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바낭] 솔직히 어렵습니다만, 크로넨버그는 크로넨버그. '미래의 범죄들' 잡담입니다
- 2022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48분. 스포일러는 얼른 자러 가야 해서 없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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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마음으로부터' 라는 카피가 재밌습니다.)
- 바닷가에 홀로 앉아 노는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왠지 모르게 가까운 곳에 거대한 배 한 척이 난파되어 기울어져 있지만 그냥 방치된 듯 하구요. 엄마가 나타나 "얘야~ 아무 거나 집어 먹지 말고~~" 라는 익숙한(?) 당부를 하는데... 뭔가 표정이 지나치게 진지하네요. 잠시 후... 는 생략하겠습니다. 되게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안 적는 게 나중에 볼 분들에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암튼 근미래입니다. 환경 오염 어택! 을 아주 쎄게 두들겨 맞은 인류는 여러모로 정체되고 늪 속으로 가라 앉아가는 형국... 인 듯 하구요. 그 와중에 다들 몸이 망가져서 통증이란 걸 못 느끼게 된다든가. 사방에서 각종 변이, 기형 같은 게 나타난다든가 그런 상황을 맞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텐서 아저씨는 몸 속에 자꾸만 정체불명 의미불명의 장기가 돋아나는 희한한 증상을 체험 중인데요. 위기를 기회로! 비스무리한 발상으로 의사 출신 업무 겸 인생 파트너 카프리스의 도움을 받아 행위 예술을 하며 인기를 끕니다. 무슨 예술이냐구요? 텐서의 몸 속에 새로 돋아난 그 장기에 카프리스가 내시경 비슷한 도구로 문신을 새기고, 관객들을 불러 모은 후에 라이브 장기 적출 쇼(...)를 벌이는 겁니다. 하하.
그런데 정부에서 새로 출범한다는 무슨 장기 등록 기관(?)이라는 곳을 방문했던 텐서는 그 곳 담당자... 를 빙자한 자신의 열성팬 콤비를 만나구요. 거기에 불법 해부 행위를 감시한다는 경찰 캐릭터가 등장해서 또 얽히고. 거기에 무언가를 열렬히 추종하는 의미 불명 정체 불명의 집단이 등장해서 텐서에게 접근하는데... 음... 뭐 대충 이렇게 밖에 설명을 못 하겠어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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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성 좋고 가리는 게 없는 훌륭한 어린이입니다. 하지만 이 닦은 후에 먹으면 못 써요!)
- '바디 호러 제왕의 귀환!' 이라는 식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영화 팬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죠. 그게 그럴만도 한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필모를 검색하며 확인해 보니 아마도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는 21세기 들어서는 처음으로 만든 듯 해요.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 비슷한 게 되었던, 하지만 이미 20세기에 접었던 스타일로 수십 년만에 회귀한다니 그 시절 영화 팬들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없었고 저도 그랬습니다만. 다 보고 나니 뭔가 오묘(?)하네요. 일단 어떻게 봐도 이건 '호러'가 아니구요. 또 사람 몸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상상력을 펼쳐가며 희한한 볼거리... 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던져 주기는 하지만 그게 예전에 했던 비슷한(??) 영화들보다도 훨씬 진지하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에다가 '바디 호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뭔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굳이 장르명을 붙인다면 SF 스릴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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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참으로 크로넨버그스러운, 이유와 실용성을 알 수 없게 생체 형태로 생긴 기기들이 우릴 반겨줍니다.)
