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영화 한편 번갈아 읽다가

곰곰 따져보자면, 글로벌리즘의 물결이 한국의 현실을 바꾼 결정적인 흐름인 것 같습니다. 그 이전의 삶은 유교 가부장제의 틀이 굳건했고, 그것은 주역의 천존지비 이념이 시경의 도지요요 하는 세계를 찍어누른 신분제 현실의 잔존하는 여파였잖아요. 그러면서도 연비어약, 즉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약동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젖어있었고요. 물론 그 물결이 한국을 완전히 다 바꿨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시경을 몇 번째 읽고 있는데, 나오는 연애감정 발라드가 전형적인 밀당 형식의 요즘 풍속도이군요. 아시다시피 모르시다시피, 시경은 한자가 아름답게 남녀의 풍경을 도해하게 했고 이를 노래한 글입니다. 본래 한자가 음산하면서 잔혹한 처형극장 스타일 샤머니즘과
연루되어 있던 이미지를 떨쳐내면서요. 공자는 이 투명하게 연애하는 본능을 긍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주역의 애독자였다는 게 갸우뚱한 면이고요.

공자는책을 끈이 떨어질 만큼 여러 번 읽었다죠. 그런데 그는 왜 주역과 시경 사이에 도사린 미증유의 갈등을 눈치채지 못하고 돌아갔을까요. 정말 기이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조선은 이 시경을 소학으로 바꿔치기 해버렸죠. 여기에서 공자의 긴 계획이 어그러져버렸구나 하는 게 현재 저의 판단이고요. 시경 속의 잡스러운 감정들, 부드럽고 야릇한 느낌들, 아련하고 그리운 것들이 긍정되는 남녀의 본능 세계로부터 남성 선비들이 누정 지어넣고 자연을 완상하는 본능 세계로 넘어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본능'의 본령을 연애감정에서 측은지심으로 돌려놓고, 연애감정은 폐기해버렸죠. 여기서 이미 어긋나버린 것 아닌가요.
신유학에서 말하는 리[理] 개념에는 '본능'이란 범주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게 측은지심으로 표상되어버린 건 유감스럽습니다. 그런데 만일 시경의 젖줄을 다시 대어서 연애감정이라고 생각해본다면? 흠
이 점에 관해서는 퇴계도 담헌의 언설도 귀담아 듣기 어렵습니다. 단지 공자만이 둘 다 어질 인[仁]에 해당한다고 말하며, 둘 중에서 연애감정 쪽을 다시 선택했던 것 같군요. 주역을 내던지면서. 그와 그의 제자 안자는 즐거움이 뭔지 알고 추구하는 이들이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그가 주역 탐독하는 거나 주희가 성리학 설계하는 거나 퇴계가 경하는 거나 모조리 절지천통[絶地天通] 되어버린 세계에서 하늘지향의 실천, 즉 지천통하겠다는 거였던 듯. 주희는 하다 말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좌우간 근대와 오늘까지 이어지는 이 맹목적인 하늘지향에 태클을 걸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긴 함.)
글로벌리즘 이후에야 비로소 시경의 도지요요 하는 세계가 꿈꾸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물론 화엄, 선 그리고 주역 역시 글로벌리즘을 먹고 각각의 우물 안 억장구조를 리모델링하고자 하는 것도 억지로 이해는 됩니다.
어쩌면 요즘 영화/드라마들은 오늘날의 시경 첫번째 에피소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애감정에다가 데자뷰로 그리움이 두번 접힌 그림 그리는 습성들이 말입니다. 제 감각이 이제 제대로 연비어약하고 있는 것일까요. ㅎ
    • 한 시간쯤 전에 쓴 글인데 몇 문장이 빠진 채 이제야 올라갔네요. 듀게가 좀 아픈가봉가? - -

    • 읽고 말할게 하나도 없지만 글의 절반은 생각이 오네요 공자가 이미 아인슈타인의 굽은 시공간을 알았던 듯 합니다
    • 이글 읽으시는 분들이 잘못 알게 될까봐 댓글 답니다.

      장르가 다른 두 경전입니다. 누가 누구를 찍어 누른게 아니라 비슷한 시대(주나라초기부터)에 동시에 존재한, 하나는 ‘가요가사집’이고 하나는 ‘철학사회서’입니다. 그리고 시경은 풍만 읽으셨나 봅니다? 하물며 풍에도 신분차이 압박 노역 전쟁 다 나와요. ‘도지요요 작작기화’만 있는거 아니에요. ‘아’ ‘송’은 궁중음악 종묘음악 가사라 더 엄숙하구요. 더 웃기는 건 “연비어약의 이데올로기에 젖었다”니, 그 ‘연비어약’이 바로 시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 일단 바로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확인해볼 거지만요. - -

    • 아버지와 바둑을 두는 중인데 김치켓이라는 듀엣의 '검은 傷處의 부루스'를 계속 틀어놓으시네요. 듣노라니 핀이 나간, 제겐 아무 감흥이 없는 노래구만요. 음악은 기청감 탓에 듣는 건데 그게 없으니. 이거 원.
      '아방가르드’란 표현이 짧게 유행한 바 있었죠. 나름 역사도 있었고요. 1946년 대구폭동, 한 시절, 밥솥의 압력 한가지로 압착되어 그 반발로 터져나오는 예술은 배워서 하는 것보다 트라우마의 생짜로, 그러면서도 타고난 야생적 이성으로 해치우는 몫이 큰 타입이었죠. 신즉물주의와 상처 혹은 앱젝트, 말로 하기에는 기가 막힌 이야기의 자기차이화, 끊임없는 이야기하기의 ‘이뭣고’, 되돌아보는 가운데 空[=부질없음]과 假[=삶이 뭐길래] 사이 번뜩이는 직관의 中[=결국 내 선택이야],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중의 내러티브로 이미지화, 그럴수록 점점 낮은 곳으로 오르며 무의식화하는 몸 등등.
      결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죠. 섣불리 -ism의 딱지붙이기 하기 힘들고요. 아부지 음악 좀 끄시죠?
      • 아부지 들으시는 곡은 깨진 약속이란 외국 경음악이 원곡이네요 그정도야 유튜브의 세계에선 기본입죠 아방가르드와 연관도 있을듯
        • 그래요? 검색이 안 되는만요. 저 음악은  계속 듣고 계심. 제가 싫어하는 걸 알고 바둑판에 영향을 끼칠 셈이신 듯. - - 이겨보자고 이렇게 야비한 수법 쓸 분 아닌데. 흥 어쩌나요. 실력 나은 사람이 이겨먹고 마는 거지. 


          안해야 할 말이지만, 이 좋은 나이에 아버지 상대해 드리느라 저도 엄청 피곤합니다. 낳아주신 것엔 눈흘기지만 성질 나쁜 애 담담하게 키워주신 건 감사해서 다소곳한 자세. 


          (속닥속닥~ 제가 성질나면 아버지 정강이도 가격해요. 엄청 좋아하심. 버릇없는 애는 개념 없는 부모가 기르는 것임. 에취~)




          근데 바둑두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게 예의로 져드릴 수 없는 경기거든요. 에코나

          • https://youtu.be/8gPIHKMJQWg 무림에선 야비한 수도 고수의 수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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