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본지는 좀 되었는데 뒤늦게 조금 써 봅니다. 보고 나서 시간도 흘렀고 한 번 본 기억에 의존하자니 주특기인 두서없음이 더할 것 같네요.

2023년 영화로 다수의 수상을 한 작품이죠. 우리는 지난 6월에 개봉했고요.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은 '언더 더 스킨' 한 작품을 봤을 뿐인데 감독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고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 분이었어요. 당시에 평이 좋길래 그냥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갔는데 새롭고도 기괴했고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특별한 걸 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2014년 작이네요. 십 년 만에 다음 영화가 나왔으니 참 띄엄띄엄 만드는 유형의 감독 같습니다. 

그런데 잘은 몰라도 놀거나 게을러서 사이가 뜨는 건 아니고 한 작품에 집중하여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퍼붓는 감독이라 그런 것 같고, 이번 영화는 더우기 고민과 공부가 많이 필요하여 신중하게 준비하였다는 것 같습니다. 원작이 있다고 하지만 감독은 생존자와 관련자들을 엄청 많이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장소와 인물에 한해서는 상상과 허구로 만들지 않고 실제 그 장소를 재현하려 했고 소장 부부들이 하는 일과 사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기를 바랐다고 하네요. 그래서 아우슈비츠 실제 수용소 인근에 당시와 완전히 같은 구조의 수용소와 관사를 지었다고 하고 카메라를 여러 대 써서 마치 몰래 카메라처럼, 스텝들이 두드러지지 않게 하면서 여기저기를 동시에 찍었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 영화이지만 수용소 내부가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내부의 수인들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는 수용소 땅 한켠에 있는 소장의 관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다만 굴뚝의 연기가 보이고 고함과 비명 소리가 간혹 들리고 불길한 소음들이 화면을 뚫고 들어 오곤 합니다. 보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듣는 영화입니다. 모든 영화가 시각과 청각의 예술입니다만 이 영화는 보여 주는 것의 시각적 부분과 보여 주지 않는 것의 청각적 부분이 서로 다투듯하며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습니다. 그 청각적 부분이 명확한 대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에도요. 음악이 갑자기 과아앙~하고 귀에 크게 들어오는 대목에선 '언더 더 스킨'이 떠올랐습니다. 같은 음악가라고 합니다. 혹시 집에서 보신다면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에서 보시는 게 필요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기자, 평론가들의 글들이 나와 있고 의미가 꼬여있는 어려운 영화가 아니어서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보탤 말이 별로 없으나 현재, 지금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내가 부자가 아니고 어떤 기관의 책임 있는 직책에 있지도 않다는 것에 소심하게 다행을 느끼게 되는 면은 있었달까요. 눈에 들이대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비극을 우리가 밟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여러분, 중산층적 행복을 구가하는 부자가 되려고 너무 노력하지(너무 노력해선) 맙시다.(안됩니다)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쓴 책에 보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로 수용소에 출입하던 민간인 노동자의 도움을 꼽습니다. 수용소 인근에 살던 이탈리아인이었다고 합니다. 생색없이 소소한 물질적인 도움을 여러 달 동안 지속적으로 주었다고 해요. 레비는 그 사람 덕분에 인간이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대목이 떠오르는 부분이 이 영화에도 있습니다. 대부분 장면과는 아주 다른 질감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현실은 쨍하게 밝고 선명한데 이 부분은 반대입니다. 동화 같고 꿈 같고 얼핏 기괴하기도 하나 아름답습니다. 소장 가정의 지루함이 없습니다. 이 장면 역시 실제 인물을 모델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소장 역 배우도 잘 했지만 산드라 휠러 정말 잘 합니다. 미루고 미룬 '추락의 해부'를 얼른 봐야겠어요.

한때 수용소에 있던 이들의 후손이 학교에 폭탄을 내리꽂는 악행을 저지르는 현재 진행의 아이러니한 사태 비롯, 중산층 가정에 대해서나 개인적 행복의 추구에 대해서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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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사택 수영장에 있으면서도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고민하는 훌륭한 직업인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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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여왕과 그 어머니의 텃밭 산책.












    • 아우슈비츠를 제재로 만든 영화가 12세 관람가가 가능했던 비결이 그러한... ㅋㅋ




      저도 '언더 더 스킨'을 아주 인상적으로 봤는데. 그런 괴상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만든 아우슈비츠 영화라니 관심을 갖다가, 요즘 이스라엘 하는 짓을 보고 관심이 떨어지다가, 감독님의 오스카 발언을 보고 다시 봐야할 영화인 걸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발언 했다가 경력 멸망한 사례들이 적지 않은데도 아주 용기있는 분이셨어요.




      전에 글도 적었지만 '추락의 해부'도 잘 만든 좋은 영화이니 여유 되실 때 챙겨 보시고 글도 적어주세요! (강요입니다.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 '언더 더 스킨'으로 이분의 영화에 기대가 컸지만 이번 영화를 막상 보고 나서는 후기를 쓸 생각이 안 났어요. 꼭 소리가 잘 들리는 환경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추락의 해부'는 곧 보겠습니다! 

    • 그 질감이 다른 부분은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저 캐릭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게되니까 정말 뭔가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피아노 치는 씬도 되게 인상적이죠. 




      실험영화로도 거의 걸작에 가까운 수준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언더 더 스킨 전작인 니콜 키드먼 주연의 2004년작 '탄생', 연출 데뷔작 2000년 '섹시 비스트'도 전부 추천하고 싶은데 지금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볼 경로가 없는 것 같군요. 이런... 뭐 하나를 만들어도 소재나 내러티브, 촬영 같은 면에서 정말 꼼꼼하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감독님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활동기간에 비해 작품수가 적겠죠.




      이 영화 처음 나왔을때 지지하던 할리우드 유태인 업계인들이 오스카 수상발언 이후 죄다 뒤돌아선 게 참 웃겼어요. 유대계이고 홀로코스트 영화 만들었다고 당연히 '자기네편'일줄 알았나봐요. 오히려 지금 이스라엘이 보고 가장 뜨끔해야할 소재인데

      • 네, 처음부터 계획한 시도는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조가 되면서 상당히 좋은 효과를 이끌어낸 것 같아요. 이 장면들이 없었다면 영화의 전체적인 규형감이 약해지지 않았을까, 너무 피곤한 영화가 되진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안 그래도 감독의 다른 작품을 찾아 봤는데 '탄생'을 보려고 했더니 볼 데가 없더라고요.  

    • 아직 안봐서 스크롤은 내렸지만 보고 나서 읽으려고 합니다! 이번주 일요일에 볼 예정인데 thoma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군요!

      • 일반적인 재미는 없는 영화이지만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영화였어요. 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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