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금보라는 싸나이
홍금보는 1952년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 전사앵은 1920-30년대 상해에서 무협영화 배우로 활약했던 전설적 인물이었고 할아버지는 영화감독이었습니다.
아명은 三毛였다고 하는데 태어났을 때 머리카락이 세가닥 뿐이었다느니 하는 카더라가 옛날에 돌기도 했었지만 삼모는 유명한 중국의 만화주인공입니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닮은 것 같기도...
성인이 된 후 홍금보는 이 아명을 영어예명으로 사용했습니다(SAMMO)
홍금보는 10살쯤 되었을 때 우점원 선생이 운영하는 경극학교에 들어갑니다.
(애가 하도 노답이라서 일반학교로는 안되겠다 싶었던 할머니가 아는 사람이 하는 경극학교에 집어넣은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극학교에서 우수한 자질로 우점원이 애호하는 제자가 되었고, 그 뒤로 들어오게되는 성룡, 원표 등등의 후배들을 동생으로 두는 왕초가 됩니다. 경극학교 시절의 홍금보는 딱 왕초라는 말이 어울리는 캐릭터였나봅니다. 동생들 괴롭히고 돈도 뺏고 그랬다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큰형님의 역할이 필요할 때는 또 확실하게 뒤에서 받쳐줬다고 하네요.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도 동생들과의 사이도 원만했던 것 같고요.
우점원의 경극학교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칠소복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팀을 돌리고 있었고 거기서도 홍금보는 왕초가 됩니다. 칠소복 멤버(공연팀의 이름이기 때문에 여러 기수가 있고 딱 7명만 있는 건 아닙니다)들은 우점원의 이름을 돌림자로 써서 다들 원X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는데 홍금보의 예명은 원룡이었습니다. 이름을 봐도 사부가 총애했다는 걸 알수 있겠네요(그게 부러웠던지 성룡은 한때 자기가 원룡이었다고 주장했고, 영화계 진출 후 진원룡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원표, 원규, 원화 등 다수의 멤버들이 칠소복 당시의 예명을 연예계 진출 이후로도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원화의 증언으로는 싸움으로는 홍금보가 1등, 아크로바틱은 자기가 1등이라는 식으로 멤버마다 각각 장기가 있었다고 하고, 성룡은... 노래를 제일 잘했답니다.ㅎㅎ
경극학교를 나와보니 세상이 변해있었습니다. 들어갈때만 해도 경극배우는 최고의 직업이었는데 졸업하고 보니 노인네 취향으로 바뀌어있었다던가...
그렇지만 그시기가 마침 무협영화가 최고의 인기장르로 뜨던 시절이었고 홍금보는 경극수련 경험을 바로 살릴수 있는 무협영화판에 투신합니다.
그시기 무협영화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 호금전의 [방랑의 결투]였는데 [방랑의 결투]의 무술감독인 한영걸은 우점원의 사위로, 경극학교 시절부터 안면을 텄던, 홍금보에게는 스승격이었던 사람입니다. 홍금보는 스승 밑으로 들어가서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술지도로 승격합니다. 크레딧 상으로는 나유의 69년작 [용문금검]에서부터 무술지도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70년에는 정강 감독의 [12금패]로 무술지도상을 받아 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60년대말까지 주요활동 무대는 쇼부라다스였고 거기서 홍금보의 영화스승 황풍 감독을 만납니다.
골든하베스트가 생기고 한영걸, 황풍이 그쪽으로 이적하면서 홍금보도 함께 하게 되었고, 인재가 넘쳐나던 쇼부라다스에 홍금보는 그냥 한명의 무술감독일 뿐이었지만 막 생겨나서 아무것도 없었던 골든 하베스트는 홍금보의 독무대가 됩니다. 이후 골든 하베스트는 홍금보가 키웠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듯...
배우 홍금보는 대략 10살 때에 [사랑의 교육]의 아역으로 데뷰했고, 칠소복으로 있는 동안 이런저런 영화에 나왔지만, 떼거리로 나오는 애들중 하나라 알아보기 좀 힘듭니다(그래도 성룡보다는 홍금보가 찾기 쉬운편ㅎㅎ)
학교를 나온 후에는 스턴트, 무술지도로 일하면서 여러 영화에서 졸개, 중간보스 등으로 얼굴은 자주 비쳤지만 대사 있는 연기는 나유의 [오호도룡]에서 처음 했다는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주원룡이라는 이름을 썼었고,
골든하베스트로 옮긴 뒤로 홍금보 명의로 정식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 크레딧에 배우일 때는 홍금보, 무술지도일 때는 주원룡이라고 이름을 올립니다.
70년대 초 이소룡이 등장해 쿵후영화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소룡은 하늘같은 존재라 당시 성룡 등은 바라만 봐 줘도 감격하는 신세였지만 홍금보는 당당한 골든하베스트의 대표무술감독이었기 때문에 이소룡과 자연스레 대면할 수 있었고 사이도 좋았다고 합니다.
