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위의 두 분 알콩달콩 마음 내비치시는데다 이 시 하나 붙여봅니다.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 실린 첫시예요. 왜 이 시가 시집 처음에 배치됐는지는 전문가 들이 알아서 연구할 문제이지만 저도 이 점에 주목했더랬습니다.
1980년에 출간된 시집인데, 시인의 <자서>에 따르면 격동기의 시점이었던 1978/79년에 쓴 시들을 묶어내신 것이더라고요. 그 이후에 시가 추가되었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이성복의 시들에 대한 역사비평판 전집이 나온다면 알 수 있을 문제일 테죠.
그 분이 시집을 묶을 때의 마음과 이 시들이 쓰일 때와 현재의 마음이 얼마나 다를까 좀 궁금합니다. 1980년이란 한국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착잡했을지 저 같은 사람이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집 제목이 그 마음의 떨림을 느낄 수 있게 하잖아요.
- 1959년 / 이성복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갔다
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먹거나
이차 대전 때 南洋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과 不感症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修飾했을 뿐 아무것도 追憶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소리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
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
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왔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과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