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어물녀가 되어가고 있는가

연말이고 그러니까 이런저런 약속들도 생기고, 퇴근하면 일잔하자고 잡아채는 동료나 상사가 있으니 그리저리 저녁시간을 보내고,

애인이 있으니 가끔 만나기도 하고, 그러니 사실 온전히 혼자 있을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렇지만 저는 점점 건어물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연애하면 건어물녀 아니라고 회사 동료가 딱 잘라서 얘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에 심남이나 훈남이 좀 있으면 어때, 마음이 촉촉해지잖아? 싶고말이죠. 다른 누굴 만나서 조잘조잘 얘기하는 시간보다는

칼퇴하고 집에 와서 쟁여둔 팩청주에 남겨둔 튀김 데워서 어제 못본 황금어장 틀어놓고 제가 만든 루이죠지 술잔에 자작하며

진짜 루이죠지랑 조잘조잘 대화도 하고 그러는 게 제일 좋아요,

 

음, 지금 마시고 있는 건 월요일에 술마시다 남아서 챙겨온 '힘내요 아빠' 청주고, 먹고 있는 건 역시 그날 남아서 호일에 싸온 단호박,

새우, 꺳잎튀김이에요. 어젠 목란에서 분수넘치게 비싸고 기름진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 다음날 이렇게 먹고 있으니 왠지 이쪽이 훨씬

저답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군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어른들의 삶에 편입돼가고 있는 느낌이라서

안그래도 시니컬한 애가 삭다 못해 아저씨가 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화장을 하든 이쁜 옷을 입든 왠지 저 자신이 빛바란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스타일 좀 바꿔볼까, 하고 3년째 애용하던 쇼핑몰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다른 스타일로 쇼핑을 했더니, 제가 웬만한 남자만큼

어깨가 넓다는 걸 또 잊어버렸지 뭐예요. 나같은 애는 맨투맨 입으면 안된다고!!!!!!! 여자들의 로망이자 요즘 제일 핫한 룩이라는

보이프렌 룩이 나는 안된다고!!!!!!!!!!! 하면서 엄한 옷만 팽개치고.....청주를 땁니다(?). 900ml 짜린데 3분의 2쯤 남은 걸 김이 좀 빠진

듯하다고 마구마구 퍼마시고 있어요. 소주 먹던 애는 이래서 다른 술을 못 마십니다

 

미묘하게 김이 빠져서 첫맛과 다른 청주와, 데웠지만 눅눅하고 그마저도 곧 식어가는 기름진 튀김을 우물우물하자니, 지금의 저와 완전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네요. 조촐한 한상이고, 조촐한 겨울밤이고, 조촐한 스물다섯의 생이지만, 루이도 씐나하고 죠지도 씐나하니 저도

이만하면 됐단 생각이 들려고 해요. 내일은 남들이 그렇게 챙기지 못해 안달이라는 클스마스 이브라는데, 집에서 소고기라도 궈먹어야겠어요.

    • 내일은 남들이 그렇게 챙기지 못해 안달이라는 클스마스 이브라는데, 나만 좋음 되죠 뭐.. ㅎㅎ 소박한 한상 저도 함께하고 싶네요.
    • 얼마나 좋아요 날아갈거 같은 기분이겠는데요.
    • 내일 저는 아제로스를 여행하며 블리자드가 나눠준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어볼 꺼예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브인가요.
    • 아, 내일이 이브군요. 이런, 저한테 줄 책선물 주문하는 걸 깜빡했는데. 어서 해야겠어요! 우왕, 신난다.
    • 저도 칼퇴하고 일주일 애껴둔 와인 한병 따서 혼자 마시는 중이에요. 애인이 있어도 매일 술자리가 있어도 가끔 혼자 마시는 술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죠. 월화수 계속 달리다가 모처럼 조용히 혼자 즐기니 좋네요. 하지만 제 결론은 애인이 나쁘네요... 심남도 훈남도 다 귀찮을 뿐일걸요. 술 마시니 주절주절 하네요.
    • 청주도 데워요. 전자렌지에 돌리면 됨. 뜨거우니 조심
      소고기 한우 1++꽃등심이면 불러주세용 ㅎㅎ
    • 동해 가서 찬바람 실컷 맞고 정신 차리고 와야지 하다가 일기예보 보고 접었어요. 영하 14도+한파 주의보라니.
      옆에서 어무니는 "저래도 갈래?" 하시고..
      대신 중앙박물관 가서 실컷 놀고 올 거에요.
    •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ㅇㅇ
    • 나는 마른 오징어가 되어가고 있는가
      언니네 이발관 노래 제목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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