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아날로그의 잔재


박성광의 [웅남이]는 감독의 직업 때문에 개봉하기 한참전부터 이런저런 티비 오락프로그램들에 촬영현장이 노출되었었습니다.
그때 보니 카메라를 23.976 프레임으로 맞춰놓고 찍고있는 거였습니다.
박성광이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라는데 설마 24(극장용)와 23.976(티비용)의 차이를 모르진 않을테고,

'극장 상영을 전제하지 않은 vod같은데 내놓을 영화인가 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리를 듣고 좀 놀랐어요.


요새 연속극 등 티비물들이 영화 흉내낸다고 23.976으로 찍는 사례는 꽤 많이 봤었어요.

아예 화면구도까지 스코프로 내보내는 연속극들도 많잖아요.

하지만 극장용 영화는....

 
극장 공개 영화를 23.976으로 찍는 사례가 없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극장 보다는 티비를 메인 시장으로 삼는 영화인 경우 나중에 귀찮게 변환할 필요없이 처음부터 그렇게 찍어버린다고 합니다.
대형 스크린에 뜻을 두고 있다면 24로 찍죠.

TV 방송은 원래는 30프레임(60Hz)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칼라로 전환될때 이런저런 기술적인 문제점들이 생기자 그걸 제대로 고칠 생각은 안하고, 문제가 생긴만큼 보정하자고 해서 방송신호 일부를 보정용으로 배정했다나 봅니다.
그래서 프레임수가 29.97로 줄어들었죠.
30이었던 때에는 24프레임인 영화를 방송할 때 간단한 정수계산을 해서 몇프레임 복제해 넣으면 되었었습니다.
그치만 29.97이 되니 거기따라서 맞추면 24가 23.976이 되어버립니다.
문제는 23.976으로 돌리게 되면 상영시간이 맞지않게 된다는 거죠.
두시간짜리 영화를 돌리고 나면 끝날때 쯤이면 한 10초 정도 늘어나 나버립니다.
이걸 맞추려면 엄청 골때리는 계산을 해야되기 때문에, 적당히 주기적으로 프레임을 버려서 상영시간이 늘지 않도록 맞춰왔었다고 합니다.

디지탈 미디어 시대가 되면, 귀찮게 프레임 빼내고 이런거 없이 아예 23.976에 맞춰서 상영시간을 늘여버리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러면 오디오 싱크가 안맞게 되니까 전체 오디오를 살짝 늘이는 거죠.
그래서 모든 영화의 홈비디오 버전은 극장상영판보다 몇초에서 십몇초 정도 더 길어집니다.
그정도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큰 문제는 아니었죠.

디지탈 방송으로 넘어가면...
디지탈 티비라는게 걍 컴퓨터에 키보드 떼고 모니터만 달아놓은 거잖아요.
그래서 아나로그에 있던 제약이 거의 다 사라집니다.
어차피 시퓨로 디코딩해서 그림 내보내는 거니까 아나로그 처럼 특정한 프레임에 강제로 맞출 필요가 없죠.
글구 디지탈 티비는 처음부터 24프레임, 30 프레임을 기본지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담 과거에 기술적인 문제를 땜빵하려 만들어진 임시방편인 23.976을 쓸 필요가 아예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정말 악착같이 23.976은 살아남아 있습니다.
디지탈 아나로그 전환기에는 호환성을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지만, 아나로그 방송이 사멸한 지금도 여전히 29.97, 23.976이 표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아니, 방송컨텐츠는 뭐 그렇다고 쳐요.
이제는 영화를 23.976으로 변환할 필요가 완전히 없어진 거잖아요.
그래도 악착같이 영화 블루레이가 23.976으로 나옵니다.
왜 그런 씨잘데없는 짓을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24프레임으로 제작된 영화를 23.976으로 바꾸는 것도 돈드는 일일텐데... 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일에 헛돈 쓰는지...

이미 아시아나 유럽지역의 블루레이는 24프레임에 맞춰서 나오는 게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그 따라지인 한국 일본)에서 나오는 매체들은 악착같이 23.976을 고집합니다.

얼마전에 미국 업계가 영화에서 23.976을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요.
이미 넷플릭스는 자체제작 영화는 전부 24프레임이었고, OTT에 24프레임 컨텐츠가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미제 블루레이는 23.976 고정인 것 같지만요.
오래전에 했어야할 일인데 왜 이제서야 하나 싶지만...


23.976 말고도 디지탈 시대에도 살아남은 아날로그의 잔재들은 또 있습니다. 오버스캔이라거나...

    • 23.976.... 숫자 보기만 해도 더러워보이는데 망령 같은 녀석들을 쫓아내질 못하는군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요즘 동영상 인코딩할 일이 종종 생기는 중인데 처음에 프레임 옵션을 보고 의아했던 게 이 부분이었죠. 아니 이 소수점까지 들어가는 해괴한 프레임은 뭐야? ㅋㅋ 지금이라도 그냥, 최소한 정수만 쓰는 걸로(...) 통일을 해줬음 좋겠는데 안 그러더라구요.




      사실 24프레임이란 것도 조금 애매합니다. 그게 '영화 느낌'이라고들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한데 제가 찍는 건 영화가 아니라 그냥 일상 기록이니까 그걸 보고 있노라면 조금씩 끊기는 느낌이 든단 말이죠. 최소 30프레임은 되어야 편하게 보이던데. 오래된 관습이란 걸 바꾸는 게 참 어렵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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