- 까놓고 말해서 '재밌는 영화'라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ㅋㅋㅋ 사실 그 '바디 호러' 시절의 요 감독님 영화들은 메시지 같은 거 이해 못하고 그냥 봐도 재미난 작품들이 많았거든요. 최고의 다이어트 촉진 영화로 국내에서 홍보했던 '플라이'는 어땠습니까. '비디오 드롬'이나 '엑시스텐즈'는 어땠구요. '스캐너스', '데드존'도 그랬고 중간에 '네이키드 런치' 같은 무시무시한 작품이 끼어 있긴 했어도 대체로 요 감독님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난 장르물로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근데... 요건 좀 경우가 다르더라구요.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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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데 '웃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진지함!! 꼭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식사 머신 같은데 말이에요. ㅋㅋ)
- 일단 불친절합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난해하다'라고 느낀다면 그 느낌의 절반 정도는 불친절함 때문일 거에요. 영화가 상냥한 설명 없이 다짜고짜 훅!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영화 속 세상의 모습이 우리가 장르물에서 흔히 접하는 것들과는 많이 다르고. 또 나름 독창적인 설정 같은 게 꽤 있는 이야기인데 대체로 설명이 인색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설명들도 런닝타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나와요.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다 봐도 설명 없이 넘어가는 부분들이 꽤 많습니다. ㅋㅋㅋ 근데 뭐 이건 문제라기 보단 영화의 스타일이겠죠. 덕택에 더 몰입하고 집중해서 머리를 굴리고 또 상상을 해가며 보게 되는 재미 같은 게 있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여기에 덧붙여서...
이야기 페이스가 참 느립니다. 근데 이렇게 말해 버리면 좀 틀린 설명 같고... 말하자면 이야기의 우선 순위가 보통의 장르물과 달라요. 다 보고 나서 '내가 뭘 본 거지?' 싶어서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의외로 멀쩡한 SF 스릴러 스토리가 나오거든요. 근데 보는 동안엔 그런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잘 안 듭니다. 애초에 영화가 긴장감을 주거나 무슨 '재미'를 던져 주겠다는 식으로 짜여져 있지 않아서 말이죠. 이야기 전개보다 영화 속 신체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쇼를 보여주는 것, 텐서의 퍼포먼스가 예술로 인정 받을 수 있는가? 라는 토론을 들려주는 것... 등등 기-승-전-결 구성 측면에서는 살짝 덜 중요한 장면들이 종종 큰 비중을 두고 보여지기 때문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이야기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아니 뭐 애초에 집중 안 하고 보는 게 잘못이긴 한데... ㅋㅋ 암튼 그렇게 막 편하게 볼 수 있는 상냥한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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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데 웃어도 될지 망설여지는 진지함 2. 아니 그래서 텐서 팬질 말고 이 양반들이 하는 일이 대체... ㅋㅋㅋㅋ)
- 그래서 그, 어쨌든 분명히 존재하는 'SF 스릴러 스토리' 측면에서 본다면 아주 분명한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스포일러의 영역이니 설명은 못 하겠고... 그냥 말할 수 있는 건 현대의 인류가 처한 큰 문제 한 가지에 대한 매우 크로넨버그스러운 해법이라는 정도? ㅋㅋ 어찌보면 친구와 수다 떨다가 가벼운 농담으로 던져 봄직한 해법(?)인 것인데요. 그걸 아주 직설적으로 그냥 턱! 하고 영상으로 구현해서 보여줘 버리니 당황스럽고, 게다가 그 폼이 매우 엄격 근엄 진지하니 설득력까지 생깁니다. ㅋㅋㅋㅋ 또 가만 생각해 보면 정말 그래요. 요즘 돌아가는 절망적인 꼴을 보면 그런 문제 해결하려면 그 정도 해법은 튀어나와야 하지 않나 싶으니까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해법 제시란 것이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실현 가능한 해법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냥 그런 아이디어 하나를 구실로 삼아서 본인이 일생 동안 얘기해왔던 테마들을 다시 한 번, 좀 더 심화 버전으로, 좀 더 근사하게 구현해서 보여주는 게 목적인 영화 아니었을까... 싶었구요.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요 감독님을 오랜 세월 좋아해왔던 팬들에게 참으로 보람한 100분을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매우 크로넨버그 취향대로 괴상하게 생겨 먹은 '침대'나 '식사 도구', 그리고 수술 기구 같은 건 21세기답게 아주 세련되고 불쾌하게 아름답구요. 온몸에 귀를 달고 춤을 추는 퍼포먼스 장면 같은 걸 그냥 희한한 볼거리 같은 걸로 끝내지 않고 궁서체로 진지하게 멋진 무언가로 보여주는 것도 참 감독님답구요. 뭣보다 일반인 상식으로 볼 때 변태스럽고 심지어 혐오스러운 무언가에 강렬하게 꽂혀서 탐닉하는 사람들의 묘사 같은 게 참 익숙하고 반갑죠. 그걸 일반적인 변태(...)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연민과 지지 비슷한 의도를 심어서 보여주는 것이 뭔가 '크래시'의 21세기 버전 업데이트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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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나요. 당연히 감독님 다른 영화들과도 닮았지만 특히 '크래쉬'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 그리고 의외로 이게 되게 진지한 휴머니즘 드라마입니다? ㅋㅋㅋ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텐서와 카프리스는 정말로 자기들이 하는 일에 진지한 예술가들이구요. 동시에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파트너에요. 거기에 덧붙여 아주 건전한 도덕관과 진지한 인류애까지 장착하고 있어서 벌이는 일들이 그렇게 괴상해도 결국엔 관객 역시 그 진심을 믿고 진지하게 바라보며 응원하게 됩니다. 두 배우님들도 참 잘 해주셨구요.
