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바낭] 쉬운데 어렵네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잡담입니다

 - 작년 영화입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45분. 스포일러는 없어요. 애초에 스토리랄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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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보면 오른쪽의 회색 옷 여자분이 좀 호러로 찍혔습니다. ㄷㄷㄷ)



 - 그 시절 아우슈비츠입니다. 정확히는 아우슈비츠와 담장 하나 두고 붙어 있는 소장 관사죠.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루돌프 회스라는 성실한 나치 아저씨가 소장으로 등장해요. 관사에서 아내 헤트비히와 다섯 자식들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네요. 처음엔 거의 폐허 혹은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이 장소를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가꾸어서 누가 봐도 부러울만한 크고 멋지고 폼나고 살기 좋은 꿈의 집으로 만들어낸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구요. 담장 너머에선 계속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상황들'이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은 남들 보기 부러울 법한 넉넉하고 폼나고 오붓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게 거의 대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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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목한 가정의 행복한 피크닉 상황입니다만 저 강에는 슬픈 전설이 있...)



 - 시국이 시국인데 이런 소재 영화가 그렇게 땡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워낙 화제작이었던 데다가 '추락의 해부'로 인상 깊게 접했던 산드라 휠러도 나오고 하니 티빙에 올라오는대로 바로 봤습니다. 근데... '언더 더 스킨'을 만든 그 분의 영화인 것 치고는 의외로(?) 따라가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물론 장면 장면들의 의미를 다 이해했다든가 그런 패기 넘치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구요. ㅋㅋㅋ 그냥 멋 모르고 틀어 놓고서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무리 없이 몰입해서 치를 떨며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뭐 그런 얘기죠. '언더 더 스킨'도 보다 보면 적응 돼서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영화였지만 이 쪽이 조금 더 허들이 낮다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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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같이 예쁜 집에 행복한 아이들, (초반엔)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 부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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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 너머가 심상치 않은 집이죠. 게다가 저 특제 비료들도... 음...;)



 - 다들 수없이 이야기 했듯이 이 영화의 가장 튀는 부분은 아우슈비츠가 거의 나오지 않는 아우슈비츠 이야기라는 겁니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집 담장 너머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배경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냥 어리둥절하겠죠.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거의 없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 까까머리 아저씨와 속물스런 욕심 & 허영쟁이 아줌마가 애들 여럿 데리고 살면서 부부 싸움도 하고 화해도 하고 그러는 이야기인데 문득 문득 괴상하게 어두컴컴한 이미지와 심상찮은 고함, 비명 소리들이 슬쩍슬쩍 끼어들다 끝나는 영화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가 신기한 점도 그겁니다. 컨셉만 보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일 것 같은데, 실제로도 그런 면이 강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그게 그냥 자연스럽게 먹혀요. 그리고 전 이런 게 좋거든요. 그냥 봐도 좋고 알고 보면 더 좋은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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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말도 잘 듣고 집에서도 열심히 일 하는 성실한 남편 겸 직장인! 인데 헤어 스타일과 복장이 문제(?)입니다.)



