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뒷북입니다 <제노사이드>

딱 절반 읽고 듀게 들어와 딴짓합니다. 아껴 읽으려고요.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는 소개를 보니 원래 감독 지망으로 영화연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제노사이드'에 생물학, 약학 등 이과 지식이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책을 쓰기 위해 자료 찾고 공부했겠지만 애초에 어느정도의 바탕이 되는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이야기와 그 지식이 불가분으로 엮여 있는 소설이니까요.


때로 내 현실과 멀리 떨어진 큰 이야기들, 웅장한 기분이 드는 소설들이 생활의 소소한 갈등이나 고민을 서슴없이 지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오래 전에 게시판에서도 화제가 된 소설이라 아마 이 책은 다 읽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지금까지 못 들은 척하고 계셨다면 얼른 보시길 추천합니다.  


이제 슬슬 도망자 상황으로 들어가네요. 원래 도망자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로그 메일, 심야플러스 1, 바늘구멍, 그레이브 디거' 이런 작품들 참 재미있게 읽었지요. 

더 있을까요. 도망하고 추격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소설들요?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추천 바랍니다. 






  

    • 책으로 한정하니까 언뜻 <콘돌의 6일>밖에는 안떠오르네요. 야...<심야 플러스1> 재미있게 읽었죠. 옛날 소설을 보면 환율-인플레 차이가 금방 연결이 안되니까 저돈 벌려고 별 고생을 다하네...그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 아 시드니 폴락의 영화로 봤는데 그 원작 말씀이네요.


        심야 플러스1은 도주 액션 스릴이 다 있으면서 거기에 더해 고전적인 분위기가 특히 좋았던 거 같습니다. 



    • 작가의 개인사나 경력이 반드시 작품에 녹아드는 것은 아니지만 다카노 가즈아키는 확실히 영화 하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티가 나더라고요.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지로 사고한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로그 메일]을 좋아하시다니! 반갑네요. 프리츠 랑이 연출한 1941년 판 영화 [인간 사냥(Man Hunt)]을 가장 좋아하지만 제프리 하우스홀드의 원작도, 피터 오툴이 주연한 1976년 판 BBC TV 영화도 모두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많지만, 영국 상류 사회의 일원이었던 주인공이 쫓기는 과정에서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진 끝에 땅에 굴을 파고 들어가 생활하는 혈거인으로까지 쪼그라든다는 그 낙차, 문명에서 자연으로 이행하는 흐름 자체가 참 매력적이었는데요, 제게 그런 이야기의 원형으로 남아 있는 작품은 역시 리처드 코넬의 [가장 위험한 게임(The Most Dangerous Game)]이에요. 워낙 고전이라 이미 읽어 보셨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안 읽어 보셨으면 일독을 권해 드리고 싶어요. 한국어로는 어느 번역이 제일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단편 소설이라서 검색해 보시면 아마추어 번역도 나오네요. 인간희극이라는 출판사에서 2009년에 출간한 단행본은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만, 2021년에 출간된 [이것이 완전범죄다]라는 여러 미스터리 소설을 묶은 단편집에 "가장 위험한 사냥감"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판본이 저 유명한 번역가 김석희가 옮겼다니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DJUNA님의 1932년 영화판 리뷰 중에서:


      "어빙 피첼과 어네스트 B. 쇼어드색이 감독한 [위험한 게임]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처럼 리처드 코넬의 원작 단편을 먼저 읽었을 겁니다. 코넬의 소설은 거의 완벽하게 짜여진 서스펜스 걸작이죠. 여기서 뭐 하나라도 잘못 건드린다면 그 각색은 흐트러지게 됩니다.


      원작은 아주 간략해요. 레인스포드라는 미국인 사냥꾼이 조난당해 외딴 섬에 도착합니다. 그 섬의 주인은 자로프 백작이라는 코자크 귀족인데, 동물들을 사냥하는 게 진력이 나서 게임의 수준을 조금 높였죠. 동물 대신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레인스포드는 곧 자로프의 다음 사냥감이 되고 둘은 쫓고 쫓기는 추적전을 벌이죠.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레인스포드와 자로프 두 명이고 소설도 두 사람의 갈등만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 영화들은 못 봤습니다만 책은 넘 재밌게 읽었어요. 도입부에는 이게 무슨 일일까 했었는데 읽으며 상황파악이 된 다음에는 도주의 진행 과정 세부가 생생하고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말씀하신대로 작품 뒤로 가며 인물의 형편이... 그 낙차에서 오는 재미도 있었나봐요.


