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프롬 어스' 를 봤습니다.

맨 프롬 어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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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쉔크먼 감독, 제롬 빅스비 각본.

이 영화는 누가 추천한 것은 아닌데 우연히 다른 영화 검색하다 배경 지식 하나 없이 보게 되었습니다. 

듀게의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고 보신 분도 많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왓챠에서 봤어요.

sf 영화입니다만 포스터에 보시는 sf 스러운 그림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두막에서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심리학 교수들이 모여 주인공 올드먼 교수의 송별 모임을 합니다. 올드먼이 왠지 주저하면서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던진 말이 시초가 되어 말많은 직업을 가진 분들답게 모임은 토론회 비슷하게 이어지게 되어요. 그리고 이 대화는 계속됩니다. 어디까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요. 이런 영화 많죠. 얼마 전에 로이배티 님 올리신 '매스'도 있고 '대학살의 신'도 있고 아직 안 봤지만 올리비에 아사야스 '논 픽션'도 그렇지 않은가요? 둘러앉아 대화만 하는 걸로 이루어진 영화 말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는 그 대화에 인물들 사이의 사연이 숨겨져 있어서 대화가 드라마를 전개시키는 전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와도 달라요. 인물 간의 드라마 같은 건 없습니다.(마지막의 중요한 증거를 뺀다면요)  대화의 '내용'만이 중요합니다.


죽지 않고 14000년을 계속 사는 사람이 자신의 지난 날을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풀어놓는 이야기입니다. 중반 이후까지 그 이야기들은 각종 관련 서적에 나오는 지식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실제로 겪었음직한 구체성으로인해 다른 등장 인물이 당연히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농담인가 듣다가 이의와 반박을 더하며 진행하다 보니 쟤가 미친 것 같지도 않고 받아들여야 할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영화가 삼분의 이 정도 진행되었을 때 폭탄같은 진술이 나오면 각본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관객들은 짐작하게 됩니다. 인물이 불사한다는 전제는 일단 내려놓고 지금까지 이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을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수긍했다면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겪었다고 하는, 실제 사실은 이러했다, 라는 진술도 수긍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 내용은 기독교에서 성경 구절을 절대시하는, 무지에서 생기는 독실함에 폭탄을 터트리는 것입니다. 교수들 중에 강성 신자가 한 명 있어서 기독교의 불교 기원설 같은 것이나 기독교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지점을 파괴하는 진술을 못 견디게 되고 결국 주인공이 얼버무리는 식으로 모임을 끝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알게 된 건데 시나리오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더라고요. 오랫동안 각본을 다듬었고 죽기 직전 완성했다네요. 스티븐 스필버그가 완성되면 자신이 만들어 보겠다고 했으나 작가의 아들은 그런 걸 모르고 그냥 본 영화 감독에게 맡겨서 이렇게 소박한 영화가 탄생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더군요. 지금이라도 스필버그가 오두막을 벗어나서 주인공이 가 있는 현장들이 펼쳐지는 영화를 만들어 주시면 좋을 것인데.

혹 관심이 가시면 좁은 오두막 거실에서 인물들의 대화만으로 내내 진행되는 영화도 볼만한 심적 정서적 여유가 되시는 날 시도해 보시길. 

아래 사진은 '니 말 맞나 확인해 보자'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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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이 이 영화 엄청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하는 대화로 이루어진 연극풍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다가 종교적이지 않은 종교풍의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정말 딱 취향에 맞는 영화였죠. 소박하게 저예산으로 만든 듯한 느낌이 이 이야기에는 더 맞는 것 같아요. 뭔가 예전에 예수가 제자들과 모닥불주변에 앉아서 같이 얘기하던 분위기가 겹치는 듯 하여 이야기와 잘 어울리더라구요. 

      • 댓글 호응이 어떨까 생각했는데, 이런 영화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좋은 대화가 길게 나오는 영화 좋아합니다.


        영화 속에 주인공도 불을 좋아해서 늘 집에 난로 설치를 했다고, 왠지 안심하게 만든다고 벽난로 옆에 앉아 얘기하더군요.

    • 생각보다 이렇게 한 공간에서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이 예상을 깨고 몰입도가 상당한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이 작품도 어느샌가 흠뻑 빠져들어서 봤던 기억이 있네요.




      사실 말도 안되는 설정이긴 한데 후반부에 그 흑인 동료교수가 말하듯이 주인공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어렵다(대충 이런 뉘앙스?)는 것도 재밌어요.

      •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이 초반에 집중만 좀 하면 재밌는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현란함이 없는 만큼 대사들이 재미나야 해서 그렇지 싶어요. 

      • 맞아요 저도 그게 재밌었습니다. 말은 안 되는데 반박이 잘 안 되는 이야기. ㅋㅋㅋ
    • 저는 아무 정보없이 건성건성 시작했다가 중간부터 엄청 몰입해서 봤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 기억이 전부이긴합니다.ㅎㅎ 워낙 오래전이기도 하고요. 작년이었던가 TV시리즈인 메시아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기도 했던 영화였는데 올리신 리뷰를 보니 이참에 한번 각잡고 복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 저는 메시아를 1화만 보다 말았네요. 재밌게 보셨나요? 언제 제대로 이어 봐야겠습니다. 

        • 그게 전 재밌게 보긴 했는데 막판 전개는 좀 가벼운 장르물 분위기라는 건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덤으로 다음 시즌을 노리는 엔딩인데 캔슬돼 버렸다는 점두요. ㅋㅋ
    • 재밌죠 이거. 상당 부분 기존에 돌던 재미난 가설들로 구성된 이야긴데 그걸 아주 그럴싸하게 잘 엮어서 풀어낸 느낌이었어요. 주인공 노가리가 90%인 이야기에 주변 인물들의 반박을 빙자한 추임새도 잘 배치됐구요. 그리고 주인공 이름 드립이 맘에 들었습니다. 올드맨이라니... ㅋㅋㅋ
      • 그러합니다. 반박이라고 위에 적었지만 전문가의 뒷받침성 추임새였어요.  


        이름이 존 올드맨인데 앞에 붙은 '존' 가지고도 어원 분석했죠. 


        근데 이 영화 전에 보고 올린 '베스트 오퍼'의 주인공 이름도 올드먼이어서 혼자 웃었네욤.  

    • 아직 안봤네요. 후속편도 있다고 하지요.
      • 아니요, 후속편은 없습니다.


        있지만...


        없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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