 - 주인공 부부는 그냥 공범... 이라기엔 각자 역할이 조금 다르죠. 루돌프(자꾸만 망한 드립을 치고 싶어지는 이름!!)는 사실 담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 기획하고 지시하는 입장이잖아요? 영화 형식상 직접 보여지지 않을 뿐이지 집에서 업무 보는 모습들도 여러 번 나오니까 이 놈은 우리가 그동안 홀로코스트 영화들에서 자주 보던 그 악당 캐릭터가 맞습니다. 반면에 헤트비히는 '남편이 그러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가책 없이 외면하고 방관하면서 그 이익을 챙기는 챙기는 인물이에요. 그러니까 법정으로 가서 죄값을 따진다면 남편만큼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큰 임팩트를 남기는 게 이 헤트비히 쪽이라는 게 영화의 성격이나 의도를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다 루돌프만큼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나쁜 짓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좀 어렵죠. 적어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 자신의 생각은 그럴 테니 이 쪽은 아무리 나쁘게 묘사 되어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큰 임팩트가 없어요. 하지만 헤트비히라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남편은 그냥 위에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한 군인일 뿐이야" 라고 간단히 정신 승리하고 적당히 상황을 외면하면서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이득을 공유하는 정도... 라면 자신이 나름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인지 영화는 헤트비히 쪽에 더 많은, 의미심장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들을 만들어 줍니다. 자기가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 불린다며 해맑게 깔깔 웃는 모습이라든가. 전출 명령을 받은 남편에게 "당신만 가! 우리가 여길 어떻게 일궈냈는데!!" 라고 쏘아 붙이며 이 끔찍한 곳을 일생 동안 꿈 꿔 온 집이라고 호소하는 모습이라든가. 꽃과 과일 나무로 담장을 덮어서 안 보이게 만들 거라며 행복한 스윗 홈 계획을 자랑하는 모습이라든가... 결정적으로 아침 밥을 먹으면서 하녀에게 "우리 남편이 맘만 먹으면 너 같은 건 바로..." 라고 쏘아 붙이는 장면 같은 게 있겠죠. 어쨌든 무엇 하나 자신이 직접적으로 저지르는 건 없거든요. 그저 '눈 감고 외면'만 하면 이렇게 꿈 같은 인생이 펼쳐지는 거니까. 굉장히 현실감 있는 악인이 되고.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과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도 돌이켜보게 만들고. 뭐 그런 캐릭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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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요 엄마에게 집 자랑하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죠.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나 싶으면서 동시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더 소름 끼치는.)



 - 워낙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한 감독님답게 미장센이나 연출도 독특한 편이었는데요. 주인공 가족의 일상을 영화적, 극적인 연출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서 집 세트 곳곳에 카메라를 고정해 두고 찍었다고 그러죠. 그래서 보면 장면들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줌 인, 아웃 같은 게 없고 구도도 거의 좌우 대칭에 인물을 센터에 두고 스위치 온 고정되어 있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극에 몰입하기보단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이 보게 만드는 영화였고. 그게 영화의 메시지와 참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던 듯 합니다. 사실 '추락의 해부'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산드라 휠러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만. ㅋㅋㅋ


 그리고 뭣보다 독특했던 건 중간중간 삽입되는 흑백. 정확히 말하면 흑백톤에 색상 반전(?) 느낌의 장면들이었는데요. 유독 수용자들에게 줄 음식을 숨겨두는 여자애가 나올 때마다 이런 장면들이 나왔던 걸 보면 영화 속 거의 유일한 선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캐릭터를 돋보이게 해주려는 연출이 아니었나 싶었구요. 주인공 가족들이 나오는 장면들의 화사하고 선명한 화면과 정반대 느낌으로 대비가 되기도 하고. 또 이게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거라면서요. 그러니 말 그대로 '온기'를 표현하려고 한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서 봤습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홀로 밝게 빛나는 따스함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음악과 음향이 참... ㅋㅋㅋ 시작을 장식하는 그 음악의 임팩트. 낮 장면이면 거의 여지 없이 들려오는 담장 너머의 소리들.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울려 퍼지는 그 신경 긁는 음악과 효과음들. 모두가 영화와 딱 맞아떨어지며 소름 끼치게 하더라구요. 사실 이 글 적으면서 영화를 틀어 놓고 소리만 듣고 있는데 이렇게 하니 '아 이 장면에서 이런 소리들이 나고 있었구나'라는 게 더 잘 느껴져서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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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왜 이런 상황, 이런 장면을 이렇게 길게 보여주지? 했는데 곧바로 친절한 설명이 따라 나오는 상냥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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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애니메이션인가? 했어요. 이 또한 참으로 인상 깊은 장면 연출이었구요.)



 - 또 쓸 데 없이 길게 적어 버렸지만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처음에 이미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타일리스트에 괴팍한 스타일 영화 만들기로 유명한 감독님이 만든 국제적 찬사를 받은 걸작. 이라는 거 신경 끄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봐도 충분히 큰 임팩트를 남겨주는 작품이에요. 그러니 부담 없이 한 번 틀어 보시라... 는 게 핵심이구요.

