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를 읽고.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6권 '갱부'를 읽었어요.
'갱부'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기 때문에 이 작가가 광산을 배경으로 갱부 얘기를? 이런 소설도 썼다니 뜻밖이네, 라고 여겼고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전까지 읽었던 소세키의 주인공들은 도시에 사는 고학력자였거든요.
이 소설은 광산의 작업 환경이나 그로 인한 갱부들의 고통을 문제삼거나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어떤 갱부의 개인적인 얘기도 아닙니다. 주인공이 '갱부'가 될 뻔하다가 만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실제로 채굴 현장 체험은 하룻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이 전부입니다.
3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며 내용은 단순합니다. 열아홉 살 주인공은 삼각 관계로 창피를 당하게 될 상황이 되자 죽어버리거나 자멸 상태가 되고 싶어 가출하는데 길을 걷는 중 어쩌다 만난 알선업자를 따라 광산까지 가게 됩니다. 갱부가 되면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겠고 어두운 땅 속에서 사람들과 멀리하며 살 수 있으니 '자멸'의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따라갑니다. 돈도 없고 뭐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요. 소설은 브로커를 따라 광산까지 가는 과정, 광산에서 다른 갱부들 틈에서 숙식하며 열악한 상황을 겪는 장면, 그 다음 날 탄광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고생 중에 어떤 사람과 만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물의 마음이 차츰 침착해지며 정리되는 마무리 부분이 있고요.
죽고 싶어하던 사람이 유사 죽음 체험을 통해 살아가기로 생각을 바꾸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바꾸게 되는 데는 갱 속의 지옥같은 열악함 때문만이 아니고 그 괴로운 경험으로 인하여 조성된 마음 상태에서 만난 특별한 갱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상징적으로 꽤 쓰이는 '굴'이라는, 삶도 죽음도 아닌 장소를 통과하는 중에 은인인지 현인인지를 만나며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종의 성장 소설입니다. 읽다가 보면 푹 빠지게 되고 몇몇 장면은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며 기껍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갱 내부를 헤메던 중에 그 특별한 갱부를 만난다는 설정은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세키 소설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마지막 문장이 이러합니다. '내가 갱부에 대해 경험한 것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모든 게 사실이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당연히 겸양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겠죠. 소설 속에 자살 명소로 유명했다는 게곤 폭포가 몇 번 언급됩니다. 소설 초반부터 언급되더니 갱 내에서 사다리에 매달려 힘이 빠지자 주인공은 여기서 죽는 건 개죽음이니 밝은 세상에 나가서, 게곤 폭포로 가서 죽어야 한다고 힘을 내기도 합니다. 소세키의 제자였던 고등학생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 폭포에서 글을 남기고 자살한 후로 모방자살이 많았다고 하네요. 해설을 쓴 장정일 작가에 의하면 이 작품 '갱부'는 후지무라 미사오가 자살로 외친 인생의 허무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라고 합니다.
절망 끝에 다다른 탄광의 갱 속에서 만난 갱부로부터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을 듣는다는 설정은 '현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소설'이라면 무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작가는 포기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제자 비롯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쓸 당시에는 작가에게 절실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 읽는 독자의 눈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어색했습니다.

오... 신기하네요?? 나쓰메 소세키는 한량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피지컬한 노동현장으로 주인공을 보내버리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식 있는 사람에 대한 대접이나 몽매함에 대한 경멸 같은 게 드러나는 걸 보면 결국 소세키 작가의 소설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