이소룡이 사망한 후에 숱한 짝퉁 이소룡들이 나온 와중에 누가 이소룡을 가장 잘 모방했느냐 하면, 홍금보가 꼽힙니다. 홍금보를 짝퉁 이소룡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짝퉁 이소룡들이 생긴 건 어딘가 이소룡을 닮았을지라도 무술까지 제대로 카피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홍금보는 이소룡 본인과도 교류가 있었고 [사망유희]에서 이소룡 대역들을 지도했던 사람입니다.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작품들(오우삼의 초기작이나 허관문의 미스터부 계열 영화들도 포함)이 좋은 성과를 내자 77년에는 [중원호객]으로 감독 데뷰.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홍금보의 이름이 알려지게 됩니다.
[중원호객]은 배우 홍금보의 주연 데뷰작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진성과 공동주연이었고, 78년 [비룡과강]이 첫 단독주연작입니다.
홍금보는 본인이 원탑을 하기에는 스타성이 모자라다고 자기객관화를 했던지 단독주연작 보다는 공동주연작이 더 많습니다.(성룡 영화로 알려진 것들중에도 실은 홍금보 영화인 것들이 꽤 있죠.)
홍금보는 (한국)합기도 영화인 [흑연비수]를 만들기 위해 합기도를 배웠고, 태권도 영화 [흑권]을 만들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고, 영춘권 영화 [천하제일권]을 만들기 위해 영춘권을 배웠는데... 해당작품들은 각각의 무술을 소재로한 영화들중에서 클래식으로 꼽히는 작품들입니다. 무술감독으로서 홍금보의 역량과 유연성을 알수있죠.
홍금보가 홍콩 영화계에 풀 콘택트를 도입했다고도 합니다. 영화는 환타지일 뿐이니까, 영화속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실제로 할 필요는 없는거잖아요. 특히나 싸움같이 위험한 건...
당연히 무술영화도 치는 시늉만 하고 말죠. 그래서 70년대 중반까지 나온 쿵후영화들을 지금보면 대단히 싱겁다는 느낌이 들지않을 수 없게되는데, 홍금보는 배우들이 진짜로 치고받도록 해서 사실적인 타격감을 얻어내게 되었다고... 대신 촬영장에 부상자들이 속출하게 되었죠. 성룡도 여기 동참해서 홍콩 무술영화계는 그야말로 사람을 갈아넣어 몸으로 때우는 무시무시한 곳이 되었고, 그덕에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좋아라하는 숱한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지만.... 이건 지금 시각으로는 마냥 칭찬해줄 일은 못되겠죠.
영화계에서 자리잡은 홍금보는 칠소복 후배들을 하나씩 영화계로 끌여들였습니다. 성룡은 독자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했지만요. 그렇게해서 70년대 후반부터는 칠소복 출신들이 영화계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80년대에 홍금보는 그야말로 홍콩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물이 되고, 그 이후는 다들 잘 아실테니까 생략합니다.
홍금보는 70년대에 한국에 빈번하게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90년대에 이혼하게 되는데 자녀들은 전부 그시기에 낳았습니다. 반환시기가 다가오고 홍콩영화계의 유명인사들이 전부 홍콩탈출을 계획하던 시기에 홍금보는 아내의 나라로 기반을 옮겨서 활동하는 걸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반환되기 이전에 이혼하고 한국에서의 홍콩영화 인기도 시들해져 흐지부지해진 것 같습니다. 이혼후에는 [동방독응]에서 인연을 맺은 루이스 고덴지와 재혼했는데(외국여자만 좋아한다고 동료들한테 디스를 당하기도...ㅎㅎ) 흥미로운건 고덴지의 예명이 고려홍이고, 고려는 중국에서 역사시대 통틀어 한국을 의미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한국인 아내와 이혼한 후 이름이 한국인 여자와 결혼했다는...
한국어는 곧잘 (적어도 알아듣기는) 했다고 하는데, 성룡과는 달리 스타로서 한국에 내한했을 때 그부분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성룡 못지않게 한국에 오래 체류했었고 한국인 아내와 살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성룡보다는 잘했겠죠 아마.
지금 '사망유희'까지 막 끝냈는데 확실히 홍금보의 액션 연출도 좋군요. 근데 퍼포먼스를 하는 배우가 이소룡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님 이소룡 없이 액션을 짜서 그런가 이전의 이소룡 영화들 액션과는 느낌이 달라서 좀 아쉽긴 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홍금보 액션 장면은 좀 사심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서 웃었어요. 분량이 길기도 하고, 스토리상 지긴 하지만 꽤 잘 싸우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관객석에 응원 플래카드가 가득한 것이... ㅋㅋㅋㅋ
사족으로 전 홍금보는 전성기 홍콩 시절 영화들보다 나중에 한국에서도 방영해 준 '마셜 로우' 시리즈의 모습으로 가장 강하게 각인이 되어 있네요. 그거 그 시절 기준 은근 재밌었는데요. 아마 한국 방영제가 '동방특급 로형사'였던가 그랬던 걸로.
글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홍금보가 주연, 감독한 [귀타귀](1980)라는 영화가 있어요. 엄청 무섭고 웃겨요.
저는 정작 [강시선생] 시리즈는 별로더라고요.
귀타귀 (Close Encounters of the Spooky Kind) 상세정보 | 씨네21 (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