가진 CD였기 때문에 타운스 버전은 다른 기종들과는 다르게 버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뭐가 되었건 내기만 하면 'CD롬 버전'이 되는 거니까요,
남아도는 CD의 용량을 이용해서 동영상 기술의 테스트장이 되어 타운스용 게임도 동영상을 적극 활용한 경우가 많고, 컴퓨터 멀티미디어의 발전에서 꽤 큰 역할을 했죠. 동영상까지는 아니라도 에메랄드 드라곤 처럼 우월한 그래픽 기능을 살려 그림을 싹다 재작업하는 경우도 있었고, PCM을 이용해 음성을 추가한 경우도 있었고... 뭐 98 버전을 변화없이 그대로 때려박은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음악이 CD 오디오로 바뀌는 정도의 이득은 있었습니다. (그거라도 안해주면 수백메가 용량의 CD에 겨우 백분의 일만 채우는 건데 양심이 있는 회사라면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테고...) 가이낙스의 나디아 게임 같은건 다른 건 다 98 버전 그대로에 , 음악도 아닌 텍스트 대사를 전부 CD 오디오로 집어넣어서 플로피 열몇장짜리 게임을 시디 세장으로 만드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습니다(그 스피릿 그대로 윈도우에서 강철의 여친같은 걸 내기도.... 그야말로 용량낭비의 화신...)
글고 386에 SVGA급 그래픽이니까, 일제 컴퓨터중에 유일하게 서양 게임을 다이렉트로 이식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소수파라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걸 극복하기 위해 후지츠에서 직접 나서서 해외 명작 어쩌구하는 명목으로 이에이 오리진 시에라 루카스 같은 회사들을 꼬셔서 참여시켰고요.
그래서 울티마, 원숭이섬, 윙코맨더, 킹스퀘스트 이런 게임들이 타운스에 시디 버전으로 이식되었습니다. 일본 게임 회사에서는 만들지 않는 형태의 게임들이 많이 나와줘서 그런면에서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동시기 영미쪽에선 시디롬 보급률이 아~주 미미했기 때문에 서양회사들 입장에선 타운스는 시디롬이라는 신기술을 테스트및 연습해볼 수 있는 장이었죠.
그래서 원본에는 없던 각종 업그레이드가 들어갔습니다.
타운스용 울티마 6는 풀 음성지원이었고요(그것도 일본어 영어 양쪽다. 그중에 영어판 로드 브리티시 목소리를 로드 브리티시 본인이 연기하기도...) 윙코맨더는 CD 음악과 PCM 효과음 지원(MT-32 하나면 다 해결되는 거긴 하지만...) 룸은 256 컬러 그래픽에 CD 오디오 지원(일본어일 때와 영어일 때 다르게 편곡된 음악이 나옴) 등등...
후지츠 거쳐서 나온 모든 타운스 이식 게임들이 영어/일본어 동시지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게임 모으는 양덕들한테 타운스 이식판은 궁극의 버전으로 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여담으로 세계 최초의 CD롬 어드벤처 게임이 타운스용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엔이씨가 SVGA급 그래픽을 장착한 PC-9821을 내고 타기종에도 CD롬이 조금씩 보급되면서부터는 타운스만의 독자성이 살짝 희석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세력을 유지합니다.
그러는 중에 도스브이가 득세하면서 일본에서도 아이볨계열이 시장을 차지하기 시작하게 되더니 윈도우95가 나오면서는 걍 일본도 아이볨피씨 호환기종의 세력권이 되버립니다. 윈도우가 하드웨어 위에 군림하면서 소프트웨어 호환을 운영체제 차원에서 잡아버리니 각각의 고유기종들의 차이가 의미가 없게되서요. 처음부터 아이볨 호환기종으로 통일되어 있었던 일본외 지역에서는 체감 못한 일이지만 독자 하드웨어들이 경합하고 있던 일본에선 윈도우95가 하드웨어 대통합을 이뤄버렸죠.
소프트웨어는 윈도우상에서 다 호환되는데 일개회사에서 내는 독자기종이 전세계 모든 업체에서 생산하는 아이볨 호환기종을 이길 수가 없으니(특히 가격면에서) 결국 97년에 타운스는 gg쳤습니다. 얼마 안가 엔이씨도 gg쳤죠. 어찌보면 엠에스엑스 발표 당시에 외쳤던 소프트웨어 통합 운운이 윈도우를 통해서 실현된 거...
대우한테 배웠는지? 키보드 떼고 게임기로 개조한 '마티'를 내기도 했습니다. 마티는 티비 달아서 써야하니 저해상도밖에 못쓰는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광고모델이 미야자와 리에였습니다.
http://www.djuna.kr/xe/board/14288446
후지츠라는 회사 이름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었어요
富士通 - Fujitsu - fuji通 - 휴지통
FM-TOWNS판 아케이드 이식작들 몇가지는 음악이 CD-DA트랙이어서 확실히 차별화가 되긴 했습니다. '트윈 코브라' 라던가 '갤럭시 포스'라던가 몇 가지는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선 평가가 높긴 합니다.
그리고 TOWNS는 컁컁바니 시리즈 같은 소위 일본 야겜을 당시에 꽤 고사양으로 돌리는 기기이기도 했던지라… 8801 8색이 아니라 9801 기반의 16색 이식작들이 제법 있었다고 기억하고요.
TOWNS판 에메랄드 드래곤의 오프닝은 키무라 아키히로의 채색 원화를 스캔해서 써먹었는데 사실 그 데이타는 MSX2+판에서도 써먹긴 했지요. 어느 기종이던 결국 실제 'in게임' 플레이 부분에선 원화 스캔의 자연화 그림은 안 나왔던가…
사실 TOWNS의 내장 사운드칩은 메가드라이브와 같은 YM-2612 OPN2였습니다. 그럼에도 출력부가 좀더 좋았는지 테이프로 녹음해보면 잡음투성이인 메가드라이브보단 내장음원이 좀 깨끗하게 나왔다고 기억합니다.
FM-TOWNS 마티는 내장된 RAM이 적었고 확장도 불가능해서 안되는 게임이 제법 있었는데, 그래도 나름 쏠쏠하긴 했어요. 마티 실기는 친구가 갖고 있어서 제법 돌려보긴 했는데 결국 아케이드 슈팅 게임들 이식작이나 몇가지만 남았던 기억도…
에메랄드 드래곤은 친구가 구입한 PC 엔진 버전을 옆에서 구경을 좀 해봤습지요. 그 놈도 웃겼던 게 그냥 게임 음악을 고퀄로 듣고 싶다고 PC 엔진 기기도 없이 PC 엔진 게임 CD들을 구입해서 음원만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고 다니고 그랬어요. ㅋㅋ YS4라든가, 에메랄드 드래곤이라든가... 아마 그냥 음악 CDP에 넣고 틀면 처음엔 음성으로 '이건 피씨 엔진용 게임 시디라서 안 될걸?'이란 안내가 나오고, 다음 트랙이 게임 데이터인데 그 다음 트랙부턴 그냥 게임 음악, 음성이 트랙별로 흘러나오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다 나중엔 돈 모아서 정말 PC 엔진 본체를 중고로 사오더라구요. 의지의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