        [이것이 완전범죄다]는 읽어 보고 싶습니다. 단편은 읽은 게 드물어서요. 인용해 주신 듀나 님 글을 보니 굉장히 잘 짜인 구성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작품인 모양이네요. 인용까지 해 주시고, 추천 감사드립니다.  


         

      • 흥미롭습니다 아주 어릴 때 TV에서 보고 요즘 유튜브로 보고 또보고 하는데 전 피터 오툴이 땅굴 속에서 자유로워보였거든요. 그건 아마 어릴 때도...저게 무슨 캠핑 이런거로 생각의 연결이 잘 못된거 같아서 그런것 같네요. 

    •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서스펜스에 능한 밤의 시인 윌리엄 아이리시/코넬 울리치(같은 작가의 다른 필명)의 작품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환상의 여인]이 제일 유명하고 [상복의 랑데부], [새벽의 데드라인]도 훌륭해요. 출판사 엘릭시르에서 출간한 번역본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절판되기는 했는데 2005년에 시공사에서 출간한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 거기 실린 단편들이 또 진국이에요. 과연 알프레드 히치콕이 좋아할 만했다 싶죠.


      엘릭시르에서 출간한 코넬 울리치 소설 얘기를 하려니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시리즈로 출간한 조너선 래티머의 [처형 6일 전]도 떠오르네요. 제목에서 내용을 이미 짐작하실 수 있겠죠?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사형 집행을 앞둔 사형수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고전이기는 한데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자칼의 날]은 늘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최고의 암살자 자칼이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 암살에 나서는 이야기. 저는 프레더릭 포사이스를 참 좋아하는데, 하나의 큰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은 단계들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솜씨가 탁월해요. 때로는 그게 과해서 빨리 액션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독자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예를 들어 한 용병 집단이 영국 기업가의 의뢰로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획책한다는 내용의 [심판자]는 한국어판이 450쪽인데 본격적인 군사 행동은 410쪽에 가서야 시작됩니다. 제가 읽은 최고의 물류 소설!), [자칼의 날]만큼은 세세함과 서스펜스 액션의 균형이 시종일관 유지되어서 누구나 재미있게, 손에 땀을 쥐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 언급해 주신 소설 중에 [13계단]은 본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상복의 랑데부], [자칼의 날]은 오래 전에 동서 걸로 봤는데 새로 번역된 책이 있으면 다시 보고 싶네요. 


        특히 [자칼의 날]은 좋게 읽었어요. 재감상하면 어떻게 다가올지. [심판자]는 검색해 보니 책이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최고의 물류 소설이었다고 하시니 궁금합니다.


        [환상의 여인], [새벽의 데드라인](요 소설도 소개를 찾아보니 아주 땡깁니다 ㅎㅎ) [처형 6일 전] 리스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요즘 책이 잘 안 읽혀서 흥미로운 책 위주로 시작해서 다시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중이었는데, 상세한 추천 감사합니다.

        • 뒤늦게 끼어들어 한 숟갈 얹어 보자면 '환상의 여인'은 저도 아주 좋아해요. ㅋㅋ 재밌게 읽으시면 좋겠네요.

          • 네, 더 기대되네요. 저는 이 책하고 [흰 옷을 입은 여인]하고 혼동을 잘 합니다 ㅎ

        • [심판자]의 원제는 [전쟁의 개들 The dogs of war]이고 원제로도 출판이 되었습니다. (예. 세익스피어에서 따 온 제목이죠) 두 권 모두 일본 중역입니다만, 포사이드 문체가 원래 그래서인지 읽기 아주 편안합니다. 둘 다 절판된지 이십년은 된 것 같습니다만 ㅠㅠ. 


          • [심판자] 절판된지 오래네요. 이런 거 보면 동서문화사가 은근 한 역할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욕도 좀 했는데, 중역에다가 이상한 번역도 많고 책 자체가 좀 이상한 것도 있어서요. 어쨌거나 예전에 장르문학에 목말랐던 이들에겐 고마운 출판사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제가 모르는 문제가 더 있을지 모르지만요. 요즘 전자책을 싸게 제공해 주는 걸 보면 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 <39계단>은 영화가 워낙 대단해서 그런가 책을 나중에 읽으니 감흥이 그저 그렇더군요

      • 영화도 책도 못 봤어요. 찾아보니 왓챠에 있는데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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