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정용진은 과연 무능한 사람일까?


 1.요즘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했어요. 그가 내게 '은성씨가 추천해준 22개의 주식 중 이마트 하나만 빼고 다 올랐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마트는 웃긴 주식이니까 구경하라고 말했을 뿐이지 절대 사지는 말라고 했었어.'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은성씨가 추천해준 21개 주식 중 21개가 다 올랐군.'이라고 말했어요.


 뭐 그래요. 나는 이마트를 꽤나 눈여겨보고 있거든요. 보통은 사지 않을 주식을 눈여겨보는 일은 없지만 이마트는 정말이지 어디까지 추락할지 궁금한 주식이라서요. 그래도 5만원 후반대에서는 브레이크를 걸겠거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로 5만원대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지는 않겠지만요. 한 3만원 초반대까지 내려가면 매수를 고려해 보려고요. pbr이 0.1도 아니고 0.05정도 되면 사볼까 해요.



 2.대체 이마트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이마트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정용진의 책임은 얼마나 있을까? 정용진은 정말 사람들이 비웃는 것만큼 무능한 사람일까? 글쎄요. 나는 정용진이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사업을 말아먹을 정도로 화끈하게 무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정용진은 꽤나 큰 삽질들을 했어요. 그러나 그 삽질들은 평범한 사람이 재벌 2세로 태어났다면 할 법한 삽질이었죠. 한번 정용진에 대해 잡담이나 써보죠.



 3.일단 정용진은 글쎄요. 이제 와서 하면 너무 늦은 말 같지만 그와 이마트는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뭔가 나서는 걸 좋아하고 허세가 많고 화려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차라리 신세계백화점을 정용진이 받고 정유경이 이마트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물론 성정에 어울리는 사업과 경영 능력은 별개예요. 그러나 이마트라는 기업은 누가 대표 자리에 앉았든, 어마어마한 수완이 없었다면 결국 이렇게 됐을 거예요. 이마트는 그야말로 2010년대의 격변 한가운데에 있었던 기업이니까요.



 4.휴.



 5.물론 정용진이 백화점을 맡았다고 해서 정유경만큼 경영을 잘 했을지는 몰라요. 나서는 걸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그게 호재가 아니라 화근이 되었을 가능성도 분명 있죠.


 그러나 신세계백화점이 잘 된건 시대의 흐름에 맞물린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돈을 쓰는 경험을 확실히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상점과, 극한까지 가성비를 추구하는 온라인 판매가 공존하는 세상에서는 중간지대가 없어요. 지갑을 화끈하게 열 거면 화끈하게 사치스러운 매장에 가고 아껴 쓸 거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온라인 매장을 검색하니까요. 신세계는 원래부터 백화점의 고급화를 지향해 왔고 그 결정은 현대에 맞물려 제대로 적중했어요. 


 그래서 정용진이 신세계백화점을 맡았더라도 그럭저럭 성공가도를 달렸을 거라고 봐요.



 6.이마트는 그 많은 자본과 유통망, 영향력을 가지고서도 경쟁자들에게 왜 점점 밀리고 있나? 라고 한다면 가진 게 너무 많아서예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이 많으면 그것이 파워가 아니라 족쇄가 되거든요. 


 쿠팡이 막 시작하던 시기에 정용진이 '우리 이마트는 이제부터 전국에 물류 센터를 짓고 새벽배송을 하는 기업으로 거듭난다'라고 했다면 모두가 그를 미친놈 취급했겠죠. 돈 잘벌고 있는 사업에 왜 불을 지르냐고요. 게다가 이리저러 얽혀 있는 수많은 이권과 관계를 생각한다면 개혁은 힘들죠. 신생 회사들이 위협적인 이유가 그거거든요. 가진 게 없다는 건 버리고 갈 것도 없단 뜻이니까요.



 7.어쨌든 그래요. 내가 보기에 정용진을 욕하려면, 네이트온도 욕먹어야 하고 코닥도 욕먹어야 해요. 네이트온이 모바일화를 못한 것도 코닥이 미래를 못 준비한 것도, 개혁을 하려면 자기 몸에 불부터 질러야 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오는 걸 알더라도 지금 손에 든 걸 버리면서 뛰는 건 힘들거든요. 지금 삼성전자만 봐도 파운드리든 뭐든, 몇 가지는 포기하고 뛰어야 살 수 있을텐데 아무것도 버리기 싫다는 이유로 모래주머니 잔뜩 차고 달리고 있죠. 



 8.요즘 세상은 정말 경영자로서 힘든 세상 같아요. 시대의 손바뀜이 너무 빠른 간격과 너무 빠른 템포로 일어나거든요. 그럭저럭 무난한 경영자가 무난하게 잘 되는 회사를 한평생 경영하다가 적당히 마무리하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죠.


 이런 세상에서 요구되는 변화는 그냥 적절한 수준의 대응이 아니라 살과 뼈를 깎아먹으며 환골탈태해야 하는 수준의 변화예요. 애초에 이미 성체가 된 기업이 그렇게 변화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회사가 나타나서 헤게모니를 잡는 게 더 쉬울 일이고요. 


 이마트 같은 기업에 들어가서 시대에 맞는 체질 개선을 할 역량의 전문경영인이면 그냥 자기 회사를 세우는 게 더 낫고, 혈통으로 경영자가 된 경영인이 그 정도의 경영자일 확률은 거의 없겠죠. 



 9.물론 개혁이 꼭 좋은 건 아니예요. 시대에 따라 수성을 잘 하는 경영인이 필요할 때가 있고 개혁을 잘 하는 경영인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하필 지금은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정용인이 ceo가 된 게 문제일 뿐이죠.


 개혁적인 성향의 경영인들은 고칠 게 없는 곳에도 굳이 칼을 들이미는 습성이 있거든요. 수성만 잘 하면 되는 시기에 그런 놈이 ceo가 되면 그것대로 문제죠.


 어쨌든. 정용진은 경영인으로서는 최악의 시기에 태어나버린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아니 사실 이 시대는 대부분의 경영인들에게 있어 가혹한 시대죠.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와 그 기술이 실생활에 접목되는 속도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빠른 시대니까요.








    • 네이트온도, 코닥도 욕을 먹었고 실패사례로 인용되니 정용진도 덜 억울하겠군요.

      애초에 경영자가 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 경영자가 된게 문제 아니었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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