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잡담

부두교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몇가지 요소로 구성이 되어있고, 사람이 죽으면 그중 일부는 신이 회수해 가고, 일부는 땅에 흩어진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뭔가 동양의 혼백개념과 비슷한 것도 같은데...

이때 신이 회수하가는 부분은 어쩔 수가 없지만, 땅으로 흩어지는 부분을 붙잡아서 다시 몸속에 넣을수가 있답니다.
그렇게 하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회수되는 부분이 인간의 영혼 중에서도 핵심 파트라서, 이렇게 되살아난 사람은 그저 몸이 살아 움직이기만 할 뿐, 산 사람이라고는 볼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본인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사람이 시키는대로만 해야합니다.

옛날에 책에서 본 건데, 뭐 이런 류의 이야기가 실린 책들이 대개 썩 공신력이 높다고는 볼수 없으니 저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제가 알고 있는 좀비의 개념은 대충 저렇습니다.

좀비는 아이티에서 실제로 존재했는데,
온전한 사람으로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산 거라고 볼수도 없는 상태로 사람을 되살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좀비가 된다는 건 형벌 혹은 저주였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건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 더이상 책임 추궁은 하지 않는게 일반상식이지만 좀비가 되면 죽어도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노예가 되어 노동을 해야하니 어찌보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죠.

실상은, 좀비는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 또는 꼴보기 싫은 인간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사기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합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좀비는 독을 써서 인간을 인사불성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일 거라고 하죠.

사람을 마비시켜 죽은것처럼 꾸며 장례를 치룬 다음에 무덤에서 다시 꺼내는 쇼를 한거라고...

드물게는 좀비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도 있다는 것도 같고요.


어쨌거나 좀비가 아이티에서 실제로 존재했던건 사실이라, 아이티에는 좀비의 공포도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좀비가 사람을 해칠까 무서워한게 아니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죽은 가족이나 친지를 좀비로 만들까봐 무서워했답니다.

뭐 과거의 아이티인들이야 정말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을 수 있지만... 현대인들 뿐 아니라, 1920년대에 좀비를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한 첫 작품의 작가도 좀비가 실제로 죽은 사람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30년대에 나온 첫번째 좀비 영화 화이트 좀비 역시 그런 의구심을 품고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이 최초의 작품은 그 후에 만들어진 온갖 미신과 오컬트 SF 등이 섞여나온 다른 좀비영화들 보다 오히려 사실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좀비의 진정한 공포는 좀비라는 괴물 그자체가 아니라 좀비를 만들어낸 인간에게서 나오는 거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어슬렁거리며 다닌다는게 무섭긴 하지만, 좀비는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사람을 해칠 수도 없죠. 그러니 좀비로 사람 겁주는 데는 한계가 있고, 좀비에게 나쁜 짓을 시키는 인간, 좀비를 만들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해치는 인간들이 좀비영화의 진짜 악역이고 공포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부두교가 소재인 영화에서 좀비는 실제로는 피해자였죠.
대충 60년대까지 나온 유명한 좀비 영화들은 대개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꼭 부두교는 아니더라도) 저주에 걸려 어딘가에 붙박이가 되어버린 좀비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해적들이 좀비가 되어서 수백년간 보물을 지키면서 접근하는 인간은 다 죽여버린다는 식의... 이런 경우는 더 능동적으로 인간을 해치는 존재이니 좀 더 무서울 수도 있지만, 근처에 안가면 되죠. 이런 좀비들은 대부분 어지간한 사람은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가지도 못할 곳에 있어서...ㅎㅎ

SF 영화에서도 좀비의 그런 속성을 이용했습니다. 외계인, 또는 미지의 존재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해서 좀비같은 상태가 된 인간들이 나오는 영화들도 있었고, 또는 외계인이 죽은 시체를 되살려 좀비를 만드는 것도 있었고. 이런경우 보통 목적이 지구 침략, 인간 말살이기 때문에 좀비가 사람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죠. 그렇게 점점 좀비는 피해자에서 가해자 역할로 전환되어간 것 같습니다.

로메로의 좀비가 나오면서 부터 좀비는 진짜로 무서운 괴물이 됩니다. 얘들도 자기 의지가 없는건 마찬가지였지만 의지가 아닌 본능으로 사람을 해치고, 그 해치는 방법이 부두교 좀비와는 차원이 다르죠. 부두교 좀비는 기껏해야 목이나 조르지만 로메로 좀비는 목을 뜯어먹어 버리니...

로메로 좀비는 원래는 좀비와 아무 관련이 없는 별개의 괴물이었지만, 그간 이런저런 영화속에서 나온 좀비, 혹은 좀비에 가까운 괴물화된 인간들의 모습을 봐왔던 관객들은 로메로의 식인괴물도 좀비로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다들 로메로의 괴물을 좀비로 간주하게 되자 로메로 본인도 그걸 받아들였죠.