또 이들에게 접근하는 그 정체불명의 집단... 역시 나중에 그 정체와 목적을 알고 나면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아 그런 거였니... 하고 납득을 하고 보다 보면 이분들 이야기는 또 왜 그렇게 비극적인지 연민까지 느끼게 되구요.
그러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텐서의 마지막 결심 장면을 보고 나면 뭔가 숭고한 장면을 보는 기분까지 들어요. ㅋㅋ 개인적으론 제가 본 이 감독님 영화들 마지막 장면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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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면서 든 뻘 생각. 제가 보기엔 우리 텐서 예술가님은 아무래도 감독님 본인 반영 캐릭터 비슷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냥 재미로 해 본 생각이니 반박 시 무조건 제가 틀립니다. ㅋㅋㅋ)
- 뭐 아는 것도 없이 이만큼씩이나 떠들어댄 게 민망하니 급마무리를 시전하겠습니다.
솔직히 추천은 안 하겠습니다. 제 첫 감상은 아주 커다란 ? 이었고 이게 뭐꼬... 하고 넘겼다가 다음 날 자꾸 생각이 나고. 가만히 돌이켜보니 뭔가 좋았던 것도 같고? 그래서 다시 한 번 보고 나서야 아 좋네... 했는데요. 그렇게 '좋다'고 결론 내리는 와중에도 막 재밌단 생각은 안 하고 있거든요. ㅋㅋㅋㅋ
하지만 이제 팔순이 넘으신 크감독님의 팬이시라면 꼭 보셔야겠죠. 물론 이미 다들 보셨겠습니다만, 혹시 아직 안 보셨다면 보세요.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좀 덜할지 몰라도 감독님 특유의 스타일과 세계관을 '그 시절 재탕' 같은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 변화 & 발전 버전으로 체험하는 재미는 충분하거든요. 뭐... 그랬습니다. ㅋㅋㅋ 끝이에요.
+ 근데 이 이야기의 원래 아이디어는 이미 20년 전에 구상했던 거라고 하죠. 영화로 만들려고까지 했는데 어찌저찌하다 무산된 걸 한참 뒤에 살려내서 완성까지 해낸 거라고. 그래서 '설마 버킷 리스트 하나 채우고 은퇴하시는 건가!' 라는 걱정에 검색을 해보니 허허. 이미 차기작을 올해 공개하셨군요. 만수무강 하시어요 감독님.
70년대 원본(?)을 5분쯤 보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뭐 제목만 같은 거라는 것 같긴 하지만요.
저도 그 제목 보고 리메이크인가? 했는데 크로넨버그 오리지널 각본이라는 것 같더라구요. ㅋㅋ
요즘엔 어지간한 영화 매니아 아니면 영화 감독의 이름 같은 건 거의 신경 안 쓰고 보는 것 같더라구요. 학생들에게 '니들이 아는 영화 감독이 있긴 하냐?'고 농담조로 물었더니 발끈하며 봉준호 알거든요! 라고... ㅋㅋㅋ
그래서 젊은이들 생각은 모르겠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요르고스 란티모스 생각이 나네요. 이 분 정도면 충분히 충격적인 스타일의 감독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