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에스엑스터보알
지금 사람들이 쓰는 컴퓨터는 80년대 초에 아이볨에서 만든 16비트 컴퓨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장 40년이 넘게 같은 계보의 컴퓨터가 쭉 쓰이고 있는 건데 이게 무척이나 특이한 경우죠. 신형이 나오면 입 싹 씻고는 그전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게 그바닥의 생리인데. 기술적인 건 잘은 몰라도 새로나온 기술과 그전의 것과의 호환성을 유지한다는게 무지 어려운가봐요. 다른 기종들은 다 실패했죠. 지금이야 운영체제 차원에서 강제로 호환성을 유지시킨다든가 아예 에뮬을 돌려버린다든가 하는 꼼수도 있지만 옛날엔 그런것도 불가능했으니까...
아이볨은 그래도 16비트에서 시작했지만, 8비트에서 16비트로 전환을 꾀했던 것들은 다 망했습니다.
애플IIGS, PC-88VA, 글고 MSX TurboR.
8비트에서 쌓아놓은 그 많은 자산들을 계속 이어가보자는 시도였지만, 하나같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다른 16비트 기종들과 경쟁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던 물건들입니다. 그중 GS나 VA는 같은 소속사에서 밀어주던 다른 기종이 있어서(매킨토시, PC-9801) 만든 회사에서조차 왕따를 당했던(지금이었다면 국감에 출석해서 증언이라도 했을테지만...) 처량한 신세였지만 터보알은 그냥 기계 자체가 애매해서 망했죠.
90년입니다. 갑자기 16비트 엠에스엑스를 내놓겠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파나소닉에서 시제품을 내고 이름은 터보알.
90년이면 8비트의 기세는 기울어 간다싶은 때라서 엠에스엑스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16비트 전환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그래서 엠에스엑스 주관사인 아스키에서 이런저런 16비트 씨퓨를 물색하던 중 걍 자기들이 씨퓨룰 만들어버렸다는 겁니다. 어째 쫌 그렇죠. 아스키가 무슨 인텔 모토롤라도 아니고, 조이스틱으로 유명한 곳(아스키가 정해놓은 조이스틱 형태가 지금까지도 쓰이죠)인데 뜬금없이 씨퓨를 만들었다니. 거기다 그 씨퓨는 아스키 직원 한사람이 거의 독자개발한 거였다고 하네요.(뭐 그양반이 엄청난 천재라 없던걸 뚝딱 만들어낸 건 아니고 다른 계열 씨퓨를 개조한 거) 어째 더 불안해지죠.
R800이라는 씨퓨인데, 엠에스엑스의 Z80과는 명령어 호환성이 있고, 클럭 속도는 두배. 그치만 16비트인 데다 RISC계열이라 처리속도는 8배 가까이 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희망사항이죠. 속도가 기존의 몇배니 하고 광고하는 거 실제로 돌려보면 그거보다 한참 떨어지게 나오잖아요. USB 메모리 속도는 스펙 속도의 반도 안나오던데...
글구 제트80하고 완벽호환도 아니었어요. 기준에 맞는 명령어만 사용가능하다던가... 뭐 그래서 기존의 엠에스엑스용 게임이 '거의 다' 안돌아갔다고 합니다. 물론 앞으로 나올 신작이라면 기존 엠에스엑스와 터보알에서 동시에 돌아가도록 만드는 건 가능하겠죠.
하지만 아스키는 일백푸로 완벽 호한을 이룩해냅니다. 그 비결은, 걍 알800 옆에다 제트80을 같이 달았답니다.
제트80이 워낙에 오래된 물건인데다 어마무시한 베스트셀러였으니 대량생산으로 가격도 떨어져 당시에 한개에 100엔인가 그랬답니다. 그래서 호환성 문제 처리하느라 고민하느니 그냥 돈도 얼마 안하는 거 같이 달아버리자 그랬다고 해요. 그래서 제트80을 선택해서 부팅하면 걍 8비트 엠에스엑스가 되는 거였죠.
게임을 패치해서 알800에서 바로 돌아가도록 만드는게 가능은 했지만 그래도 완벽호환은 안되는데다 속도문제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램은 256KB, 8비트의 한계인 64KB 보다는 한참 많지만 16비트 컴터 치고는 어라...? 싶은 용량이죠. 그시기에 아이볨 계열은 울나라에서도 기본이 640KB였습니다. 하지만 뭐 엠에스엑스가 준 게임기였으니까, 게임기치고는 억수로 많은 편...ㅎㅎ.
근데 문제가... 바뀐 게 씨퓨뿐이었습니다.
걍 기존의 엠에스엑스2뿌라스에다가 옵션이었던 거 몇개를 기본으로 편입시키고 씨퓨만 16비트 짜리 하나 더 달아놓은 거였어요.