로메로 좀비는 엄청 유행하게 됩니다.
시대는 60년대말, 영화계에서 그때까지 존재하던 여러가지 제약이 다 깨지고 표현의 자유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그전까지는 금시기되던 갖가지 '고상하지 못한' 상상력들이 제약없이 막 풀립니다. 그중에서도 극을 달린게 포르노와 고어.
그런 흐름속에 식인 괴물이 사람을 뜯어먹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로메로의 영화는 금기시되는 것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의 욕망에 딱 맞는 소재였죠. 그렇게 2,30년 동안 로메로의 괴물을 모방한 아류작들이 양산되게 되고, 그 괴물이 좀비라는 이름을 가져가게 되면서 오리지날 부두교 좀비가 사람들 머리속에서 지워져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좀비라고 하면 사람들이 바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떠올리게된 거죠.

부두교 좀비는 애초부터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보니 사람을 잡아먹고 무지막지한 전염성까지 가진(로메로는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로메로 좀비의 임팩트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죠.(레서 판다가 귀여움에 밀려 자이언트 판다에게 판다라는 이름을 빼앗겨버린 경우랑 비슷하달까... 레서 판다도 겁나게 귀여운데...) 뭐 강시도 원래 산서간시전설에 나오는 강시는 괴물로서는 임팩트가 좀 부족해서 현대의 영화에서는 흡혈과 전염이라는 속성이 덧붙여지게 되죠.

그래도 한계는 있었던게 식인 좀비는 오랫동안 서브컬쳐에 머물렀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메인스트림쪽은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더라도 어느정도는 고상한 척 해야했기 때문에 식인 좀비는 메인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과격했죠. 포르노도 고어도, 너무 극단적인건 메인스트림에 끼지 못했으니까.

영화계의 그런 흐름은 타란티노가 등장하면서 깨지기 시작합니다. 서브컬쳐의 고상하지 못한 극단적 성향으로 똘똘뭉친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고상하다는 영화제에서 1등도 먹고 미국시장 흥행에도 성공하고 그랬으니까요. 그 이후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유혈레벨이 급상승했습니다. 지금은 70년대라면 X등급이 확실할 수위의 표현이 별 문제없이 R 먹습니다.

게임계에서는 로메로 팬들이 만든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가 블록버스터 흥행을 했고 그밖에 장르 가리지 않고 수많은 게임들이 좀비를 소재로 써먹었죠.

소련이 망하고 2차대전은 너무 오래되서 약발이 떨어진 것이 좀비 유행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얼마든지 때려잡아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던 잡몹 단골이던 소련군, 독일군 대신 좀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 거죠. 거기다 좀비는 심의 걱정 없이 마구마구 신체훼손을 시킬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고...
만화계에도 코믹스 코드가 무력화되면서 표현수위가 강력한 좀비 만화가 나와 인기를 끌게 되고, 그렇게 스크린 바깥쪽에서도 점점 좀비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2000년대가 되면 28일 후, 새벽의 저주 같은 영화들이 나와 좀비영화도 블록버스터가 될 수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라는 대스타를 내세운 진짜 블록버스터, 월드워 Z가 나와 대성공을 거둡니다. 월드워 Z는 블록버스터 답게 이전까지 좀비영화의 극단적인 부분을 걷어낸 순화된 버전으로,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좀비영화가 됩니다.
그리고 동시기에 좀비 로맨스 영화 웜 바디스도 나오죠. 여/남친과 데이트무비로 볼 수 있는 좀비영화
그렇게 좀비는 확실하게 돈벌이가 된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사방천지에서 좀비물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월드워 Z는 좀비가 반드시 극단적인 폭력묘사를 동반하지 않아도 팔린다는 걸 증명해 더 많은 좀비물이 만들어지도록 촉진했고, 월드워 Z가 떼돈을 긁어모으는 모습은 좀비물의 불모지였던 한국까지 자극해 한국산 좀비물이 우행하게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해서 좀비는 이제 완전히 메인스트림에 정착해 누구에게나 친숙해지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좀비영화가 (로메로는 전염이 아니라고 우겼지만) 전염병의 메타포로 사회에 공헌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웃브레이크 판데믹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해보고 경각심을 갖는 거죠. 코로나 시국에 저는 어디서 치고들어올지 모르는 좀비를 떠올리며 방역에 더욱 신경을 썼더랬습니다ㅎㅎ

    • 태어나서 처음 접한 좀비는 로메로 버전도 아니고 그 아류에 가까운 '바탈리언' 좀비였어요. 분명히 코미디 영화인데 그 시절엔 그냥 엄청 무서운 공포 영화라고 생각하며 봤죠. 이렇게 잔인하고 끔찍한데 코미디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순수한 그 시절, 그립읍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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