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킬링타임용으로도 사기충전용으로도 좋은데 흥행이 아쉽 - <빅토리> 약스포

편견1
가수 리아나는 2017년에 자신의 뷰티 브랜드 "Fenty"를 설립했습니다.
브랜드명을 보고 저는 기존 패션 브랜드 "Fendi"와 약간의 성적 뉘앙스를 섞은 거 아니냐, 좀 별로다, 했는데 리아나의 본명이었습니다. 
Robyn Rihanna Fenty.
-.-

편견2
1999년에 거제의 여고생들이 댄스 동아리 결성이 좌절되자 대신 축구부를 위한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듭니다. 
한 명을 빼고 치어리딩에 완전 초보인 학생들이 모여 우당탕탕 굴러가기 시작하는데......
->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로 시작하는 90년대 배경의 여학생 영화? 무한도전의 토토가, 
<응답하라> 시리즈 계열의 추억(팔이) 소재 아니냐, 그리고 여학생 축구부 결성 얘기도 아니고, 
남학생 축구부를 위한 치어리딩이면 손쉬운 각본을 위해  타협하는 거 아니냐!
게다가 <응답하라 1988>에서 '성덕선'을 연기한 혜리가 '추필선'으로 나온다고? 이 정도면 오히려 퇴행 아니냐! 했는데-
실제 1986년에 거제고에서 '한필선' 학생 등이 "새빛들"이라는 치어리딩부를 결성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

어째 영화 관람이 제 머릿 속의 편견과의 씨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줄거리만 보고 <빅토리>도 안보려고 했는데 트위터에서 호평을 접하고 관람 했습니다. 
90년대 문화 배경을 재탕했다고 해도 역시 그 시절 댄스 가요의 쿵짝 쿵짝 분위기에 무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각각의 등장 인물들에게 여학생으로서 촘촘하게 겪는 성차별의 서사가 설정되는데, 
처음에는 '조연'으로 취급되는 '치어리딩'을 소재로 삼은 것을 상쇄하기 위한 알리바이 설정 아닌가 싶어서 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사들이 여러 에피소드들과 잘 맞물려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영화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 특히 태권도장의 딸이 축구 경기 하러 온 서울 학생들과 길거리에서 싸울 때 멋지게 돌려차기를 날린다능 )
등장인물이 많아서인지 부모 캐릭터는 추필선의 아버지 정도만 비중있게 나오는데  추필선의 부친은 거제 조선소에서 
반장으로서 사측의 눈치를 보다가 후배의 죽음을 겪고는 동료들의 파업에 가담하게 됩니다.
사사건건 차별 받는 여자 아이들이 빨간 띠 두른 파업 노동자들 앞에서 치어리딩 시연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 심각한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합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끔찍한 폭력, 범죄들과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으로
점철되는 뉴스를 접하고 있는 미래의 나는 소녀들이 해맑게 90년대의 음악에 맞춰 춤출 때 마냥 함께 신명을 내기는 어려웠단 말이죠.

그런데 필선이가 거제로 돌아가 축구부 3-4위전을 위한 치어리딩을 하려고 걸그룹 오디션 기회를 포기할 때 
친구는 "이런 기회는 다신 없다"하면서 말리는데 필선이가 대답합니다.
"왜 없겠나. (내가) 이래 매력 있는데!" 
지금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 정말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이거 아닐까요? 두 번째 기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 말이에요.
단순한 믿음이 꼭 경박함만은 아니겠죠. 그냥 명쾌한 낙관이 될 수도 있겠죠.
이 대사 이후로 제 머릿 속의 거름망을 걷어 내고 좀 더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트위터에서 '<빅토리>는 투쟁에 관한 영화'라는 감상문도 읽고 나니 제 시야가 좁긴 하구나 라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곧 주말이고 다음 주 수요일에는 할인도 하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지 
극장들이 할인권도 많이 뿌리고 있습니다. ㅠ
이런저런 사정으로 타협하느라 이야기의 지평을 맘껏 못/안 넓힌 거 아니야?라는 생각은 제 편견이라는 걸
<빅토리>는 깨닫게 해줬지만 <행복의 나라>는-- 글쎄요---
김재규가 구국의 장군인지 암살자인지 본격적으로 논하기 부담스러워서 가담자 중 한 명을 내세웠는데, 그마저도 한 번 더 지나쳐서
조정석을 변호사로 맨 앞에 세우고, 가담자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으므로 충직한 군인이라고 변론을 펼치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나요? 혹 괜찮은 옹호 평을 접하게 된다면 <행복의 나라>에 대한
편견도 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치어리딩 동아리 애들이 보고 와서 의외로(?) 재밌고 영화 좋다고 주변에 홍보를 하고 있더라구요. ㅋㅋ


      근데 이게 지금 흥행을 하기엔 한국 영화는 '파일럿'으로 다 몰리는 느낌이고 헐리웃 쪽으론 또 '에일리언'이... 개봉 시기를 잘못 잡은 것 같기도 하구요.

    • <파일럿>도 설정만 보고 이런 미친, OECD 각종 통계를 보고도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 수 있냐! 절대 안 본다!했다가


      트위터에서(...) 단순한 성반전 코미디가 아니라고 해서 봤더니 괜찮더라고요. 여기서는 조정석 배우가 원탑 주연이긴 하지만요.


      주제로는 오히려 공통점이 있고 재미를 따지면 <파일럿>과 <빅토리> 둘 중 어느 한 쪽이 훨씬 더 웃긴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관객 수에서 차이가 많이 나네요. 90년대 배경과 음악이 10-20대 관객에게 낯설어서 그랬을까요?


      아이돌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케이팝의 미래는 없는 것을-

    • [빅토리]는 추필선과 그의 아버지 추우용의 투탑 이야기로 봐야만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다양한 장르로 소비할 수 있겠지만 제일 아름다운 지점은 아이들이 불쑥 파업 현장에 연습 목적으로 응원을 하러 간다거나 노동자인 아버지가 굴욕을 당하는 모습에 분노하는 추필선의 그런 투쟁적 모먼트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니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되게 반갑군요 ㅠㅠ




      저도 말씀하신 그 부분이 진짜 좋았어요. 흔히들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했다가 돌아가는 장면에는 실패의 씁쓸함이나 자기연민같은 게 깔리는데 [빅토리]에는 그게 1도 없죠. 속으로 좀 감탄했습니다.

    • 다시 생각하면 여러 차별과 부모 세대의 노동 문제 등도 지우지 않고 오락 영화에 맞는 비중으로 잘 다룬 편이어서


      너무 심각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인데 많이들 보러 가면 좋겠습니다.


      패배 의식과 끝이 안 보이는 긴장을 벗어나 한 번쯤 승리감을 맛보려면 발랄하고 활기 찬 응원이 정말 큰 도움이 될 텐데요.


      그 순간에는 어느 누구도 주변을 맴도는 조연 만은 아닐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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