 다 보고 나서 역사적 디테일들을 찾아 보면 '아 그 장면이 그런 의미였구나'라면서 또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여기에 장면 장면 세세하게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글들 찾아 읽으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냥 봐도 충분히 훌륭하고 임팩트 강한 영화라는 거.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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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로, 아래로, 어둠 속으로.)

    • 잘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요 며칠간 듀게가 글 올리기 어려웠지만... 로이배티님은 확실히 자정 이후, '오늘 첫글은 나다' 같은 게 있으신 걸까요..ㅎㅎ.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전작인 언더 더 스킨은 개인적으로 비주얼이 보기가 꺼려져서 아직까지만 안봤으나, 일부장면만 나중에 봤더니 한씬도 정말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엔딩무렵 헛구역질과(피를 토하는 줄 알았지만 건강은 이상이 없었고), 그후 열쇠구멍을 통해 나오는 현재(과거의 미래), 그리고 엔딩까지 정말 대단했습니다. 박평식이 오랜만에 별 4.5개를 매긴 까닭도 있겠지만 그 호평들덕에 수입배급사가 수입영화로서도 높은 손익분기 16만도 넘었다는...?(A24가 워낙 깐깐해서 수출시 고가를 책정하고 가격협상도 안한다고 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 그냥 제 개인 일과 특성상 자정이 넘어야 글을 올릴 수 있게 되는데 듀게에 워낙 글이 적게 올라오다 보니 그게 '오늘의 첫글'이 되나 봅니다. ㅋㅋ 가능하면 자정 전에 적어 올리고 일찍 자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성공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러한 사연입니다. ㅋㅋㅋ




        네 영화가 그냥 쭉 그렇게 흘러가다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무심한 척 툭 튀어나오는 그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죠. 말씀하신 구역질도 그렇구요. 토하고 싶어도 이미 토해낼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뭐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A24 영화들 특성상 외국에선 그렇게 흥행하기 힘든 영화들이 대부분인데 어차피 크게 흥행 못할 거 수출 가격을 높게 매기는 걸까요. 저야 업계는 전혀 모르지만 나름 회사의 생존 스킬이겠구나... 싶습니다.

    • 아카데미 국제영화상뿐만 아니라 [오펜하이머]를 제치고 음향상도 받았지요. 음향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하지요.

      보면서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탄 [사울의 아들]이 종종 생각나곤 했습니다. 그 지옥의 한가운데에 박힌 피해자 쪽 "존 오브 인터레스트" 에 내내 올인하면서 음향으로 그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감독 라즐로 네메스는 글레이저의 오스카 수상 연살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답니다. 
    • 이동진 평론가의 극찬을 믿고(당시는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이라면 거의 다 봤었죠,,. 지금은 반대는 아니더라도 신뢰를 많이 안 하는 편입니다. ㅋㅋ ) '사울의 아들'을 봤었죠. 사울의 아들을 보고 별 감흥을 못 느꼈습니다.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재연도 아닌 훔쳐 보여주기 식으로 힌트만 주니까 뭐지 싶더라구요. 사울의 아들 보고 나서 이동진 욕했습니다. ㅋㅋ 주제가 홀로코스트면.. 영화에 '까방권' 같은게 전 세계적으로 평론가들한테 보이나봐요.(그런 주제들이 꽤 많죠). 위의 영화도 그럴 것 같아서..  약 두 시간 동안, 우리 인류의 죄악/죄악을 접하는 인간 부류의 단면을 고통스럽게, 별로 영화적 재미가 없는(?) 영화를 돈 주고 보기가 싫어졌어요. 주제는 되씹고 새겨야 하지만요 저렇게 실체를 안 보여주는 영화적 셋팅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맛집에 와서 냄새만 맡는격?) 이상 무식한 소견이었습니다.  게시판 살아났네요 ^^

      • 듀나님이 개봉 당시 썼던 칼럼입니다.  http://2014vote.hani.co.kr/arti/PRINT/731697.html
        • 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이런 일이 있었다, 비극을 잊지 말자, 라는 내용은 아니고 말씀대로 헤트비히가 나타내는, 우리 각자의 현재 모습을 고민하게 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전에 본 홀로코스트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와 구조인데도 심사숙고해서 만든 영화였고 보는 사람도 생각이 많게 만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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