이름이 터보알인 것도, 바뀐게 씨퓨뿐이니 이걸 엠에스엑스3이라고 하긴 뭔가 찔려서...였답니다.
원래는 그래픽 칩도 완전히 새걸로 바꿔 달 생각이었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3이라고 당당하게 발표했을텐데, 그래픽칩셋이 생각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우선 씨퓨만 바꿔서 먼저 냈다는 겁니다.
이게 또 참 기구해요. 엠에스엑스 아키텍쳐는 1983년에 발표되었는데, 90년이 되기까지 기본적인 부분은 거의 바뀐게 없는채로 그래픽만 업그레이드시켜왔거든요. 2, 2+.
90년에도 4MHz도 안되는 씨퓨 속도를 그대로 유지해왔어요. 그래서 그 뛰어난 그래픽 기능을 마음껏 쓰기엔 부담이 좀 있었죠.
그랬다가 이번에는 그래픽은 그대로 두고 씨퓨만 바꾼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16비트 씨퓨에 8비트 그래픽이 붙어있으니 이번엔 그래픽 속도가 느려서 씨퓨의 발목을 잡아버린 겁니다. 병목현상.
그래서 그 잘 나온다는 그 속도를 제대로 살리질 못하고 빌빌거렸다는...
여담이지만, 이거 제가 제대로 경험해본 바 있습니다. 전 엠에스엑스 쓰다가 16비트 건너뛰고 386(금성 거)을 샀었는데, 거기 딸린 VGA가 8비트였어요. 그래서 윙코맨더 같은 거 해보면 386인 주제에 빌빌거렸어요. 386 가진 다른집에서 돌려보니 날아다니던데... 그래서 대기업 컴터는 절대 사선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16비트 컴퓨터를 샀으면 기존에 쓰던 프로그램이 더 빠릿하게 돌아간다든가, 그전까지는 8비트라서 못하던 걸 할수있게 된다든가 뭐 그런 득보는 게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이건 뭐 기존 프로그램은 제트80으로 그대로 돌리는 거니까 딱히 나아질 것도 없고, 그래픽은 그대로니 눈에 확 띄게 뭐 새롭게 보이는 것도 없고, 향상된 기능을 쓰려면 그걸 쓰는 새로운 게임이 나와줘야할텐데... 터보알의 고유기능을 쓰는 소프트웨어는 몇년동안 나온거 다합해서 10개도 안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정해진 결과였을지도...
엠에스엑스는 처음 시작할 때는 두자릿수 업체가 참여했었다고 하는데, 2에서 파나소닉과 소니가 주도권을 잡게되면서 부터는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뿌라스가 발표되었을 때는 그걸 생산한 업체는 파나소닉 소니 산요 겨우 세개뿐이었습니다.
뿌라스를 사봐야 그냥 엠에스엑스를 가지고 있는 거에 비해 딱히 득될 것도 없었고, 뿌라스 고유 기능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거의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터보알이 나왔을 때는 소니도 떠나고 오직 파나소닉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뭐 이게 흥할 리가...
뭐 16비트란 걸 이용해서 압도적인 성능차라도 보여줬으면 사람들 관심이라도 끌었을텐데 딱히 그럴 일도 없었고... 다른 16비트 기종들과는 애초에 비벼볼 처지도 못되었고...
그래도 한 2,3년 개겨보았던 파나소닉은 93년에 GG치고는 준 게임기 엠에스엑스 대신 진짜 게임기인 3DO를 생산합니다.(근데 이 3DO가 초기의 엠에스엑스와 비슷한 개념을 들고나온 물건이었다는...) 그리고 망했습니다.
한편 터보알을 거부했던 소니는 혼자 PS를 개발해서 터보알이 망한 다음 해에 발표, 이쪽은 흥했죠.
뭐 개발 당시에 생각하고 있던 그래픽 칩이 스펙상으로는 정말 성능이 좋은 넘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게 일찍 완성되어서 제대로 엠에스엑스3라고 나왔으면 적어도 사람들 입소문은 확실하게 탔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93년에 GG칠 때까지도 터보알에 별다른 그래픽 업그레이드는 없었습니다.
대우에서 뿌라스도 안만들었던 우리나라에선 뭐 터보알은 완전 딴나라 이야기였는데다... 만약에 완성된 형태의 엠에스엑스3로 국내에 나왔더라고 하더라도, 교육용 피씨는 아이볨으로 지정되었을 테니까 어차피 망했겠죠ㅎㅎ
수년 뒤에 어디서 사진만 봤던 환상의 기종이로군요. ㅋㅋㅋ 그래도 생긴 건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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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갬성 때문일까요. 지금 봐도 예쁩니다. 하하.
파나소닉제 msx가 다 저 비슷한 모양이었던 것 같아요. 16비트인데 키보드 일체형인건 좀 없어보이는 것 같기도... 엑스2가 외형은 더 16비트 같았던 것 같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