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재미있게 보고 아무 말입니다.
왓챠에서 대여해서 봤어요.
원래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좋았네요. 잘 다듬어진 대사들을 따라가다 보니 2시간 30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겠네요. 근래 본 영화 중에 보는 중에도 보고 나서도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써 봅니다.
의미를 요모조모 깊게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해석하는 즐거움도 있는 영화인데 저는 그냥 재미있어서 넘 좋게 보았습니다. 추락사 한 남편과 시력 문제가 있는 아이와 아이를 돕는 매력적인 개와 용의자가 된 작가 엄마.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다 매력적입니다. 보고 나면 찬양하라 잔드라 휠러, 이렇게 되네요. 게다가 안내견 스눕 ㅠㅠ, 게다가 아들내미는 왜 그렇게 똑똑하고 성숙한가요.
여러 즐거움 중에서 배우들도 한몫 했습니다. 역할에 어울린다, 연기를 잘 한다, 이런 느낌이 아니고 역할을 자기 개성에 녹여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인물 표현에 있어 전형적인 모습을 다들 비켜가는데 멋지게 표현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변호사, 검사, 법무부에서 파견 온 직원까지 그랬습니다. 어쩌면 미국식 법정물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신선함이 컸을 수도 있겠네요. 대본을 꼼꼼하게 잘 써서 지시했을까요. 하여튼 인물 하나하나 다 개성적이었어요. 덧붙여 외모 얘기 조금 하면 옷은 기본이 진과 구겨진 듯한 점퍼이고 머리는 집에서 잘랐나 텁수룩한데도 왜 세련되어 보이는 것인가요. 법정에서 입는 법복조차 등쪽에 머플러 비슷한 장식도 붙어 있는 것이 어쩐지 재미있게 생겼더군요.
부부가 싸우던 장면에서 주고 받는 말 중에는 틀에 박히다시피 익숙한 내용도 많았지만 발화자 남녀 역할을 바꾸니 이렇게 재미있고 신선해지네요. 듀나 님 리뷰에는 보다 보면 남편의 사인이 중요하지 않고 그냥 그날 죽을 팔자였던 거 같다고 쓰셨는데 이렇게만 얘기하기엔 남편이 안쓰럽습니다. 사인은 영화가 강조하는 부분은 아닐지라도 남편의 성격과 죄책감을 상상해 보면 그렇습니다. 산드라와 남편 이 두 사람은 크기가 다르고 남편은 그것이 넘 괴로울 뿐이고. '너는 신경 안 쓰는 (집안)일에 시간 뺏긴다고!'라며 내 시간이 없다고 괴로워하는 요 부분의 남편에 이입되어 그런지도요. 잔드라의 넓은 시야와 냉정, 대범 같은 건 보통 사람은 따라하기 힘들어요.
실제로 살아가는 나와 남에게 보여지는 나 사이의 긴장이 극대화 되는 것의 대표적인 경우가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이겠죠. 그래서 관습과 세평의 칼질에 다칠 대로 다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웃지 않는' 산드라의 얼굴이(침착함이) 그 거친 칼질을 이겨낸 느낌입니다. 재판에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과정에 보여준 대응 태도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외도, 프랑스 가정에서의 영어사용, 양성애, 표절시비 등 왜곡되어 전달되고 욕먹기 쉬운 지점을 가진 사람이지만, 저는 그런 것들이 다 논의해 볼만한 차원의 것임을 오히려 보여 주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재판 중에 자신이 쓴 책과 표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겉옷을 벗고 대응하던 모습은 이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보여주려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습을 남편이 봤으면 또한 질투했을 것 같고요.
산드라는 이 일을 가지고 또 소설을 쓰겠죠... 재판 과정이 메스컴을 탔으니 그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겠죠... 경제적인 문제가 다 해결되겠죠... 남편의 깊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마구잡이로 상상해 봅니다.
캐릭터들이 다들 매력적이고 재미가 있다. 평범한 설명이지만 사실 저도 이 영화가 맘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습니다. ㅋㅋ 특히 캐릭터들을 참 잘 빚어 놨죠. 심지어 검사, 판사 캐릭터까지도 지금도 표정이나 말투 같은 게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한참을 재미있게 보고 나면 이제 이런 장면, 저런 대사 의미들도 생각해보고 그러게 되더라구요.
'옷은 기본이 진과 구겨진 듯한 점퍼이고 머리는 집에서 잘랐나 텁수룩한데도 왜 세련되어 보이는 것인가요.' <- 이건 저도 종종 하던 생각인데 그냥 옷빨이 살아서 그런 것인지... 패션의 완성은 몸매와 얼굴이라잖아요. ㅠㅜ
맞아요 남편도 참 딱했습니다.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이 함께 사는 건 참 힘든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렇네요. 듣고 보니 정말로 주인공이 가장 격앙됐던 게 표절 얘기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섬세하지 못해서 그런 디테일들은 잘... ㅋㅋㅋ
쓰셨던 후기도 잘 읽었습니다. '판단'에 대한 부분은 재미있어요. 감각이 멀쩡한 이들로 이루어진 공방에서 결국 가장 정보가 제한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눈이 잘 안 보이는 아들이 결정적이라는 것이요. 이런 저런 생각들을 더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각본이 정말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메인 줄거리와 서사구조에 말씀대로 캐릭터들도 너무 각자 잘 쓰여져있고 대사들에 집중해서 보다보면 긴 상영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에요.
남편이 딱하긴 한데 왜 산드라가 답답한지도 이해가 되고 그 녹음파일을 플래시백 형식으로 보여주는 씬이 백미였던 것도 같습니다.
잔드라 휠러는 '토니 에드만', '인 디 아일'에서 이미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 배우였는데 작년 공개된 두 작품에서의 활약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이젠 할리우드 상업영화 러브콜도 받고 그러더군요.
부부란 뭔지... 분에 겨워 벽을 치고 자해하면서도 이혼하지 못하는 이 관계가 참 세상 비극의 팔할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도 '토니 에드만'에서 처음 본 배우인데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주연은 아니지만 '아임 유어 맨'에도 나왔었죠. 앞으로도 엄청난 역할 맡아서 보여 줄 게 많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산드라가 이 일을 가지고 또 소설을 쓸 거라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무섭군요... 맞아요 그럴 것 같아요
틀림없이 씁니다. 최고 히트작이 되고요. ㅎㅎ
그리고 검찰과 언론이 공짜 홍보까지 해주었잖습니까. [원초적 본능]의 여주인공도 엄청 부러워할겁니다.
그리고 프랑스 생활은 정리하고 독어를 쓰는 스위스의 한적한 곳에 집을 장만하여 작품을 계속 쓰는데...그러고 보니 외모에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젊은 날이 좀 보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